이런 선거 처음이다. 유력 대통령 후보 세 사람 다 영남 출신이다. 9월19일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선언으로 영남 후보 세 사람(부산 출신 문재인·안철수, 대구 출신 박근혜)이 맞붙는 초유의 구도가 완성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대선 후보가 막판 단일화를 하더라도 영남 출신의 여야 후보끼리 격돌하는 모양새엔 변함이 없다. 18대 대선이 이런 구도로 전개되리라는 건 일찌감치 예견됐다. 보수여당의 후보가 대구·경북에 연고를 둔 박근혜로 사실상 결정된 상황에서, 근거 지역의 인구 규모가 절대적으로 열세인 야당으로선 경쟁 정당의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후보자를 내는 게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공학적 셈법이 이미 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 연고 정당의 두 가지 선택지
1987년 이후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의 출신지만큼 승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변수는 없었다. 대구·경북(TK)의 노태우, 부산·경남(PK)의 김영삼, 호남의 김대중, 충청의 김종필이 4자 대결을 펼친 13대 대선은 그 결정판이었다. 1987년의 4자 구도는 TK·PK·충청이 연합한 1990년 1월 3당 합당을 거치며 호남 대 비호남의 양자 구도로 재편된다. 1992년 14대 대선은 영남(+충청)의 김영삼과 호남 출신 김대중의 여야 대결에 강원 출신의 제3후보(국민당의 정주영)가 가세하는 형국이었다. 1995년 충청(자민련)의 이탈로 이 구도는 영남에 기반을 둔 보수 정당과 호남에 근거한 자유주의 정당이 격돌하는 모양새로 고착되는데, 이 구도는 영남이란 거대 지역 기반을 가진 보수 집권세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호남에 비해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다(출향민을 포함한 호남 대 영남의 인구비는 1:1.5로 추정), 오랜 집권을 통해 정·관·재계 엘리트의 다수를 영남 출신 인사들이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권을 노리는 호남 연고 자유주의 정당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제3의 지역 정당과 연합하거나, 비호남 출신(가능하면 영남 출신) 후보자를 내세워 표의 확장성을 꾀하는 것. 첫 번째 전략은 1997년 15대 대선의 DJP 연합에서 효과를 봤다(물론 이 또한 외환위기라는 외생 변수와 이인제의 영남표 잠식이란 내적 변수의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두 번째 전략은 PK 출신 노무현을 후보로 내세운 2002년 16대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6대 대선은 영남 정당의 비영남 후보(한나라당 이회창)와 호남 정당의 비호남 후보(민주당 노무현)가 맞붙는 특이한 구도였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의 노무현은 근거지인 PK에서 선전한 덕에 민주당에 두 번째 집권을 선사했다. 이 선거는 호남에 근거를 둔 자유주의 정당엔 하나의 집권 공식을 제공했다. 보수정당의 견고한 지역 기반에 균열을 내지 않고선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90%를 웃도는 호남의 압도적 지지가 유지된다는 것이 전제였다. 이런 집권 공식은 호남 출신 후보를 내세웠다가 TK 출신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500만 표가 넘는 압도적 격차로 패배한 17대 대선을 거치며 하나의 ‘공리’로 굳어졌다.
다가오는 12월 대선과 관련해서도 관심은 두 가지다. 우선은 문재인 혹은 안철수 후보가 부산·경남에서 얼마나 많은 득표를 할 수 있느냐다. 참고 지표는 지난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얻었던 득표율이다. 당시 노무현은 부산에서 29.9%, 경남에서 27.1%를 얻었다. PK에서 민주당의 지역 조직이 확고한 뿌리를 내리기 전이란 점에서 당시의 선전은 노무현의 개인적 인기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좀더 설득력 있는 지표는 지역의 당 조직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정당득표율이다. 당시 민주당은 부산에서 31.8%, 경남에서 25.6%를 얻어 3당 합당 이후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 당시 통합진보당이 얻은 정당득표율을 더하면 부산은 40.2%, 경남은 36.1%까지 올라간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
<font color="#877015"> “최근 1년 동안 호남의 지지는 손학규에서 문재인으로, 다시 안철수로 변해왔다. 호남은 DJ를 제외하고는 자기 지역 출신 후보라고 지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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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는 없던 PK의 민심 이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철수나 문재인 가운데 누가 되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얻은 득표율보다는 오를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2002년 당시엔 없던 새누리당 세력에 대한 PK 지역의 광범위한 민심 이반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의 여론조사 수치를 봐도 4월 총선에서 야권 연대가 얻은 정당득표율 40%(부산 기준)는 무난히 얻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도 35~40%를 PK에서 야권 후보가 얻을 수 있는 지지율의 기준선으로 본다. 한 위원은 “PK와 TK의 균열이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며 확연해진 게 사실”이라며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돼왔던 층의 지지를 얼마나 흡수하느냐에 따라 그 이상의 득표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하나의 관심거리는 출신 지역 후보를 내지 못한 호남 민심의 향배다. 호남은 알려진 대로 이명박 정부 지지도는 물론, 박근혜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낮은 지역이다. 반면 문재인·안철수의 지지도는 전국에서 가장 높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1997년, 2002년 대선과 같은 결집과 동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는 전망이 엇갈린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사실상 호남이 뽑은 후보였던 2002년의 노무현과 달리, 문재인과 안철수 모두 호남과의 정치적·정서적 밀착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무현만큼의 열정적 지지를 끌어내기엔 두 사람 다 정치적 매력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철희 소장의 견해도 비슷하다. 그는 “2002년을 정점으로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는 떨어지는 추세”라고 했다.
실제 2002년 90%대였던 호남의 민주당 후보 지지율(광주 95.2%, 전남 93.4%, 전북 91.6%)은 2007년 17대 대선에선 모든 지역(광주 79.8%, 전남 78.7%, 전북 81.6%)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4월 총선에서 야권 연대의 정당득표율 역시 광주는 87.5%, 전남 84.3%, 전북 79.7%였다. 물론 드러난 수치에도 불구하고 야권 후보에 대한 호남의 압도적 지지가 이번에도 되풀이될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한귀영 위원은 “최근 1년 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호남의 지지는 손학규에서 문재인으로, 다시 안철수로 변하는 흐름을 보인다”며 “호남은 DJ를 제외하고는 자기 지역 출신 후보라고 지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 막바지 국면엔 결국 박근혜를 꺾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선택을 하게 돼 있다는 지적이다.
호남의 지지 손학규 → 문재인 → 안철수
문재인과 안철수 가운데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조심스럽다. 안철수 손을 들어주는 쪽에선 민주당색이 옅은 점은 영남에서, 친노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은 호남에서 확실한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문재인의 우위를 점치는 쪽은 청와대 경험이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민주당의 조직적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3개월. 판단은 독자들 몫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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