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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급변. 국내 정치뿐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외교 환경이 그렇다. 한-미 양국에서 혹은 중국에서 권력 교체가 예정돼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단지 한-미 양국의 대선 결과에 달렸다고 말할 수 없다. 질서가 변화하고 있다.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적 과제가 적지 않지만, 얼마나 중요한 외교적 전환기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북한 “미국 대선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겠다”
동북아 질서의 파열음이 심상찮다. 미국의 아시아 귀환과 중국의 부상이 충돌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탈냉전 질서는 무너졌다. 새로운 질서는 찬란한 햇살이 아니라 태풍을 동반한 먹구름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동북아의 신냉전을 불러온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예측 이상이다.
바로 전후 체제가 봉합한 역사의 복수다. 동시다발적으로 영토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조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를 둘러싸고 중-일 양국이 무력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가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반일 시위가 확산되고, 일본 기업의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한-일 양국 역시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미-일 삼각 체제를 통해 질서를 관리했던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북핵 협상의 동력이 상실됐다.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대선 국면에서 북핵 문제는 개점휴업 상태다. 장기적으로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기구로 만들어보자는 구상이 아직도 유효할까?
미래의 낙관적 전망이 사라진 자리에 현재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대선주자들에게 듣고 싶다. 심상치 않은 기류의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거대한 급류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를. 안타깝게도 들을 수 없다. 공약은 너무 추상적이고 낙관적이다. 외교정책이 중요하게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래도 되는가?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서 정책 논쟁이 중요하고, 그중에서 대북정책과 동북아 외교 전략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또 다른 도전은 북한이다. 북한 변수는 대선 국면에 영향을 끼칠 것인가? 남북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소한의 정세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이명박 정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어떤가? 북한은 이미 외무성 담화를 통해 11월 초 미국 대선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이 대화에 나선다면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핵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태도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답을 주기 어렵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북핵 협상을 섣불리 시작했다가, 오히려 공화당의 역공에 부딪힐 수 있다고 판단한다. 대선 국면에서 오히려 원칙적인 강경론을 강조한다. 그러면 북한은 미국 대선 이전에 핵능력을 강화하는 상징적 조처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3차 핵실험도 그중 하나다. 북한은 대선 국면에서 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 대선 이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지지 구조에 별 영향 없던 ‘북한 변수’
만약,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남북 군사적 충돌이나 북한의 핵실험이 발생한다면? 과연 대선 국면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선거에서 ‘북한 변수’는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보수적 여권은 북한의 도발적 성격을 부각시키겠지만, 동시에 진보적 야권 역시 현 정부의 대북정책 무능과 평화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지지 구조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은 박근혜 후보의 전략에 부정적일 수 있다. 박 후보는 ‘신뢰외교’라는 개념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도발할 경우, 결국 ‘보수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신뢰외교는 추상적 개념으로 구체성이 없다. 논리구조 역시 주체의 적극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객체인 북한의 변화를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정책의 진정성은 위기에서 정체를 드러낸다. 박근혜 후보에게 북한 변수는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를 다지는 효과는 있겠지만, 중간층의 지지를 잃는 위기가 될 수 있다.
야권 주자들에게도 북한 변수는 도전이다. 국민들은 사건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도발했다는 결과를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권 주자들이 강조하는 한반도 평화 체제와 남북 경제공동체 같은 미래 비전이 현실성 없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현실과 비전의 간극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 5년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간극을 메우는 다리다. 또한 그것이 야권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차별성을 이룰 수 있는 지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기존 남북 합의를 파기할 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을 때, 부실한 천안함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그리고 유례없는 5·24 대북 제재 조처를 발표했을 때, 그래서 북-중 경제가 밀착하고 우리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때, 박근혜 후보는 무엇을 했는가? 무슨 말을 했는가? 그것이 현재 말하는 미래 비전과 일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동북아 전략도 마찬가지다. 대일정책이 종잡을 수 없는 갈지자를 걷고, 한-중 관계가 파탄 나고, 동북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외교 역량이 붕괴했다. 여권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과연 재앙적 결과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야권 주자들도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우선 남북관계 파탄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들의 한, 중소기업의 아픔,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우선적으로 대면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5년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손실을 가져왔는지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미래 비전과 연결될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비전’이 아니라 ‘방법’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반도 경제권의 형성과 대륙경제권을 향한 상상력이 ‘추상’이 아니라 ‘구체’로 다가올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역 공약과 연결될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 낙후됐던 서해안 지역의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해서는 서해의 탈냉전이 필요하고, 동해안 경제권 구상 역시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야 한다. 접경지역 역시 대립의 선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면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야권 주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의식이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과연 100년 전처럼 우리나라의 운명을 강대국 정치에 맡겨야 하는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강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전’이 아니라 ‘방법’이 중요하다. 바로 외교안보 정책 결정 구조의 혁신이 필요하고, 현재의 외교안보 부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100년을 설계할 수 있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대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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