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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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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도 안 남은 지금? 두 후보가 중국집에서?

박상훈 대표와 김헌태 겸임교수의 ‘안철수와 민주당의 만남’ 격론
등록 2012-09-12 15:15 수정 2020-05-03 04:26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정당과 시민의 경계에 서 있다. 그의 대선 출마가 정당정치의 재앙이 될지,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 될지 의견이 분분하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와 김헌태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가 만나 ‘안철수와 민주당의 만남’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박 대표는 정치학자로,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반(反)정치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한 (폴리테이아 펴냄)이라는 책을 썼다.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2003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2011년)을 지냈다. 현실적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담은 9월5일 서울 합정동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했다.

‘민주당 못 이기면 나간다’는 문제

사회 안철수 원장의 출마 방식부터 얘기해보자. 국민의 의견을 들은 뒤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박상훈(이하 박) 안 원장은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 민주주의 기준으로 볼 때 그런 방식은 곤란하다. 민주주의는 통치자에 대해 시민이 동의하는 과정이 있다. 의회나 정당에서 정치적 경험을 쌓으며 국가 예산, 거대한 관료 조직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고, 정당을 통해 대중적 힘을 모으는 훈련을 거쳐야 한다. 정치 밖에서 정치 자체를 바꾸자는 ‘시민적 대행자’를 한다거나, 대선 출마 여부가 본인의 정치 행위로 모아지는 건 곤란하다.
김헌태(이하 김) 정치의 규범적 측면에서 그렇게 비판할 수 있다. 안 원장이 이미 정치를 하고 있으면서 정치를 할지 고민한다는 건 모순이다. 대선에 나갈지 안 나갈지 고민한다는 것도 맞지 않다. 안 원장 스스로 구체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과정이 대선이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민주당이 못 이기면 내가 나간다’는 접근은 문제가 있다. ‘이길 수 있다면 나가겠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승패에 연연하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정치의 시작’을 선언해야 한다.
결국 책임성의 문제다. 내가 정치를 해도 좋을지 묻는다는 것은 군주제의 원리다.
사회 안 원장이 출마할 거라고 보나.
가장 큰 변수는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도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양자 구도에서 민주당 후보가 상당한 경쟁력을 보인다면 출마를 안 할 수 있고, 불출마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 그러나 정치를 안 한다는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 지금 안 원장이 정치를 중단하면 대선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안 원장이 정석대로 정치 과정을 밟았으면 좋겠다. 대선 출마는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다음번에 해도 되지 않나? 지금 중요한 건 민주당 문제지, 안 원장이 후보가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안 원장을 중심으로 한 대혼란의 책임은 민주당에 90% 정도 있다. 민주당이 차기 정부가 될 수 있는 존재로서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안 원장이 원하지 않더라도 정권 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를 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안 원장은 선거운동을 한 적이 없는데,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최고의 선거운동을 해줬다. 지금 민주당 정치인들이 안 원장을 두고 주판알을 굴리는 것을 보면 정치적 머저리라는 생각까지 든다. 망해도 싸다.
사회 정권 교체를 안 하는 게 낫다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웃음) 정권 교체는 수단이다. 정권을 교체해 경제정책을 재분배와 복지 친화적으로 만들고,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구축하길 바란다. 새누리당은 그걸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은 목적과 수단이 바뀌었다. 민주당은 어떤 정부가 될 것인지는 빈약하고, 기존 정부나 새누리당이 얼마나 나쁜지만 얘기한다. 이것으로는 합리적 유권자가 설득되지 않는다. 정권 교체가 최고의 진보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정상적으로, 신뢰받는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전략의 차원에서 그런 정상적 집권이 불가능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정상적인 집권은 물 건너갔다. 부작용이 불 보듯 하지만, 그렇더라도 역사의 진전은 있는 것이다. 원론적인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이기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계가 있더라도 차선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략적 선택에서도 전제가 튼튼해야 한다. ‘어떻게 조합하면 박근혜를 이길까’에만 초점을 맞추면 사태 해결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통해 사회와 정치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점검을 하며 전략을 진행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안 원장은 이번에 준비가 안 됐다

사회 공동정부론이나 제3지대 창당론 등 야권 단일화 방식에 대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시민연합정부론’을 제기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이 집권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과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근거로 한다. 그런데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개인이 무당적으로 집권한다? 이건 입헌군주제와 유사하다. 민주당-안철수 공동정권? 이건 DJP 연합 정도의 수준도 안 된다. 상대가 싫으면 쫓아내면 그만이고, 내각제하의 연립정부처럼 책임지는 구조도 없다. 더구나 안 원장은 정당이 아닌 개인이다. 그런 말 자체가 계파적 권력욕이고, 부적절한 권력 나눔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책 연합을 기본으로 한 ‘정치 연합’을 구성해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얘기다.
정당이 정부가 돼야 하는데 현재 야당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얻은 표만큼 발언권을 갖는 연립정부의 방법으로도 승리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정치 연합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참여자는 누구인가?
개인(안 원장)과 정당, 시민사회를 모두 포괄해야 한다.
발언권의 비중은 어떻게 계산하나?
그건 이차적인 문제다. 적어도 거기서부터 시작하자는 얘기다. 개인 안철수와 민주당의 공동정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 안철수가 기용되거나, 아니면 안철수의 고립이다. 6·2 지방선거,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에서 선거 연합은 정책 연합을 전제로 했다. 이번에는 훨씬 더 정책을 강조하는 형태로 다자간 연합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누가 만들 수 있나? 권위주의 시절에는 비상시국회의 같은 걸 운영할 수 있었다. 지금은 각각 독립된 정치 주체들을 모으자는 건데 그 정당성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시민사회에서 중재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가위바위보식으로 이뤄진 ‘묻지마 단일화’였다. 선거 연합의 아주 낮은 단계였다. 실패가 예고된 단일화였다. 안 원장과 민주당 후보 두 사람이 중국집에서 만나는 방식, ‘당신은 총리 하고 나는 대통령을 한다’는 식은 안 된다. 안 원장을 껴안는 일이 민주당 후보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정책을 기반으로 한 공적인 약속의 틀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 틀에서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가 될 수도 있다. 일단 모여보자는 것이고, 그 과정은 고도의 정치 행위에 맡기자는 거다. 안 원장 처지에서도 어떤 세력들과 함께 국정 운영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건너뛰어선 안 될 중요한 의식이다.
예전의 단일화 모델보다 더 나빠 보인다. 시민운동(시민정치)의 실체도 애매하고, 정치가 도덕적으로 시민운동에 의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대선까지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도 아닌 애매모호한 주체들이 만들어보자는 것 아닌가.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공허하고 안 원장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무조건 모은다고 잘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단일화의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안 원장이 이번 대선에서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방향은 안 원장도 정당이 되고,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하는 게 민주적 정당성 시비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그것이 야권의 집권에 유리하지 않다면 박원순 모델이 있다. 결국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박원순 모델을 제안하는 것 이상은 어렵지 않겠나.
지금 우려되는 건 ‘마이너스 단일화’다. 안철수 지지자들은 반여당·비야당 성향이 강한데, 일부만 이탈해도 질 가능성이 있다. 누가 후보가 되든 어느 한쪽이 훼손되지 않는 선거 연합, 양쪽 모두가 국정의 주체임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안 원장을 위한 틀을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안 원장이 책임감 있게 이야기하는 게 먼저다.
사실 이 연합정부의 틀을 짤 수 있는 건 안 원장이다. 자신이 가진 지지율을 힘으로 틀을 짜야 한다.

기득권 지키려는 `계파'가 어떻게 기득권 혁파하겠나

시민도 여론조사를 통해 그 힘을 줬다. 이제 본인이 대답해야 한다. ‘나를 옹립할 수 있는 기회를 지켜볼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짜증나는 일이다. 본인에게 의지가 있다면 거친 정치의 세계에서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 정치 협상이든 정치 연합이든 먼저 제안하고, 정당이든 단체든 움직여보라는 것이다. 그런 것 없이 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까? 모호한 안 원장 머릿속을 지켜보는 도박을 할 수는 없다.
사회 민주당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는 어떤 단일화도 효과를 갖기 어렵지 않나.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 경선 이후 패한 쪽에서 안 원장을 부르는 게 낫다는 식으로 반발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 정당의 파산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긴 쪽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당에는 노무현 문중, 김대중 문중이 있고, 486 문중, 민주평화국민연대 문중, 시민단체 문중도 있다. 문중정치, 계파 분화 정치를 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정 계파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1% 기득권을 혁파하겠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성찰과 반성을 못하는 건 계파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성찰과 반성을 하는 순간 친노는 죽는다.
현재 민주당은 정권 교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역할이 부여되는 소극적 존재다. 자신들이 시민사회의 조직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현재 민주당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건 결국 대선 후보, 경선 주자들, 차기 지도자가 될 사람들 사이에서의 조정의 정치뿐이다.
사회 안철수 대통령이 탄생한다고 해도 그 정부가 성공할지는 별개 문제인데.
안 원장이 당선된다면, 그것은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의지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그 정부가 받는 압박은 조금 더 진보적일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유능한 정치 공급자가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관료제와 언론 권력, 경제 권력이 센 곳에서는 선출직 정부가 내각을 잘 구성해 정책 능력과 권력을 제어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무리 좋은 뜻이 있어도 팀을 조련할 시간이 필요한데 잘 운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상 정당 정부가 아닌 청와대 정부가 될 거다. 정권 교체가 되면 세상이 갑자기 진보적이 될까? 정상적 유권자라면 순진하게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잘못을 하나씩 교정해 정당이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게 만들고, 능력에 따라 인사를 하는 정도가 아닐까. 이런 변화의 출발이라도 얼마든지 가치 있는 일이다.
안 원장의 리버럴과, 연대와 투쟁을 중시하는 민주진보의 역사는 전혀 다르다. 근본적 갈등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전에 정책 연합을 최대한 강화해야 한다.
역대 정부에서 짧은 집권 초반 이후 레임덕이 나타난 것은 대통령이 튼튼한 정당 기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안 원장이든 민주당 후보든 누가 집권해도 새누리당이라는 강력한 야당이 존재하게 된다. 누가 되든 정치적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일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집권을 한다면 안철수 정부, 아무개 정부가 아니라 제발 ‘민주당 정부’라고 불렸으면 한다. 팀으로 정부를 책임지고, 정당은 정책 능력을 더 기르고, 정당 리더에게도 인사권을 나눠줘야 한다.
한국 정치는 지나치게 바람과 상징에 의존한다. 바람으로 대통령이 되고, 멋져서 대통령이 된다. 해당 계층이나 부문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건 잘못된 정치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정치는 불행하다. 그러나 필요할 때 영웅이 없는 것은 더 불행하다. (웃음) 영웅은 그런 정치가 반복되는 것을 종식시키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어떤 영웅에게 기대했다가 실패하면 다른 영웅을 찾아나서는 비극이 계속되면 투표율이 계속 떨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안 원장은 정책이 아니라 정치에 기여해야 한다.
정책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관료가 돼야지. 정치와 상관없이 정책만 잘하겠다는 것은 나는 옳으니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런 대통령은 싫다.

보기 싫지만 찍는 건 제발 아니었으면


사회 준비 안 된 정권 교체는 미루는 게 낫나?
정권이 바뀌는 게 좋은 일이다. 설령 또 망하더라도 그렇다. 다만 바뀌는 과정에서 좀 좋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이대로 투기하듯, 보기 싫지만 찍는 건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상징으로서 안철수와 정치세력으로서 민주당이 가능한 수준의 정치 연합이라도 구축해야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변수가 많지 않다. 반면 야권은 있는 자원, 없는 자원을 다 끌어와야 한다. 그게 안 되면 5년 전 선거와 비슷할 것이다.

사회·정리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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