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대선 승리’는 두 번이었다. 두 번 모두 단일화로 승리했다. 1997년 DJP 연합은 김대중·김종필 두 후보의 담판으로 성사됐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100%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결과가 과정의 정당성을 압도한 대선이었다. 이념과 정책을 무시한 채, 보수 지역 정당, 재벌 정치인과 손잡는 단일화 전술이 채택됐다. 야권은 그렇게 두 번의 정권을 잡았다.
두 번의 단일화, 두 번의 대선 승리
‘기울어진 축구장’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정치 지형은 이런 식의 ‘묻지마 단일화’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었다. 1990년 3당 합당과 민주자유당 창당을 통해 탄생한 보수정당은 영남-보수언론-재벌-기득권 세력의 카르텔이었다. 상대적으로 견고한 기반을 가진 보수정당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름만 바꿔가며 연속성을 유지했다. 기득권을 가진 보수의 응집력은 강했다.
올해 대선에서도 야권의 단일화 논의는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여러 방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가 9월6일 ‘새누리당 불출마 종용’ 폭로 기자회견으로 기정사실화하고, 같은 날 문재인 후보는 민주통합당의 심장부인 광주·전남 경선에서 대세를 확인했다. 두 사람을 중심에 놓은 야권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 단계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예전과는 또 다른 조건이다. 민주당의 단일화 상대는 정치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개인’이다. 민주당은 10년의 집권 기간 동안 이념과 정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해 정당 기반이 무너진 상태다. 신뢰를 잃은 정당, 그리고 열망을 담을 그릇을 갖지 못한 ‘개인’은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는 단일화는 가능한가.
안 원장과의 후보 단일화를 일찌감치 공론화한 것은 문재인 후보다. 문 후보는 지난 5월 공동정부 구성을 전제로 후보 단일화를 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안 원장을 ‘상식과 개혁의 가치를 공유하는 세력’으로 보고, 국정을 나눠 맡자고 한 것이다. 단일화에서 지는 쪽도 함께 가야 선거 승리 가능성도 높아지고, 집권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문 후보는 지난해 9월 야권 통합 운동에 나설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체성이 전혀 다른 재벌 정치인과 단일화를 거쳐야 했다. 이 때문에 개혁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한 바 있다.
공동정부론은 DJP 연합과 비슷한데, 당시에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가 만나, 총리와 경제·통일·외교 분야의 내각 추천권을 자민련이 갖는 데 합의했다. 정당 간 연립정부 구성을 매개로 한 단일화였고, 정권을 잡은 뒤 파기됐다. 문 후보의 제안 당시 당내에 “안 원장에게 대통령을 양보하려는 거냐”는 반발이 강했는데, 문 후보가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확정될 경우 논쟁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 캠프의 김경수 공보특보는 “민주개혁 진영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여전히 유효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준 교훈
최근 제시된 ‘시민연합정부론’은 민주당, 안 원장, 진보정치와 시민세력이 참여하는 ‘연합정부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야권 단일 후보를 선출하자는 제안이다. 민주당과 안 원장의 만남을 넘어선 좀더 광범위한 틀과 강력한 정책 연합을 강조한다. 이를 제기한 김헌태 한림대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는 “단순한 공동정부로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되면 안 원장은 응원단장이 되고, 반대의 경우는 민주당 특정 계파의 집권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된다.
[%%IMAGE2%%]이런 연합론과 다른 흐름으로, 민주당 내에서는 ‘입당론’도 만만치 않다. 안 원장이 입당한 뒤 경선에서 뽑힌 후보와 또 한 번의 단일화 경선을 치르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박원순 모델’도 안 원장이 경선 승리 이후 민주당 후보로 출마할 것을 전제로 이야기 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대통령 당선 전후 입당을 약속해야 한다고 본다. 현실적으로는 ‘기호 2번’ 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영선 후보가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패한 뒤 무기력과 내부 갈등이 심해졌다. ‘무소속 대선 후보’로는 민주당 후보에게 지급되는 선거보조금(152억원)도 받을 수 없고 민주당 지지층 이탈이 우려돼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시된다.
민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 원장이 민주당에 들어가는 건 필패 전략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지만, 정당정치 관점에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정당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무소속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당에 대한 장악력이 없으면 관료 조직을 통제하기도 어렵고, 개혁을 현실적으로 구현해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사회적 약자의 연합을 담는 그릇은 정당이어야 한다.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양 날개로 가더라도, 정당의 중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에서도 그렇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정당의 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당을 혁신해서 함께 가지 않으면 이겨도 안정적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과 안 원장, 통합진보당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는 ‘제3지대 신당론’은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편, 정당을 기반으로 집권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늘 선거 때마다 당을 부수고 새로 만들던 방식과 다를 바 없는 공학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붙는다.
방식이 아니라 능력과 조건이 문제중요한 건 단일화 방식이 아니라 주체의 능력과 조건이다. 민주당은 혁신에 실패하고, 안 원장이 정당정치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어떤 단일화를 하더라도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당정치에는 한탕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타이밍은 온다. 그러나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주체의 문제다. 바람을 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전환시키려면 손발이 고생해야 한다. 바닥에서부터 뛰어야 한다는 거다. 능력도 안 되는데 갑자기 지지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길 바라나?” 민주당과 안 원장이 한탕주의를 버리고 무너져내린 정당의 기반을 구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지적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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