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말, 여권에선 이런 말이 나돌았다. “국가정보원이 김제동씨를 사찰했다고 한다. 김씨를 직접 만나 협박까지 했단다. 다른 연예인도 여러 명 사찰당한 걸로 안다. 청와대가 ‘촛불 트라우마’를 못 벗어나니, 연예인들까지 잡도리를 한 것 아니겠느냐.” 당시는 한국방송 쪽으로부터 라디오 진행자 사퇴 압박을 받던 방송인 김미화씨의 ‘블랙리스트’ 폭로로 여론이 들끓어, 1년 전 에서 김제동씨가 하차한 이유가 정치적 외압 때문이라는 해석이 다시 회자되던 때였다.
경찰에도 김제동씨 사찰 문건 있어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김제동씨는 지난 4월3일 문화방송 노조와 한 인터뷰에서 2010년 5월께 국정원 직원이 두 차례 찾아와 “‘VIP께서 걱정을 많이 하신다.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웬만하면 가지 마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미화씨도 비슷한 시기 국정원 직원이 찾아와 “‘VIP가 못마땅해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 사회 봐서 좌파로 본다는 말도 들었다”며 사찰당한 정황을 공개했다. 통상 국정원 등은 대통령을 ‘VIP’로 지칭한다. 김제동씨는 노 전 대통령 노제 때도 사회를 봤고, 김미화씨는 여성운동과 촛불집회 등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좌파 연예인’으로 낙인이 찍힌 상황이었다.
김제동씨는 경찰한테도 사찰당했다. 4월2일 공개된 경찰의 ‘정부인사에 대한 정보보고’ 문건엔 “09. 9월 중순경 (중략)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단독 면담, 특정 연예인 명단과 함께 이들에 대한 비리 수사 하명받고, (중략) 내사 진행”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문건엔 “09. 10월 중순경 방송인 ‘김제동’의 방송 프로그램 하차와 관련하여 (중략) 좌파 연예인 관련 기사가 집중 보도됨에 따라, 더 이상 특정 연예인에 대한 비리 수사가 계속될 경우 자칫 좌파 연예인에 대한 표적수사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그 즉시 수사 중단의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민정수석실 비선 보고”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하명으로 2009년 9월 경찰이 연예인을 내사하기 시작했는데, 김씨가 방송을 그만둔 뒤 나빠진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이런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하명은 김씨 등이 국정원 직원한테 들었다는 ‘VIP’의 걱정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민정수석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수사 축소 의혹을 받는 권재진 현 법무부 장관이었다.
‘애 키우고 가족 있는 사람인데 조심해라’
‘특정 연예인 명단’을 청와대에서 받았다는 이 문건 내용은 사찰당한 이가 김제동씨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의미한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파일 가운데 ‘연예인’ 폴더가 별도로 존재했다는 사실까지 놓고 보면, 청와대·총리실·국정원·경찰 등 권력기관이 집요하게 ‘VIP가 못마땅해하는’ 연예인을 뒷조사했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4월3일 “김제동·김미화씨 등 방송인에 대한 사찰과 강제 퇴출은 방송 장악을 위한 이명박 정부의 의도적 사찰이자 정치적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문화방송 앵커 출신인 신 대변인은 “앵커에서 쫓겨날 때 저에 대한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당신도 애 키우고 가족 있는 사람인데 조심해라’는 경고를 들었다”며 “청와대가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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