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꿈꾸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7년 통치를 마감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난의 행군과 사회주의 강행군, 선군정치와 핵보유,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화폐 개혁, 그리고 두 번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을 남기고.
핵 개발과 국제적 고립
1994년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휘청거리는 나라를 ‘위대한 수령’(김일성 주석)에게서 물려받았다. 당시 북한은 국제적으로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1990년대 초 붕괴해,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을 잃었다. 특히 북한은 옛 소련이 1990년 9월 남한과 수교하고, 중국마저 1992년 8월 남한과 수교하자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다. 국제적 고립은 북한 경제를 침몰시켰다. 우호가격과 구상무역에 바탕을 둔 북한의 대외교역은 경화를 사용하는 일반적 교역 관계로 전환됐다. 그 여파는 극심한 에너지난과 급격한 산업생산 감소로 나타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각한 자연재해마저 북한을 휩쓸었다. 적게는 20만~30만 명, 많게는 300만 명까지 추정되는 아사자들이 발생할 정도로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에 빠져들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하며 이른바 ‘고난의 행군’과 ‘사회주의 강행군’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민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정권과 체제를 지키려고 선택한 방편은 ‘선군정치’였다. 선군정치는 위기 돌파를 위해 군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운 정치적 선택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선군정치를 통해 정권과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권과 체제 유지를 넘어선 선군정치의 유일한 성과는 사실상 ‘핵 보유’뿐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했다.
북한이 선군정치와 핵개발로 인해 지급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선군정치는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으로 좌우되던 자원 배분을 더욱 왜곡했다. 얼마 안 되는 자원마저 국방을 중심으로 한 특권적 부문에 집중됐다. ‘인민 경제 회생’은 빈 구호에 그쳤다. 김 위원장의 핵개발은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그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북한은 1994년 10월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채택하고, 영변의 5MWe 원자로와 관련 시설을 동결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이후 새롭게 대두된 우라늄 농축 문제로 인해 여전히 국제적 고립과 제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였던 신포의 1천MWe 경수로 2기는 기초공사만 이루어진 채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선군정치와 핵개발은 북한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런 김 위원장의 선택은 세계적 탈냉전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냉전의 섬’으로 홀로 남게 되는 역사의 비극을 낳았다.
화폐개혁과 시장의 위축
북한 인민들은 스스로 먹고사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강요된 ‘자력갱생’이 그것이다. 인민들은 자력갱생을 위해 자생적 시장을 만들어냈다. 북한이 1950년대 농업집단화와 1960년대 계획의 일원화와 세부화, 대안의 사업체계를 구축하며 사실상 사라졌던 ‘시장’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생적 시장은 국가의 공급이 끊어진 현실에서 주민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경제활동’이었다.
국가도 그 시장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시행하고 2003년 종합시장을 건설하는 등 자생적으로 생겨난 시장에 편승했다. 비록 2004년 시범적 단계에서 끝났지만, 박봉주 총리가 추가적인 ‘시장 개혁’을 추진하도록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실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부분적 개혁의 지지부진한 성과 앞에서 보수적인 반대세력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개혁 후퇴는 2009년 11월 말의 화폐개혁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인민이 시장을 통해 축적한 부는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었고, 시장은 심각하게 위축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고난의 행군에서 살아남은 인민들에게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강성대국’ 건설을 제시했다. 1998년 등장한 강성대국 비전은 2007년 말,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을 맞는 2012년까지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로 구체화됐다. 그러나 북한은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욱이 내부 개혁마저 후퇴해 그나마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자원 유입도 본격적인 경제 회생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강성대국의 비전은, 북쪽의 공식 설명에 따르더라도,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핵 보유에 의한 정치사상 강국과 군사 강국 ‘달성’에 그쳤다. 경제 강국은 이루지 못한 꿈으로만 남게 됐다.
이렇게 보면 김정일 위원장은 통치 17년 동안 선군정치를 통해 정권과 체제를 그럭저럭 유지하다가 핵개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제재, 여전히 피폐한 경제를 아들에게 물려준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 ‘김정일 시대’의 전부는 아니다.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로 진전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정일 위원장은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받아들였다. 끊어졌던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도 연결됐다. 비록 2008년 7월 중단됐으나, 남북의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의 상징인 금강산관광도 빠질 수 없다.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의 실천 강령이라 할 2000년 6·15 공동선언과, 그 이행 방안이라 할 2007년 10·4 정상선언은 ‘김정은 시대’ 북한 대남정책의 기본 지침이 될 것이다. 비록 천안함 침몰 문제와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장애물로 남아 있지만, 김정일 위원장 시대가 남긴 남북 합의와 협력 사업들은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에 중요한 나침반 노릇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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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북한은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이제 ‘김정일 없는 김정일의 북한’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과 유훈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17년의 통치 기간에 여러 갈래의 유산을 남겼다. 김정일 위원장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국제사회가 반대하는 핵 보유를 선택했다.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과감한 개혁 앞에서 멈칫거렸다. 그리고 다시금 경제와 사회에 대한 국가 주도의 통제를 주문했다. 남북 간 협력관계 발전을 원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체제 붕괴’ 시도를 비난하며 군사적 대응도 불사했다. 남쪽으로 가는 길이 막힌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후계자와 북한 경제의 장래를, 그렇게도 경계하던 중국에 의탁했다. 이제 김정일 위원장이 남긴 유산 가운데 무엇을 ‘유훈’으로 계승할지는 북한의 새 지도부가 선택할 일이다. 불행히도 새 지도부의 일성은 ‘선군영도’ 계승이었다. 그러나 ‘경제 강국과 인민생활 향상’을 이룩하는 길은 ‘수령님’(김일성 주석)의 유훈인 한반도 비핵화와 “(중국의 개혁·개방 현장 방문이) 늦은 감이 있다. 자주 와야겠다”고 한 ‘장군님’(김정일 위원장)의 유언에 있다. 북한 새 지도부가 현명한 결단을 하기 바랄 뿐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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