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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의 눈물’이 방송을 탔다. 2001년 문성근의 지지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후보자 노무현을 담은 사진으로 만들어낸 선거 광고였다. “노무현의 눈물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카피를 싣고 흐른 이 장면은 이후 한국의 정치 광고들을 바꿔놓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욕쟁이 할머니’ 광고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의 “어머니는 재봉틀 어머니입니다” 광고도 흑백 화면에 곁들여지는 후보의 진심을 강조하는 화면들로 2002년의 영향이 다분했다.
서로 취약계층 표심을 노리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선거 광고전을 보노라면 한 장의 사진이 우선 눈에 뜨인다. 사진은 2006년 6월 박원순 후보가 전국을 취재여행할 때 전북 전주에서 만난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이 사진을 활용한 박원순 후보의 공보책자는 선동성이 강한 정치 광고에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이다. 후보자의 얼굴은 작은 데 비해 ‘서울’이라는 캘리그래피가 뚜렷하다. 얼핏 한 장의 작품 사진 같은 구성이다. 박 후보 캠프 쪽은 “앞선 두 서울시장은 서민들의 말에 귀기울일 것 같지 않은 이미지가 있어서 박원순 후보는 서민들의 옆에 서서 귀기울이고 독려하는 이미지를 부각했다”고 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광고는 후보들이 자신의 약한 고리를 향해 손짓하는 형국이다. 야권 단일후보 박원순은 노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예스러운 느낌이 드는 캘리그래피로 중·장년층의 표심을 노렸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 광고물은 젊은 층을 향한 구애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해 대학생들과 찍은 사진으로 마무리하기까지 나 후보의 공보책자에서는 단 한 명의 중·장년층도 눈에 띄지 않는다. 시장 상인들조차 젊은 층이다. 나후보의 홍보물은 정치 광고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후보자의 화사한 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세련되고 간결한 편집으로 읽는 사람들의 선의와 우호적인 태도를 노리는 정치 광고의 전형에 가깝다. 특이한 점은 앞선 서울시장 여성후보였던 강금실·한명숙 후보와 달리 카피나 이미지에서 여성이라는 사실을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은 주부들을 타깃으로 한 ‘나쁜 여자’라는 광고를 내보냈지만 이번엔 여성 유권자를 위한 광고가 없었다. 나경원 후보 TV 광고를 제작한 모브의 김제선 감독은 “(한국적인 상황에서) 여성 후보는 득보다 실이 클 우려가 있어 굳이 강조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경원의 안정과 박원순의 파격. 유권자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는 몰라도 광고 전문가들은 박원순 후보 광고가 정치 광고의 새로운 유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한다. 다음 대선 때는 캘리그래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후보자의 스토리를 담은 사진이 등장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오바마, 을 활용한 광고
TV 광고는 부동층 10%를 노리는 싸움이다. TV 광고에선 두 후보 모두 노래에 이야기를 싣는 ‘뮤지컬 광고’를 택했다. 박원순 후보는 손학규·한명숙·유시민·노회찬 등 정치인들과 신경민, 가수 이은미, 조국 교수 등 26명이 모여 라는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 광고를 촬영한 팝콘 유병찬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는 인상을 주려 했다. 건강한 생각을 지녔지만 정치적 참여엔 소극적이던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기획한 합창”이라고 했다. 나경원 후보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용자제작콘텐츠(UCC) 광고를 공모했다. 그중 대상을 받은 UCC 동영상과 나경원 후보의 유세 장면이 합쳐져 TV 광고가 나왔다.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현장,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노래하는 장면과 나경원 후보가 거리를 돌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합쳐진 이 광고는 나경원과 젊은이들의 생각이 한가지라는 것을 강조한다. 광고가 나간 뒤 김제선 감독은 “대학생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나 후보의 젊음, 열정, 당당함, 세심함 등의 코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양쪽의 광고는 후보자 대결이라기보다는 진보-보수의 ‘진영 대결’이라는 이번 선거의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지자들의 합창과 UCC 동영상이라는 두 후보의 광고는 2008년 미국 대선의 오바마 뮤직비디오를 닮았다. 이 UCC 동영상은 윌 아이엠과 제시 딜런이 오바마 후보의 연설 ‘예스, 위 캔’을 노래로 만들고 가수·운동선수·배우 등 40여 명이 한 대목씩 노래를 부른 것이다. 당시 유튜브에서 돌며 공식 선거 광고보다 더 유명해졌다. ‘오바마의 예스 위 캔’으로 불리는 후원자가 참여하는 뮤지컬 광고는 당분간 대세가 될 전망이다.
선거 중반 투표율이 관건으로 떠오르자 박원순 후보는 라디오 광고에서 의 ‘애정남’을 패러디해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애매한 투표일, 박원순이 정해드리겠습니다. 투표일 1시간만 일찍 일어나십시오.” 광고기획사 쪽은 “반한나라·비민주 성향을 가진 무당파를 겨냥했다. 검증과 네거티브 공방이 길어지자 빠져나간 중도층을 불러들이려는 광고”라고 설명했다.
끝까지 네거티브로 가면?
선거캠프에서 홍보를 맡은 사람들은 “당락은 지지층보다는 반대층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지지층은 선거 초반에 이미 정해진다. 본래 네거티브 캠페인은 단순히 정치 무관심을 유도하는 전략이 아니다. 상대 후보가 싫어서 우리 후보를 찍도록 하는 적극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운동에서 네거티브 효과는 미지수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사회불안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이용해 네거티브 선거 전략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적이 있지만,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만으로 캠페인을 완성한 일은 없었다. 정책과 이슈를 겨냥한 네거티브 광고가 아닐 때는 유권자가 네거티브를 주도하는 후보가 콘텐츠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국제학과 교수는 “보통 선거 캠페인은 ‘정체성 표현, 주장, 상대방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비전 제시’라는 4단계의 순서를 밟는데 이번 나경원 후보 쪽 선거 캠페인은 초반부터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 특이하다”며 “네거티브 전략은 초기 공략엔 유리하지만 뒷심이 부족할 우려가 있다. 선거 막판이라도 후보자 정체성이나 주장을 알리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는 10월21일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협찬 후보는 NO!”라는 신문 광고로 후반부도 네거티브 광고전을 펼 것임을 예고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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