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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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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츠의 1월의 여름휴가

12~1월 주로 국내에서 10~30일 휴가를 보내는 아르헨티나…
공무원 그로츠는 여름휴가를 위해 1년을 준비한다
등록 2011-07-28 07:10 수정 2020-05-02 19:26

여름휴가철이다. 당신의 여름휴가는 며칠인가? 3일? 앞뒤 주말 붙여 9일? 눈치 끝에 사흘 더? 여름휴가를 하루도 못 가는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지금 한국의 여름휴가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를 실현하기에 짧다. 좀더 오래 푹 쉬면서 재충전할 수는 없을까?
다른 나라는 어떻게 여름휴가를 보내는지 알아봤다. 가장 큰 차이는 휴가를 눈치 안 보고 일주일 이상 붙여서 쓸 수 있느냐 여부였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보통 3주간 여름휴가를 보낸다고 한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한국식 여름휴가가 없는 나라도 있다. 나라마다 휴가를 보내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여름휴가가 없더라도 다른 연휴가 많아 재충전의 기회를 누렸다. 한국처럼 ‘죽어라’ 일하는 나라는 거의 없는 듯하다.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치로 1년 평균 노동시간을 넣었다. 한국의 1년 평균 노동시간은 2256시간(2008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08년 현재 30개 회원국 가운데 최장이다. 네덜란드는 1389시간, 노르웨이는 1422시간 일한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의 3분의 2 수준이다. 잘살아서 일을 적게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적게 해서 잘살게 된 것은 아닐까. 쉬어가며 일하고 살 수 있어야 선진국이요, 복지국가다. 세계인의 휴가를 남미 아르헨티나의 사례부터 살펴본다. _편집자



» 그로츠가 2010년 베네수엘라를 방문했을 때 모습.

» 그로츠가 2010년 베네수엘라를 방문했을 때 모습.

남미 특유의 낭만과 여유는 한국의 대척점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휴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여름휴가는 12월부터 시작돼 1월(45%)과 2월(30%)에 절정을 이룬다. 온 나라가 ‘휴가 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관공서 업무는 물론 일반 상거래까지 일시 정지가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산과 바다로 빠져나간다. 1월과 2월 내내 휴가지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국도는 캠핑차량과 자동차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을 자아낸다. 관공서와 병원, 은행, 상점 등의 업무가 원활하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지만, ‘휴가 중’이라면 이해하는 분위기다. 마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준비하고 기다리며 1년을 사는 듯하다.

“20일 휴가도 업무에 지장 없어”

31살의 마우리시오 그로츠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위치한 멘도사 주정부의 컨설턴트로 일하는 공무원이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겨울이지만, 그로츠는 벌써부터 여름이 기다려진다. 올여름 휴가는 아르헨티나 최대 여름 휴양지이자 은빛 모래를 자랑하는 마르델플라타 해변에서 보낼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는 멘도사는 안데스 산맥과 맞닿은 산악지역이어서 바다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해변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를 선호한다.

미혼인 그는 주로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낸다. 그로츠는 20일의 휴가를 받지만, 일반 노동자들의 법정 휴가 기간은 근속연수에 따라 평균 14일에서 35일까지 차이가 있다. 6개월 이상 5년 미만의 경우 평균 14일, 5~10년은 20일, 10~20년은 28일, 그리고 20년 이상은 35일로 근속연수가 많을수록 휴가 기간도 증가한다. 여름휴가를 10~15일 가고 나머지를 나눠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법정 휴가를 여름휴가 때 몰아서 쓴다. 20일 동안 자리를 비우면 회사 업무에 지장이 없느냐고 묻자 그로츠는 “장기 휴가지만 되도록 휴가 전에 맡은 일을 마무리하고 업무 일정을 조정할 뿐 아니라, 일상적 업무는 동료 직원들이 대신 해주기 때문에 회사 업무에 큰 지장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르헨티나 여름휴가의 특징 중 하나는 국내에서 보내는 휴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80% 이상이 해외보다는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길 원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는데, 한국과 달리 워낙 땅이 넓고 기후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자연과 계절을 찾아 여행을 할 수 있어서 굳이 해외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 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함께 어울려 다양한 활동이나 모험을 즐기기보다는 조용하게 휴식을 취한다. 이런 이유로 휴가철 해변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일광욕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여름휴가지로 바다와 산을 가장 선호하며, 60%는 매년 새로운 장소를 휴가지로 결정하는 반면 40%는 이전에 찾았던 휴가지를 또다시 찾는다. 또 여행사에 여행 일정을 의뢰하기보다는 숙박·교통 등 모든 여행 일정을 직접 계획한다.

한 달 임금을 쓸지라도

10일 이상 장기간의 휴가를 떠나려면 휴가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 달 임금이 3천페소(약 75만원)인 그로츠는 휴가 비용으로 평균 60만원 남짓을 쓴다. 특별히 지급되는 휴가비는 없다. 이것이 한 달 가까이 여름휴가를 보내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위해 1년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로츠에게 한국의 평범한 직장인들은 일주일 정도의 여름휴가를 떠난다고 하자 “일주일의 휴가는 1년간의 피로감을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가 기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안정감을 얻기 때문에 휴가 뒤에 오히려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 적어도 15일 이상의 휴가 기간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손혜현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 아르헨티나 1년 평균 노동시간 #
2158시간(2005년·국제노동기구(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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