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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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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인간을 위한 나라는 없다

1990년대 이후 대표적 공익신고 사건 38건 전수 조사 결과, 12건(31.5%)만 비리혐의자 유죄판결…45명 공익신고자 가운데 20여명 파면·해임 반면 비리혐의자 10명 승진
등록 2011-07-12 15:38 수정 2020-05-03 04:26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올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달 29일 공포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시행령 초안을 만들어 입법 예고한 상태다. 이를 계기로 이 1990년대 이후 대표적 공익신고 사건 38건의 처리 결과를 모두 정리했다.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참여연대가 작성한 리스트를 주로 참조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당시 비리 혐의자 및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조사 결과와 그들의 현황 추적에 취재의 초점을 맞췄다. 38건과 관련된 내부공익신고자 45명의 현황도 추적했다. 아직, 정의의 인간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이 있다. 정의는 공익신고자들의 피를 먹고 겨우 한 뼘씩 자라고 있었다. _편집자

강물처럼은 아니지만, 정의는 조금씩 흘렀다. 반부패네트워크와 전국공무원노조가 7월6일 공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공무원(1006명) 가운데 19.1%가 ‘부패방지법 제정 이후 공무원 부패가 매우 감소했다’고 답했다. 28.9%의 공무원은 부패가 ‘약간 감소했다’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48%의 공무원이 부패방지법의 효과를 인정한 셈이다.

올해 3월 국회를 통과한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 침해 행위를 신고하는 자와 그 협조자를 보호함으로써 공익신고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국민 생활의 안정과 깨끗한 사회 풍토의 확립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1999년 (나남출판)를 펴내는 등 내부공익신고(내부고발) 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박흥식 중앙대 교수(행정학)는 성공한 공익신고의 기준으로 ‘내부고발자의 보호’와 ‘그들이 사회에 한 기여’를 꼽았다.

검찰은 기소유예, 법원은 선고유예

이 38건의 공익신고 사건 처리 결과를 분석해 ‘성공한 공익신고’를 추적한 결과, ‘수사-유죄판결’(선고유예 제외)로 이어진 경우가 12건(31.5%)에 그치는 등 대부분의 공익신고가 형사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비리 혐의자나 사건 책임자 가운데 기소유예 2명, 감독관청 고발 뒤 혐의 없음 1명, 선고유예 판결 4명, 벌금형 5명 등 검찰과 법원의 ‘봐주기’가 눈에 띄었다. ‘기소유예’란 검사가 혐의가 어느 정도 인정되는 피의자에 대해 범행 동기, 범행 뒤의 정황 등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이다. 피고인이 유예기간을 무사히 보내면 유죄판결의 선고가 없어지는 효력이 있다. 부적절하게 ‘봐주기’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이 계속된다.

» 위키리크스의 전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가 7월6일 서강대에서 위키리크스와 공익 신고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 위키리크스의 전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가 7월6일 서강대에서 위키리크스와 공익 신고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우리는 끔찍한 과잉 비밀의 세계에 살고 있다. 더 많은 (정보) 투명성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21 이종찬

이 옹진축협 비리 공익신고 사건 결과에 대해 국방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민간인인 축협 직원은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이 직원과 짜고 납품 비리를 도운 해병대 장교와 부사관 2명에게는 1991년 4월2일 군사법원이 모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고 이 판결이 확정됐음이 드러났다. 비리 군인 2명은 선고유예 판결이 확정된 뒤 곧장 전역했다고 해군본부는 6월30일 밝혔다. 그러나 해군본부가 이들의 실명과 계급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해 이들의 근황은 파악할 수 없었다.

1998년 정경범 전 백일초등학교 행정실장이 을 펴냈다. 책에는 일선 학교의 인사 비리, 학교 급식 비리 등 당시 광주교육계의 비리와 관련자 실명이 상세히 기록됐다. 이 자서전을 계기로 광주지검이 수사에 나서 관련자를 기소했다. 그러나 정보공개 청구 결과, 당시 법원은 구속 기소된 광주 서부교육청 관리국장에게 선고유예 및 추징 620만원, 불구속 기소된 초등학교 교장에게 선고유예 및 추징 200만원 판결을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 함께 기소된 교육공무원은 벌금 200만원, 또다른 교육공무원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 60만원 선고를 받았다. 당시 광주교육청이 비리에 연루된 교장 2명 및 일반직 6급 직원 5명에게 견책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징계를 마무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서부지검은 2004년 내부공익신고로 알려진 연세대 독문과의 연구비 횡령 사건 연루 교수 3명 가운데 1명에게 기소유예 처분했다. 법원 취재 결과, 당시 서울서부지검은 나머지 2명의 교수도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대신 약식기소했음이 밝혀졌다. 서울서부지법은 2004년 11월11일 김수용 교수와 김용민 교수에게 벌금 500만~1천만원을 선고했다. 김수용 교수는 정년퇴임한 상태고, 김용민 교수는 지금도 연세대 독문과에 근무하고 있다.

10건은 수사조차 하지 않아

‘석연찮은 혐의 없음 처분’도 주목된다. 1999년 서울 수서청소년수련관을 위탁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상희원의 유호준 이사장 비리가 내부공익신고로 알려졌다. 직원이던 조성열씨가 이사장의 지시로 만든 자신 명의의 통장을 통해 횡령이 벌어지는 것을 폭로했다. 감독관청인 서울시가 감사를 벌여 상희원이 운영 수입금 2억3천여만원을 빼돌려 불법으로 쓴 사실을 적발하고 유 이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 관련자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유 이사장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내부공익신고자인 조성열씨만 기소했고 조씨는 벌금형을 받았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내부공익 사건도 이와 비슷하다. 감사로 근무하던 양시경씨가 2006년 제주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는 JDC가 매입할 토지의 감정가를 부당하게 높여 토지 소유주인 조아무개씨에게 특혜를 주려 한다고 주장했다. 양씨는 이 사건으로 해임된 뒤 해임 취소 소송을 내 승소했다. 서울고법은 판결문에서 △사업전략실장인 백인규씨와 직원인 권인택씨가 이사회에 감정평가 근거 제출을 거부한 점 △권씨가 토지 소유주를 따로 만나 토지수용 계획을 알려준 점 등을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이 제주지검에 특혜 의혹을 받은 실무자 수사 여부, 당시 JDC 이사장 수사 여부, 대토지 소유주 소환수사 여부, 당시 수사 검사 이름 등을 물었으나, 제주지검은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며 모두 답하지 않았다.

SKT 우정사업 로비 사건은 검찰과 법원 모두에 책임 문제가 거론된다. 2010년 우정사업본부 사업과 관련해 SKT 직원이 기술위원에게 금품 로비를 한 사실이 내부공익신고로 알려졌다.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정선재)가 올해 5월27일 우정사업 평가위원에게 상품권을 건네 로비한 혐의(배임증재)로 기소된 SKT 직원 박재근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죄질이 무겁다”면서도 “박씨의 범행이 제안서 평가 결과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당시 과장에 불과했던 박씨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지적이 시민단체에서 제기됐지만 검찰은 박씨만 기소했다. 다른 SKT 임직원이 박씨에게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나면 SKT가 ‘부정당사업자’로 지정돼 일정 기간 정부 사업을 수주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이재근 팀장은 “진보정당 1만원 후원자는 주저없이 기소하는 검찰이 유독 반부패 사건이나 공익신고사건의 경우 엄정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공익신고 사건은 ‘공익신고자·언론·시민단체’의 시각과 ‘경찰·검찰·법원’의 법률적 판단이 크게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38건 가운데 내부공익신고자가 소속된 기관이 의혹을 전면 부인한다는 이유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수사기관이 수사조차 하지 않은 사건이 10건에 이른다. 구체적인 책임자 처벌 없이 제도 개선만 이뤄진 경우도 7건이다. 윤석양씨의 보안사 사찰 공익신고나 이지문 부대표의 공익신고처럼 유명한 사건도 책임자 형사처벌이나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조직을 우선하는 윤리”

전문가들도 이런 괴리를 지적한다. 위키리크스 전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는 7월6일 서강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합법적 비리와 비합법적인 정의의 충돌을 민주화할 것”(democratization of lawful wrong vs unlawful right)이라는 표현으로 이 딜레마를 지적했다. 그는 문제의 해법으로 위키리크스 같은 인터넷 기반의 ‘공공적 조사’(public scrutiny)를 꼽았다. 이지문 부대표는 에서 “조직을 우선시하는 윤리” “집단 성향 조직 문화”의 문제를 지목했다. 내부공익신고자를 ‘왕따’시키는 조직이 공정한 자체 조사를 벌이거나,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에 협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이런 괴리 탓에 공익신고자와 비리 혐의자의 현황이 크게 엇갈린다. 전수조사 결과, 당시 공익신고자와 시민단체가 지목한 비리 혐의자나 사건 책임자 가운데 공익신고 사건 이후에도 조직 내에서 승진한 사람이 10명으로 드러났다. 법원 판결문에서 대토지 소유주와 몰래 만난 사실이 인정된 JDC 직원 권인택·백인규씨가 올해 4월 나란히 승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리 사학 이사장 등 비리 혐의자나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 가운데 아직까지 현직에 있는 사람도 8명에 달했다. 윤석양씨 내부공익신고로 경질·해임된 당시 이상훈 국방장관은 이후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재향군인회장 등 고위직을 두루 거쳤고 지금은 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 외교안보통일분야 위원이다. 당시 조남풍 보안사령관은 해임된 이후 1야전군사령관을 지냈고, 전역한 뒤 새천년민주당 총재 안보특별보좌관, 노무현 대통령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17대 총선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등을 역임했다. 반면 38건과 관련된 45명의 공익신고자 가운데 20명이 공익신고 당시 파면·해임됐다. 중징계 받은 공익신고자도 다수다. 이 중 소송을 통해 복직된 공익신고자는 12명이었고, 그나마 소송도 수년씩 걸렸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 1990년 이후 대표적 공익신고 사건 처리 결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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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어떻게 취재했나
15개 국가기관에 모두 19건의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공익신고자, 사건 책임자 등 직접 관련된 인물들과 25건의 전화 인터뷰를 했고 4명은 직접 만나 면접 조사했다. 상당한 분량의 과거 기사, 논문, 보고서, 도서 등을 참고했다. 기록 보존 기간이 만료된 사건은 관련 시민단체와 노조 등을 폭넓게 접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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