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분당 과정에서 저의 날선 언어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6월18일 민주노동당 당대회 축사)
“민주노동당 내 정파 관계의 중재자였던 저 권영길은 2007년 대선 경선에 나서면서 중재자의 역할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당내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고, 그것이 분당으로 이르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받으셨던 모든 분들, 특히 진보신당 당원 동지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6월22일 기자간담회)
날선 공방은 사과로 봉합됐지만2007년 대선 참패, 그리고 2008년 민주노동당(민노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 당시 전면에 부각됐던 두 주인공이 해묵은 과거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진보정당 통합의 절박감 때문이었다.
지난 5월31일 이정희 민노당 대표와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를 포함해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 진보 진영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진보통합연석회의’는 “노동자·농민·서민들과 시민사회의 열망에 부응하고, 2012년 총선·대선의 승리와 함께 새로운 희망의 대안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2011년 9월까지 ‘진보정치 대통합으로 설립될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진보통합연석회의 최종합의문’(이하 최종합의문)을 새벽까지 이어진 마라톤 회의 끝에 만들어냈다.
새로 건설할 진보정당이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 보여주는 20대 주요 정책 과제를 담은 부속합의서를 포함해 연석회의 참가자들이 서명한 최종합의문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각각 최고 의결기관인 당대회를 열어 ‘승인’을 받고 수임기구를 만들어 당 운영에 관한 구체적 합의를 한 뒤 9월까지 광범위한 진보세력이 참여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을 완료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통합 논의에 참여했던 사회당은 합의문에 동의하지 않아 통합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6월19일 이틀째 당대회를 연 민노당은 대의원(재적 841명 중 594명 참석)의 만장일치로 최종합의안을 승인했다. 다음은 진보신당 차례였다. 속내야 어찌됐든 민노당에서는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밖으로 불거지지 않았지만 진보신당은 사정이 달랐다. 북한에 대한 견해 차이, 당직 및 공직 후보자 선출 과정과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주파(NL) 계열이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패권주의적 당 운영 방식을 비판하며 탈당해 새 둥지를 꾸린 터라, 과거의 적폐들이 극복되지 않는 한 같이할 수 없다는 독자파의 세가 상당했다.
조 대표를 포함해 심상정·노회찬 전 대표 등 민노당 시절부터 당 지도부였거나 국회의원을 지내 인지도가 높은 인사들은 통합에 적극적이지만, 당 중심에서 멀어질수록(중앙위원→대의원, 서울→수도권→지역) 그 강도는 약하다. 게다가 최종합의문 가운데 북한 체제와 권력 승계 부분에 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이정희 대표와 조승수 대표가 날선 공방을 벌이고, 국민참여당의 참여에 관한 견해차까지 불거지자 ‘살얼음판’이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인정’하지만 ‘미흡’하다그런 가운데 열린 6월26일 진보신당 당대회는 통합의 기운이 높아질지 여부가 갈리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권영길 전 대표의 6월22일 기자간담회는 분수령에 서 있는 진보신당 대의원을 향했다. 하지만 “삼선교 쪽방의 국민승리21 시절부터 2004년 총선 승리의 영광, 분당의 상처까지 모든 고난과 영광의 세월 동안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은 권영길의 영혼이었다”는 대목에서 눈물을 삼키기도 했던 ‘늙은 노동자’의 호소도 진보신당 대의원들의 두꺼운 얼음벽을 녹이지는 못했다.
6월26일 진보신당 당대회는 결론을 유보했다. 최종합의문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당대회 현장에서 발의된 ‘진보신당 조직 진로와 관련한 특별결의문’을 가결했다. 특별결의문은 지난 5월31일 타결된 최종합의문에 대해 “연석회의에 참여한 제 정당 단체 대표자의 합의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미흡’하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민노당과 당 운영 방식 등에 대한 후속 협상을 한 뒤 8월 당대회를 다시 열어 당의 진로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후속 협상의 내용으로 △진보신당과 민노당 대표의 합의문 이견에 대한 확인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대한 입장 △패권주의 극복과 새로운 진보정당의 민주적·통합적 조직 운영 방안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진보 통합 정당 참여 여부는 민노당과의 협상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진보정당 통합의 길에 다시 짙은 안개가 내린 셈이다.
이날 진보신당 당대회의 결정은 팽팽한 세를 유지하는 통합파와 독자파 사이 타협의 산물이었다. 김형탁 사무총장 등 대의원 18명은 특별결의안을 제안하며 “5·31 합의문 승인을 둘러싸고 여전히 큰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안건을 직접적으로 다룰 경우 합의문 승인, 부결, 안건 반려 등 그 어떤 경우에도 독자파·통합파 어느 한쪽의 기대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당 분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두 달 동안 큰 견해 차이를 해소할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당장 통합파와 독자파의 주요 인사들의 당대회 결정에 대한 평가와 두 달 뒤 전망이 크게 엇갈린다(00쪽 상자 기사 참조). 통합파는 “지난해와 지난 3월 당대회 등 크게 볼 때 통합의 흐름이 강화되는 추세이며, 두 달 동안 진보정치의 발전 전략 등 미래지향적인 토론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8월 당대회에서 모두의 동의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강한 독자파를 제외한 이들은 큰 흐름에 동참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전제가 있지만 다분히 기대가 섞인 전망이다.
독자파는 편차가 있다. 김종철 전 대변인처럼 큰 가닥은 정리될 것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두 달을 갈라섬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는 쪽도 있다. 두 달 이후 남은 독자파를 중심으로 진보를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녹색사회당을 추진하겠다는 김현우 녹색위원장(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대표적이다.
“실제로는 패권주의가 핵심”걸림돌은 또 있다. 통합파의 당내 설득 작업은 민노당과의 협상 결과에 연동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두 당은 각각 7월4일 첫 수임기구 회의를 열 예정이다. 최종합의문에서 원론 수준에서 합의한 △소수 배려 △일정 시기까지 공동대표제 등 당 조직의 공동 운영 △합의제 존중의 원칙 △1인1표제 등을 구체화하게 될 텐데 이해가 엇갈리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수 배려의 원칙은 당직 또는 공직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당세가 약한 쪽을 배려한다는 것인데,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모두 진성당원들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어, 거대 정당들이 다른 정당들과의 통합 과정에서 즐겨 이용하는 지분 보장이나 전략 공천 같은 배려가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거나 여론조사를 일정 비율 반영하는 식으로 변화를 꾀할 수는 있겠지만 당원이 결정하는 구조를 흔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 조직의 공동 운영에 관해서도 이견이 불거질 수 있다. 소수 쪽에서는 일정 기간을 길게, 그리고 가능한 한 기층 조직까지 공동 운영을 하고 싶어하고 다수 쪽은 그 반대를 원한다. 합의제를 존중하되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지는 사실 해답을 찾기 어렵다. 다수결의 원리는 다수의 지배와 소수 의견 존중을 핵심으로 하는데, 소수 의견을 묵살하는 데 악용되면서 패권주의화하기도 한다. 이는 운용과 문화에 관한 내용이어서 명문화하기가 난감하다.
따라서 양 당 수임기구 사이의 협상이 순탄하지는 않을 텐데 이런 내용은 다시 진보신당 내부 논쟁 구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2004년 민노당의 분당 이후 무당적 상태를 유지해온 한 정치권 인사의 애정 어린 관전평은 그래서 귀담아들을 만하다.
“2004년 10석을 얻어 원내에서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민노당은 실력을 키우고 국민의 바람에 부응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분당을 하고 허송세월을 했다. 통합파와 독자파가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으면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의미가 있다. 하지만 표면화된 것은 북한 문제였지만, 실제 내면은 패권 문제였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진보세력이 절차적·의식적 민주주의를 실천했는지는 몰라도 내용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다수 세력이 직접민주주의를 빌려 자기 그룹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주력했고 소수 세력이 뛰쳐나오는 식으로 정리되고 말았다. 갈라지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무조건 통합해야 한다.”
운동주체의 한계와 무능력?돌이켜보면 민노당은 2004년 첫 국회 진입 이후 원대한 집권 전략을 세웠다. 2008년 원내 교섭단체 구성(20석 이상), 2012년 제1야당 및 집권.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 71만2천여 표(3.0%)를 득표해 단일화 압박에 시달렸던 2002년의 97만여 표(3.98%)에 비해 쪼그라들었다. 2008년 분당 이후 총선 성적은 두 당을 모두 합쳐도 반토막(민노당 지역구 2석 포함 5석)났다. 진보신당의 정책위 의장을 지낸 바 있는 조현연 가톨릭대 교수는 에서 진보의 정치세력화와 정당 결성을 향한 발걸음이 역경과 좌절, 실패로 점철된 이유를 독재권력의 탄압, 대중적 기반 취약, 진보정치 운동 주체의 한계와 정치적 무능력을 꼽았는데, 2004년을 정점으로 고꾸라진 경험은 아무래도 셋째 이유에 해당하는 것 같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이진하 경호처 본부장 경찰 출석…‘강경파’ 김성훈 차장은 세번째 불응
천공 “국민저항권으로 국회 해산”…누리꾼들 “저 인간 잡자”
김민전에 “잠자는 백골공주” 비판 확산…본회의장서 또 쿨쿨
연봉 지키려는 류희림, 직원과 대치…경찰 불러 4시간만에 ‘탈출’
경호처, ‘김건희 라인’ 지휘부로 체포 저지 나설 듯…“사병이냐” 내부 불만
“양경수 죽인다” 민주노총 게시판에 잇단 윤 지지자 추정 협박 글
박종준 전 경호처장 다시 경찰 출석…김성훈 차장은 세번째 불응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저장 안돼”
권성동, 비상계엄 한달 지나서야 “느닷없는 사건, 혼란 드려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