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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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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돈이 아니고 내 목숨이거든”

가사도우미·청소노동자 등으로 일해 모은 돈 찾지 못하는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 전국 4만 명에 이르는 예금주가 2천억여원 돌려받지 못해
등록 2011-04-30 10:55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월17일, 아침 7시30분 부산상호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처가 내려졌다. 예금보장 한도액(1인당 5천만원)을 넘는 예금액 1천억여원이 날아갔다. 피해 본 사람은 1만 명을 훌쩍 넘었다. 그날 문 닫은 은행 앞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창구는 열리지 않았다. 피같은 예금을 날리게 된 서민 고객들에게 저축은행의 고이율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라고 얘기하는 것은 잔인한 언사다. 단 1%, 몇만원이라도 이자를 바라고 저축한 서민들은 문닫힌 저축은행 앞에서 절망으로 무너저내린다.

후순위 채권 594억원, 피해자 1천여 명

지난 4월 중순, 부산상호저축은행의 한 지점을 찾았다. 6층짜리 건물에는 이 지점과 함께 학원, 약국, 피부관리실, 유흥주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에 위치한 관리실에서 만난 관리인 김경철(65)씨는 “말하기도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같이 일하는 이아무개(55)씨도 “그날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냉소했다. 김씨는 예금 8천만원, 후순위 채권 5천만원을 지점에 두고 있었다. 결국 8천만원을 고스란히 잃을 위기에 있다(5천만원 이상의 예금 3천만원+후순위 채권 5천만원).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예금 6천만원 중 1천만원을 생으로 떼였다. 약국 약사도, 피부관리실 직원도, 유흥주점 직원까지 이 건물 입주자 모두가 피해자였다. 이씨는 “이 건물에서 안 당한 사람이 없다. 청소하는 아줌마부터 건물 주인까지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중순, 부산저축은행 본점 지하 주차장 한쪽 경비원 휴게실에 꾸려진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모습. 비대위에 기꺼이 자신들의 자리를 내준 은행 경비원들도 피해자였다.

지난 4월 중순, 부산저축은행 본점 지하 주차장 한쪽 경비원 휴게실에 꾸려진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모습. 비대위에 기꺼이 자신들의 자리를 내준 은행 경비원들도 피해자였다.

예금자 신분으로 보면 지점 직원들도 피해자다. 이날 만난 한 지점의 간부직원은 연신 줄담배를 피웠다. 6개월 전 증자를 하며 모든 직원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은행 주식을 샀다. 지금 이들에게 부산상호저축은행의 주식은 휴지보다 못하다. “이렇게 될 줄 아무도 몰랐죠.” 이 지점의 창구 직원부터 점장까지 모두 같은 신세다. 이 지점의 직원인 비정규직 ㄱ씨는 더 딱하다. 1년 동안 번 모든 돈을 예금이 아니라 후순위 채권을 사는 데 썼다. 예금은 그나마 5천만원까지 보호를 받지만 후순위 채권은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다. 이렇게 날아가버린 후순위 채권은 594억원이고 피해자만 1천여 명이다. 비정규직 ㄱ씨는 몇 개월 뒤 계약 해지가 된다. 그때 그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없다. 이뿐만 아니다. 직원 각자는 금융 당국의 (추가 영업정지는 없다는) 발표를 믿고 예금을 찾겠다는 고객을 돌려세운 사연을 하나씩은 품고 있다. “제가 책임지겠다고 했거든요. 절대로 영업정지는 없다고. 안심하고 돌아가시라고.” 지점장은 최근 영업시간에 지점을 지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본점 업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점에서 자리를 지키면 봉변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봉변을 당하는 것도 난감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더 힘들다. “내 잘못이라면 김석동 금융위원장을 믿었던 거죠.” 김 위원장은 지난 1월14일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당시 “상반기에 더 이상의 영업정지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도 은행 직원이라는 점만 빼면 부산상호저축은행에 계좌를 둔 고객이에요. 불안하지만 믿었죠. 그러니 저희도 당한 거죠.”

밥도 굶으며 모은 피 같은 돈

이 지점은 편법 인출 공모에서 빠졌다. 편법 인출이 이뤄지던 그 시각 이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었다. 지점장은 “일부 고객의 인출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다”며 “사람 무서운 줄 안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사실을 밝혔다. “그랬을 리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래도 은행 직원들은 배운 사람들 아닌가? 뭐라도 해먹고 살겠지.” 박성자(65)씨는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돈 얘기에 가슴을 쥐어뜯었다. 이번 부산상호저축은행 영업정지로 피해를 입은 돈은 6천만원이다. 5천만원이 법적으로 보장되니 1천만원을 날리게 된 셈이다. 박씨는 후순위 채권 1400만원도 갖고 있다. 기자는 물었다. “2400만원이면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피해가 적으신 것 아닌가요?” 울먹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기 힘들었다. “그건 돈이 아니고…, 내 목숨이거든.” 박씨는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25년 동안 계속해온 가사도우미 일을 하러 나선다. 1시간 넘게 걷는다. 버스를 타면 20분이 걸리지 않는 길이다. 그래도 걷는다. 그의 벌이는 토·일요일을 빼면 한 달 꼬박 일해도 100만원이 되지 않는다. 버스를 탈 수 없다. 아침도 먹지 않는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박씨는 먹는 것도 아꼈다. 일당으로 시간당 2천원을 받을 때는 점심을 아예 굶었다. 시간당 4천원으로 계산해서 하루 3만원을 받는 요즘도 세 끼 밥을 줄여 먹으며 매일 부산상호저축은행을 찾아 적금을 부었다. 2400만원은 그렇게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아올린 그의 피와 살이었다. 그는 원래 저축은행을 몰랐다. 후순위 채권을 알 리 없었다. “주인집에서 좋다고 하더라고. 한 해에 몇만원은 더 받을 수 있다고. 그래서 통장을 만든 거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6살의 지능에 멈춘 남편이 오늘도 속도 모르고 퇴근하는 박씨를 웃으며 맞는다. 박씨는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자식 결혼자금도 날릴 위기

이런 사연은 숱하게 많다. 부산상호저축은행 비상대책위원회를 찾은 4월 중순. 그들은 다가올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1만여 명의 피해자 가운데 비대위 회원은 2200여 명이다. 사무실도 있다. 부산상호저축은행 본점 지하 주차장 한쪽에 있던 경비원 휴게실이 사무실이다. 경비원들은 기꺼이 비대위에 장소를 내줬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점 경비원들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은행 안에서 가해자·피해자를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비대위 사무실 앞, “우리가 더 억울하다”고 나서는 것은 ‘부산2상호저축은행’ 피해자들이다. 이들의 피해액은 5천만원 초과 예금과 후순위채를 합해 870억원 정도다. 그나마 액수가 적은 것은 ‘부산2상호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된 2월19일 직전 이틀 동안 정부를 믿지 못하는 이들이 밤새워가며 돈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인출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부산까지 찾아와 “저축은행은 지역 서민 금융기관”이라며 “더 이상 영업정지는 없다”고 공언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심재순(61)씨는 속이 타들어간다. “우리 가족 모두가 죽을 판”이라고 했다. 그는 예금 1억원 가운데 5천만원을 날릴 위기에 몰렸다. 청소노동자인 남편이 퇴직하며 받은 돈에 자신이 평생을 일용직으로 일해 모은 돈을 더한 것이다. “결혼식을 올려줘야 하는데….” 세 딸 가운데 결혼식을 미루고 있는 두 딸을 위해서 더 악착같이 모은 돈이었다.

부산, 부산2, 삼화, 보해, 도민, 대전, 중앙부산, 전주 등의 저축은행에 투자했다가 예금보장 한도액 초과로 예금액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피해자는 4만 명에 이른다. 피해액은 2천억여원이다.

부산=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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