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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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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이지 않은 무노조 인도적이지 않은 사망사고

현대차 인도 공장 노동자 4년 동안 6명 숨졌지만 안전 대책 등 협의할 노조 인정하지 않아… 시장점유율 20% 성과에도 비정규직이 정규직 2배
등록 2011-03-30 16:18 수정 2020-05-03 04:26

인도 첸나이에 있는 현대차공장의 센타밀셀반(21)은 지난 3월11일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조립2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이날 새벽 5시께 휴식 시간을 이용해 무인 기기를 점검하러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라인에 들어갔다가 기계가 재가동되면서 크게 다쳤다. 사고 직후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의식은 깨어나지 않은 채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기계를 점검하면서 라인에 들어간다는 표시만 했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사고 원인을 그에게 돌렸다. 또 “현재는 의식을 회복해 물리치료 등을 꾸준히 받으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교육도 충분치 않아”

이번 사고는 현대차 협력회사인 포스현대에서 2월25일 견습공이 일하던 중 사망한 사고가 난 뒤 10여 일 만에 발생했다. 당시 크레인으로 운반 중이던 수t의 자동차 강판용 코일이 떨어지면서 견습공을 쳐 숨지게 했다. 포스현대 쪽은 “견습공 자신이 크레인 고리를 허술하게 묶었고,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안전선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반면 인도노동조합센터(CITU) 쪽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견습공을 바로 작업에 투입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스현대는 현대차 등에 강판을 제공하는 회사로, 현대종합상사와 포스코, 포스틸 등이 합작투자해 1997년 설립한 회사다. 현대차는 이 사고 소식을 듣고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안전을 강조했다. 인도 현대차 서보신 공장장은 “지난해 12월 또 다른 현대차 하청업체 L기업에서 지게차에 치어 사망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또 사고 소식을 접한 뒤 일선 간부들에게 안전 특별교육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고가 또 터진 것이다.

» 인도 첸나이의 현대차 공장에서 많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3월11일 이곳에서 일하는 센타밀셀반이 작업 도중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의식을 잃은 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 인도 현대차 노조 제공

» 인도 첸나이의 현대차 공장에서 많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3월11일 이곳에서 일하는 센타밀셀반이 작업 도중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의식을 잃은 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 인도 현대차 노조 제공

인도 현대차 공장의 사고는 이번만이 아니다. 인도 현대차 노조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노동자 6명이 숨졌고 30명 이상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스리다르 노조사무국장은 “2008년 독극물이 든 탱크를 청소하던 비정규직 4명이 숨졌고, 2009년에는 정규직, 2010년에는 비정규직이 각각 1명씩 숨졌다”며 “같은 기간 손가락이 잘리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또 “현대차가 생산 수량을 크게 늘리면서도 안전수칙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하지 않고 비정규직만 크게 늘려 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 현대차 첸나이 공장은 1998년 9월 가동을 시작했다. 2008년에는 제2공장을 준공해 연간 60만 대를 생산한다. 미국과 중국, 체코 등 현대차의 해외 생산시설 7곳 가운데 최대 규모로, 경차인 ‘쌍트로’(국내 아토스)를 비롯해 i10, 클릭, 베르나, 소나타 등을 생산한다. 쌍트로의 인기몰이에 힘입어 인도 내에서 20%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진출 초기 인도 자동차 시장의 80%를 차지했던 인도·일본 합작사 마루티·스즈키의 시장 점유율을 50%대로 떨어뜨리며 낳은 결과다. 현재는 도요타, 폴크스바겐, 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인도 시장에 진출해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에는 못 미친다.

4년간 4단계 비정규직 거친 뒤 버림받기 일쑤

현대차는 성공 비결로 100% 단독 법인과 현지화된 상품 등을 꼽는다. 서보신 공장장은 “도로 상황이 안 좋아 차 바닥을 높이고 터번을 쓴 소비자를 위해 지붕을 높이는 등 인도 현지에 맞는 상품을 내놓은 결과”라며 “현대차 단독으로 법인을 설립해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고, 주요 협력업체와 함께 인도에 진출한 것도 성공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인도 자동차 업체 가운데 마루티·스즈키에 이어 두번째로 지난해 8월 판매·생산량 300만 대를 돌파했다.

인도 현대차 노조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노동자 6명이 숨졌고 30명 이상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스리다르 노조사무국장은 “현대차가 생산 수량을 크게 늘리면서도 안전수칙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하지 않고 비정규직만 크게 늘려 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의 설명은 다르다. 노조는 현대차의 성공 이면에는 낮은 임금과 불평등한 고용, 열악한 작업환경 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도 현대차 공장 노동자는 일주일에 일요일만 쉰다. 특히 비정규직의 비중은 한국 현대차와 큰 차이가 난다.

이곳의 비정규직은 총 4단계로 정해진다. 고등학교나 기술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첫 단계인 견습공(Apprentice)부터 시작한다. 이어 해마다 1단계씩 승진하며 수습(Trainee) I·II·III 단계를 거친다. 이들의 월급은 3900루피(약 9만7천원)에서 시작해 6957루피(약 17만4천원)로 끝난다. 견습공을 제외한 수습들에게는 연말 보너스로 1만루피(약 25만원)가 추가된다. 3월 현재 견습공이 2132명으로 가장 많고, 수습I(770명), 수습II(750명), 수습III(177명) 등 3829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이렇게 실습 과정 4년을 지난 뒤 다시 1년의 정규직 수습 과정(AMSUP)을 거쳐야 비로소 정규직이 될 수 있다.

4년의 비정규직과 1년의 정규직 수습 과정 뒤 실제로 정규직이 되는 수는 얼마나 될까? 인도 현대차의 산자이 필라이 이사는 “수습 과정을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년 200여 명의 정규직을 뽑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 숫자는 몇년째 변함이 없다. 현재 정규직 생산직이 약 1750명인데, 이는 2008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이 현지 조사를 할 때 파악한 정규직 수(1700여명)와 같다. 한국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8월 기준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 약 3만1600명, 비정규직 약 8100여명으로 정규직 비율이 훨씬 많다. 결국 정규직 생산직 가운데 해마다 정규직을 자른 뒤 그만큼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4년을 버틴 비정규직을 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인 셈이다. 은 현대차에 정규직 수치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지만, “정규직의 변동과 현황에 대해서는 대외비라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생활 4년 뒤 버림받은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비정규직 생활을 한 빈드라(가명)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천여 명이 현대차에 입사했지만, 각 단계에서 수백 명씩 잘린 뒤 마지막 수습 기간에는 200명 정도만 남았다”며 “그렇게 4년을 버텼지만,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끝내 버림받았다”고 말했다. 또 “정규직과 똑같이 일했지만 월급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며 “차라리 같은 기간에 다른 곳에서 일했다면 아직까지 일하고 있을 텐데 후회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인가 받은 노조도 인정 안해

비정규직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정규직은 작업 환경에 불만이 있다. 2008년 화재 사고가 발생해 2주간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도장공장에는 노동자들에게 마땅한 안전장치도 없는 등 안전사고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카란(가명)은 “도장공장에서 정규직 115명과 비정규직 50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 모두 마스크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며 “숨 쉬는데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폐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폐질환을 의심하고 있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있다”며 “회사 쪽에서 매년 건강검진을 하지만 그 결과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인도 공장법(Factory Act)에 따라 근로자의 건강검진 결과를 회사 쪽이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 연간 자동차 60만 대를 생산하는 인도 현대차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이곳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2배가 넘는 3800여 명이다. 한겨레21 이정훈

» 연간 자동차 60만 대를 생산하는 인도 현대차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이곳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2배가 넘는 3800여 명이다. 한겨레21 이정훈

이런 상황 때문인지 현대차 노동자들은 2007년 7월 노조를 결성했다. 같은 달 노동부로부터 설립인가도 받았다. 하지만 현대차 쪽은 1998년 공장 설립 때부터 운영된 직장협의회(Worker’s Committee)만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 필라이 이사는 “2007년 구성된 현대차 노조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데다 뒷배경에는 정치세력이 있어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타밀나두주의 노동법 역시 노조를 의무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직장협의회는 정규직 대부분이 참가하는 등 대표성이 있어 회사 쪽과 3년마다 임금 인상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첸나이 센터에 따르면, 타밀나두주 노동법상 노조가 정부의 설립인가를 받아도 회사는 이 노조를 인정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현대차는 물로 대부분의 현대차 협력업체에 실질적인 노조가 없다. KOTRA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도 됐다”며 “하지만 정치권에서 노조를 의무적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노동법 개정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현지 법원에서 불법 해고 판결 받기도

노조는 직장협의회가 회사와 대등한 협상 상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직장협의회는 노조처럼 조합비를 걷지 않고, 조합원의 권리나 의무 규정도 없다. 스리다르 노조 사무국장은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만 900명 이상으로 정규직의 절반 이상이 노조에 참여하고 있다”며 “노조 역시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이므로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6일 현대차노조 임시총회에서도 일주일 가운데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 열렸음에도 330여명이 참석했다. 그는 또 정치세력과의 연합에 대해서도 “인도의 대부분 노조가 정치세력과 연결됐다”며 “인도의 특수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장공장에서 정규직 115명과 비정규직 50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 모두 마스크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숨 쉬는 데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폐에 문제가 있다.” -인도 현대차 노동자 카란(가명)

최근 는 책을 쓰고 자다브푸르대학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호영씨는 “인도의 모든 노조는 정당과 연결돼 있어 정치세력을 이유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도에서는 노조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인도의 문맹률은 35%이며, 그 기준도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느냐 정도에 불과해 실질 문맹률은 50%가 넘는다는 조사가 있다”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식이 부족한 노동자들을 위해 외부 전문가가 그들을 대신해야 했던 것이 인도 노조의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현대차 노조는 2008년부터 해마다 파업을 하고 있다. 그때마다 현대차는 수일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큰 피해를 입는데도 무노조 경영으로 일관하면서 노조 관계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에서 불법 해고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타밀나두주 법원은 지난 1월 “현대차가 에디슨 노조위원장을 해고한 것은 불법”이라며 복직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필라이 이사는 “패소한 것은 맞지만 아직 공식 문서를 못 받았다”며 “문서가 도착한 뒤 복직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노동자들은 노조가 설립되면 고용 안정이나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쿠마르(가명)는 “현재 직장협의회는 수차례의 안전사고에도 회사 쪽에 아무런 대책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의 진정한 대표인 노조가 제 역할을 하면 안전사고나 고용 안정 등에 대한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노조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첸나이(인도)=글·사진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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