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8ABD">시커먼 쓰나미의 물결이 마을과 차량을 삼킨다. 원전은 가열된 연기를 내뿜으며 폭발한다. 두려움을 자극하는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전율과 공포가 뒤섞인다. 그러나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대재앙 이전까지 우리가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나라, 일본. 대재앙 이전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본에 대한 진단은 일본인들이 지금의 비극을 헤쳐나갈 길을 함께 찾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_편집자</font>
“우리 윗세대 분들은 저력이 있지요.”
일본 도쿄에 사는 62살의 여성 시민운동가 시라스 노리코는 요즘 어머니가 자주 마음에 걸렸다. 87살의 노모는 도쿄 번화가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구니타치시에서 혼자 살고 있다. 60대의 딸은 온 나라를 흔드는 여진도 불안했고, 전력 부족 때문에 하루에 3시간씩 계속되는 ‘계획 정전’도 신경 쓰였다. 그는 커다란 가방에서 주먹만한 라이트를 하나 꺼내보였다. 정전이 되면 집은 암흑 속이었다. 그가 전화할 때마다 늙은 어머니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2차 대전도 겪었고, 간토 대지진도 겪었다. 이쯤은 괜찮다.” 80대 노모는 딸에게 오히려 비상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이를테면 쉽게 상하지 않는 찬을 미리 만들어두면 오래 끼니를 때울 수 있다는 따위의 조언이었다. 북도쿄를 가로지르는 간다가와 강변의 국제빈민운동 시민단체 ‘리절츠’(RESULTS) 사무실에서 지난 3월17일 만난 시라스는 “부모님 세대는 잿더미 속에서 나라를 일으킨 분들이라 생활력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라스가 사실 더 걱정하는 건 오히려 아래 세대다. 오랜 불황으로 일본의 젊은 세대는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다. 가끔 자원봉사에 기꺼이 나서는 젊은 세대를 보면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눈에 차지 않는다. 부지런히 일한 어른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도무지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 세대는 우리를 열심히 일하도록 가르쳤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것 같다”고 말했다.
JAL·세이부·도요타, 2010년 1월의 악몽일본 청년 세대의 무기력증이 부모 탓만은 아니었다. 시라스와 같은 세대가 일본의 오랜 전통인 정년보장 혜택을 누리는 사이, 일본의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했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젊은 세대는 사회의 변두리를 맴돌았다. 물론 일자리가 부모·자식 세대가 배타적으로 나누는 제로섬 게임의 대상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닥을 기고 있는 일본 경제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욱일승천하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버블 붕괴’로 타격을 받은 이후 2000년대 들어서도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여기에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는 이미 흔들리는 일본을 괴롭히는 ‘3연타’였다. 도대체 지금껏 일본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 일본은 어디로 가는 걸까?
<font color="#C21A8D">는 일본의 만성적인 나랏빚과 디플레이션을 두고 “일본이 깔고 앉고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신흥경제국(BRICs)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일본이 처음으로 ‘신흥쇠락국’(New Declining Country)이 될지 모른다는 음울한 전망도 나온다.</font>13개월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0년 1월은 일본 경제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한 달로 기록될 법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 기업이 약속한 듯이 일제히 좌초했다. 먼저 ‘일본의 날개’ 일본항공(JAL)이 1월19일 파산을 신청했다. 한때 매출액 세계 3위를 기록하던 JAL은 방만한 경영 끝에 닥친 위기를 견디지 못했다.
다음날, 일본의 유통업체인 세이부백화점이 긴자 지점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이 지점은 1984년 문을 연 이후 도쿄 최고의 번화가인 긴자를 상징하는 얼굴이었다. 내수가 얼어붙으면서 매출이 떨어지자 백화점도 다른 도리가 없었다. ‘1월의 악몽’의 마지막은 도요타가 장식했다. 약 일주일 뒤 도요타자동차는 미국에서 주요 8개 차종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가속페달의 결함 때문에 대규모 리콜을 결정한 뒤였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이어진 소식은 2000년대 일본의 침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각인됐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다. 흉한 소식들의 배경에는 일본의 만성적 저성장과 디플레이션, 그리고 대규모 정부 부채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3월10일 지난해 4분기 경제가 1년 전에 견줘 1.3% 위축했다고 발표했다. 마이너스 성장은 이제 일본인에게 낯설지 않다. 일본 경제는 2007년 2.3% 성장한 뒤 2008년과 2009년에 거푸 0.7%, 5.3%씩 쪼그라들었다. 일본 정부는 빚을 내서라도 돈을 풀어야 했다. 이미 일본 정부의 부채는 기록적인 수준이다. 지난 1월 일본 정부의 국가 채무는 1천조엔에 육박했다. 1년치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 수준으로, 선진국 중 가장 많다. 정부가 그렇게 돈을 부어도 시장 수요는 여전히 부진했다. 상품에 대한 수요가 적으니 가격이 오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이 만성적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다.
영국의 는 지난해 6월 일본의 만성적인 나랏빚과 디플레이션을 두고 “일본이 깔고 앉고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위기론은 대두되고 있다. 심지어 신흥경제국(BRICs)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일본이 처음으로 ‘신흥쇠락국’(New Declining Country)이 될지 모른다는 음울한 전망도 나온다.
지난 3월16일, 후쿠시마 원전 4호기에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났다. 이날 밤 사고 지점에서 남쪽으로 250km 떨어진 도쿄의 번화가 시부야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람들 넷 가운데 하나꼴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불안한 발길을 옮겼다. 유흥가의 한켠 지하 주점에서는 또 다른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게이오대학 경제학과 3학년 주가네자와 도모히로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학교 친구 두 명과 이곳을 찾았다. 그는 “원전이 걱정도 되지만 집에 있기도 답답해서 바람을 쐬러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턱밑에는 귀에 걸처진 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그의 말투에는 7할의 무심함이 묻어있었다. 위험을 인식하지만, 그 위험이 본인으로부터 분명한 거리가 있다는 것도 인식하는 목소리였다. 앞으로 패션 관련 업체에 취직하고 싶다는 그에게 물었다. 일자리 구하기 쉽겠냐고. 잘 나가는 중국이 모두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니냐고. 22살의 경제학도는 답했다. “일본 경제가 쇠퇴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많이 성장하고 있는 거예요.” 그는 일본의 침체가 과장됐다고 말했다. 일본이 뒷걸음질한 것이 아니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이 앞으로 걸어나왔다는 말이다.
그의 분석은 절반만 맞았다. 중국의 도약은 분명했다. 중국은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최소 8% 이상 성장했다. 그만큼 분명한 것이 일본의 쇠퇴였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의 성적표를 보면 참담한 수준이다. 미국에 육박하던 GDP 규모는 지난 30년 사이 4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2009년에는 결국 중국에 떠밀려 3위로 추락했다(표1 참조).
수출 통계를 보면 눈을 의심할 정도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누리집을 보면, 지난해 일본은 7652억달러어치를 수출했는데, 이는 독일의 1조3370억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수출액인 4663억달러와 비교하면 겨우 60% 정도만을 더 수출했을 뿐이다. 참고로 일본의 인구(1억2729만 명)는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다. 중국의 수출(1조5060억달러)도 미국과 독일을 멀찌감치 앞서갔다. 주변국인 중국과 한국, 대만 등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일본만 처졌다.
과거 아시아에서 홀로 비상하던 일본의 날개는 누가 꺾었을까? 무엇보다 인구가 줄어든 탓이 컸다. 1995년 이후 일본은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살)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2005년 이후에는 총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인구가 줄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사람도 줄고, 소비할 사람도 줄게 된다. 이는 다시 생산활동 위축, 소득의 감소, 소비시장의 축소로 이어진다.
일본의 제조업도 국제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중국·대만 등 신흥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서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008년에 낸 보고서에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추격이 일본의 수출시장 점유율 하락을 촉진하였다. 일본은 동아시아와 공생적이고 확대지향적인 분업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풀이했다. 반대로 “독일의 경우 유럽연합 등 지역 통합의 효과를 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주변 지역과 따로 논’ 일본은 내수시장과 수출시장에서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구조에 갇힌 셈이다.
일본 위기의 근원, 의사당3월17일에는 일본의 싱크탱크인 ‘종합연구개발기구’(National Institute for Research Advancement)를 찾았다. 미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이 일본에 사는 자국민들에게 본국 송환을 본격적으로 권유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두려움은 방사능보다 빠르게 열도에 번지고 있었다. 도쿄의 일부 편의점에서는 컵라면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종합연구개발기구는 도쿄 서부 에리수 지역의 고층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곳의 이토 모리시게 이사장과 지난 3월17일 건물 34층 회의실에서 마주했다.
대지진의 영향을 물었다. 그는 먼저 정부 부채 이자를 걱정했다. 자칫 재해의 여파로 일본 경제가 흔들리면서 이자율이라도 상승하게 되면 정부 부채의 이자 상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규모의 빚을 이고 있으면서도 나라 살림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저금리였다. “대지진으로 일본 경제와 나라살림, 정치권에 미칠 영향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시야를 좀더 넓혀 보았다. 앞으로 일본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를 물었다. 그가 대뜸 가리킨 곳이 일본의 국회의사당이었다. 그는 “일본의 안정적인 경제 기반 위에서 정치권력은 오랫동안 개혁을 미뤄온 나머지 가장 후진적인 영역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고 말했다. 마침 위기상황에서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기 시작한 때였다. 그의 말 속에는 대지진이 후진적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 외부 충격이 됐으면 하는 희망도 은연중에 묻어났다.
<font color="#C21A8D">“이번 사태는 단기적으로는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개혁과 혁신을 낳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일본이 침체로 빠져들지, 다시 살아날지 결정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font>일본 정치의 현주소를 좀더 원색적으로 ‘까발리는’ 목소리도 있다. 1990년대 초 도쿄 지국장으로 근무한 저널리스트 패트릭 스미스는 그의 책 에서 일본의 침체 이유를 온 나라가 ‘토건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일본의 민주주의를 금권정치라고 부르는 이유도, 가끔씩 일본을 조종사가 없는 기계나 제어가 불가능한 기계로 묘사하는 이유도, 전부 여기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설명하는 토건국가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모든 것은 공공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중앙정부에서 시작된다. 매년 정부는 최소한도의 격식만 갖추어 경쟁입찰을 하는 시늉만 내고서 수천억달러의 건설공사 계약을 발주한다. 수주 가격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게 분명한데도 유권자는 이런 사업을 환영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들 사업 덕택에 먹고산다. 수주 가격의 일부분은 정치체제를 지탱하는 자금으로 되돌아온다. …시스템에서 돌고 도는 돈이 전부 납세자들의 돈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토건국가’란… 공식적인 부정부패 중에서도 최대 규모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익과 거리를 둔 정치권력에서 국가의 장기 전략이 나올 가능성은 적었다. 이번 재난 상황에서도 일본 정부는 무기력했다.
‘1억 총중류 사회’에서 ‘격차 사회’로국가의 조타수인 정치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사회는 곪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였다. 일본 사회를 가리키는 표현 중 하나가 ‘1억 총중류 사회’였다. 일본의 두꺼운 중산층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신화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2007년에 실시한 ‘격차사회’ 여론조사를 보면,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한 사람은 46%였다. 또 ‘자칭’ 하류층, 상류층은 각각 35%, 14%였다. 1990년대 말 같은 설문에서 중산층 비율이 75%였던 것과 차이가 크다. 일본 내각부가 실시하는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일상생활에서 불안이나 고민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1990년 51.0%에서 2006년에는 67.6%까지 늘었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2000년대에 계속된 일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평가하며 “사회적인 원칙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겨져온 평등 원칙은 ‘악평등’이라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됐고, 대신에 약육강식의 경쟁 원리가 환영을 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경제가 활기를 잃으면서 일본 젊은층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5∼34살 젊은 층 가운데 정규직 시장에서 밀려나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일컫는 ‘프리터’ 인구가 178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청년실업률도 지난해 10%를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기회가 박탈된 청년들이 낙천적일 이유는 적었다. 지난해 1월 일본 대학 2∼4년생 약 2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5%가 ‘일본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고 답했다.
일본 사회의 양극화는 ‘우경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일본학)는 “양극화의 도래가 국내의 계급적 모순의 심화로 이어지지 않고, 우경화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저력은 살아있다
일본 수도의 북부 분쿄구에 위치한 도쿄대 경제학과 연구동 건물은 지난 3월17일 마치 유령의 건물 같았다. 낡은 빌딩은 시설 점검을 이유로 한동안 폐쇄됐다. 지진의 여파였다. 몇몇 대학원 학생들만 연구실에 남아 짐을 챙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경제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 우에타케 료스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경제학도는 담담한 표정으로 “일본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젊은 인구가 줄었을뿐더러, 노동 의욕도 낮아졌다는 것이 근거였다. 대지진도 이미 고전하고 있는 나라 살림에 부담을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주변 국가들의 빠른 성장세에 발을 맞추면 회복의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중국을 지목했다.
젊은 경제학도의 직관은 전문가들의 분석과도 궤를 함께했다. 모리시마 미치오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바 있는 라는 책에서 일본의 돌파구를 아시아 공동체에서 찾았다. 그는 일본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생기는 수요 부족 문제는 아시아 공동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일본은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이점을 누리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함께 악영향을 주고받으며 침체의 늪에 머물고 있는 것과 다른 점이다.
지정학점 이점뿐 아니다. 일본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요소도 적지 않다. 세계 최강의 기술력도 든든하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특허출원 건수는 미국이 4만4855건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3만2156건)이 뒤따랐다. 3위인 독일(1만7171건)이나 4위 중국(1만2337건)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일본은 사회적 통합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이번 재난 상황에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거의 모든 취재원들은 ‘일본의 저력’을 확신했다. 근거는 일본이 전후에 위기를 극복하고, 1970년대 오일쇼크와 수많은 자연재해를 극복한 역사적 사례들이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는 단기적으로는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개혁과 혁신을 낳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일본이 침체로 빠져들지, 다시 살아날지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대지진의 파장이 역사상 유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앞으로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상상 이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종문 한신대 교수(국제학)는 “일본인들에게 핵은 곧 전쟁의 패배와 새로운 국가 질서의 확립을 의미했는데, 이번 재난은 일본인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일본이 이번 사태에 맞아 공격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지만,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반응할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 섬나라 국민은 현재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까? 일본인들은 그들의 오랜 저력을 다시 입증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것은 힘겹지만, 움츠렸던 발을 크게 내딛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쿄(일본)=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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