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서 시작된 반정부·민주화 시위가 이집트의 정권 붕괴로 이어진 데 이어 이번에는 북아프리카의 대표적 산유국인 리비아를 뒤흔들고 있다. 리비아는 시위가 격화되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시민에 대한 리비아군의 무차별 폭격이 가해지는 등 정국이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사우디·이란에서 시위 일어나면 직격탄
현재 리비아에서 조업 중인 우리 건설업체들도 현지 시위사태 격화로 건설현장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 리비아와의 교역에서도 수출 대금이 걷히지 않으면서 우리 수출업체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리비아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과 근로자들의 안전이 우려된다.
리비아 사태의 경제적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리비아 국가원수인 카다피가 보안군에게 리비아 송유관과 주요 석유 생산 시설 등을 파괴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카다피가 정권 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석유자원을 무기화하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는 전세계 원유 생산의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리비아의 원유 생산 차질은 전세계 에너지 공급에 영향을 미치고, 단기적으로는 국제유가 흐름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미 리비아 상황의 여파로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최근 냉해로 채소 가격이 오르고, 구제역 파동의 여파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면 경상수지가 악화하고 물가마저 더 뛰어올라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반정부·민주화 시위를 계기로 중동 산유국의 미래 집권층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의 실질적 생활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자각할 가능성이 높다. 산유국 정부들이 오일머니를 풀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동 사태의 심각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튀니지와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로 확산된 중동 반정부·민주화 시위가 다음에는 어느 나라로 전이될 것인지가 전세계 초미의 관심사다. 이번 중동에서의 반정부·민주화 시위의 배경에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생활고가 자리하고 있다. 중동 국민은 거리에 나와 빵과 자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 국가별로 국민의 정치·경제적 불만도를 살펴봤을 때, 반정부·민주화 시위의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로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시리아, 이란, 이라크, 예멘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의 정치·경제적 불만이 중간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등이다.
특히 전세계 석유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우리나라와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했을 때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 국가는 사우디와 이란이다. 이란의 경우 2010년 기준 원유 수입액이 56억달러, 대이란 수출액이 46억달러로 우리나라와의 경제적 관계도 가까운 편이지만, 특히 시위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우디는 다른 중동 국가들보다 반정부 시위 발생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와 교역량이 많고, 세계 에너지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예의 주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 해 사우디로부터 229억달러어치의 원유를 수입하고, 46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출한다. 또 사우디와의 건설·플랜트 수주액은 105억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이란과 사우디의 정세 변화나 급변 사태가 생기면 우리나라 경제에는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3차 오일쇼크 가능성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사우디는 전세계 원유 생산량의 12.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며 이란은 전세계 원유 생산량의 5.3%를 차지하는 핵심 산유국이다. 만약 사우디나 이란에서 리비아의 경우처럼 생산·운송 시설 파괴나 원유 생산 중단, 석유자원 무기화가 이루어진다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현재 시나리오상 3차 오일쇼크 발생 여부도 이란과 사우디 같은 걸프 지역 핵심 산유국들의 정세 변화에 달려 있다고 판단된다. 과거 1·2차 석유파동은 지정학적 정세 급변 상황에서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자원을 무기화하면서 일어났다. 1973년에는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가 4차 중동 전쟁을 배경으로 유가 인상 및 감산을 선언하며 전세계 에너지 수급에 혼란이 생겼다. 이를 1차 석유파동이라 부른다. 1973년 초 배럴당 2달러59센트였던 중동산 원유 가격이 불과 1년여 만에 11달러65센트로 무려 4배 가까이 올랐다. 1979년 발생한 2차 석유파동 역시 주요 산유국인 이란이 이슬람 혁명 과정에서 석유 수출을 중단하며 전세계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발생했다. 당시 석유파동 결과 국제유가는 1978년의 12달러70센트에서 1981년 10월 34달러까지 3배 가까이 올랐다.
현재 진행 중인 중동 반정부·민주화 시위의 확산 과정에서 사우디와 이란 같은 핵심 산유국에서 정세가 급변하면 3차 오일쇼크의 가능성이 있게 된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세계경제 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중동에서 진행되는 현 상황을 너무 암울하게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 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위기의 다음에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 확산되는 반정부·민주화 시위는 앞으로 중동의 정치·사회·경제 각 분야별 변혁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그 진행 결과에 따라 기회 요인과 위협 요인이 동시에 우리에게 제공될 것이다. 국제유가 상승과 건설플랜트 공사 중단의 가능성은 분명 우리에게 위협이지만, 앞으로 중동 소요사태가 진정된다면 고유가를 배경으로 ‘오일머니’가 유입되는 중동 시장은 또다시 중요한 신흥시장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특히 반정부·민주화 시위를 계기로 중동 산유국의 미래 집권층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의 실질적 생활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산업을 다각화하고 인적 자원을 더욱 활발하게 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과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을 육성하기 위해 산유국 정부들이 오일머니를 풀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미래 집권층이 민생 챙기는 정책 편다면…
따라서 우리는 중동 정세의 변화 방향을 예의 주시하며 우리의 대중동 진출 및 협력 전략을 탄력적으로 수립·운용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중동의 정세 변화가 에너지 수급과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우리의 에너지 수급 및 수출·수주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중동의 정치·사회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시장의 기회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은 함께 장기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저개발 국가에서 이른바 선진국 문턱까지 이른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경험을 공유하고 전달하면서 중동 국가와 협력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동과의 경제협력 분야가 에너지와 건설·플랜트, 수출 영역에 치중된 경향을 보였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산업화·민주화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비스 업종과 투자 분야에서도 중동 국가와의 새로운 경제협력 분야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중동 지역 정세 변화의 큰 흐름에 우리가 눈을 떼기 어려운 이유다.
박철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