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정치와 재밌는 놀이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놀이를 고안해냈다. 정치로 놀아볼 수 있다는 발상이 자라났다. 제대로 놀아야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번졌다. 그리고 2011년, 21세기 새로운 10년의 초입에서 정치는 놀이를 집적대고 있다. ‘놀이 정치’의 탄생인가? 드디어 제대로 놀아보겠다는 건가? 정녕 우리도 한판 놀아볼 수 있다는 건가? _편집자
2010년 12월8일,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의 ‘바른주먹’(또는 정권·正拳) 치기가 강기정 민주당 의원의 콧대를 바수어버리는 피 튀기는 전장에서 ‘날치기’(또는 스리·すり)로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또는 이드·id)으로 불리는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사태의 본질을 대대손손 증언할 결정적 사진을 남겼다. 그는 씨이익 웃었다. 염화미소. 웃음이 모든 것을 말했다. 그는 즐거웠던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갑갑하고 쪽팔리고 분통 터져 하는 정치에서 재미를 찾는 능력. 이것이 바로 정치인의 힘 되겠다. 그런 일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무기력. 이것이 바로 정치 외면의 저변 되겠다. 제아무리 천재라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진 못한다고 동서고금의 어버이들은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가 창설되기 전부터 자식들의 마빡을 후려치며 말씀하셨다. 정치를 즐기는 사람이 끝까지 정치를 한다. 다만 그런 신묘한 비기를 지닌 생명체는 드물다. 서울 여의도 일대에만 일부 서식해왔는데 여전히 개체 수가 적다. 앞으로는 달라질 수도 있다. 재미없는 정치를 재미지게 만들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놀이의 본질은 재미다. 문명은 놀이 속에서 그리고 놀이로서 생겨나고 발전한다. -요한 하위징아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만 하자고 달려왔어요.” “장난이 너무 커져버렸지만, 즐거웠어요.” “즐겁게 신명을 세우는 자리였으니까요.” “가볍게 이야기하며 노는 자리였죠.” “즐겁게 노는 것이 보여준 힘을 믿어요.”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대표는 지난해 12월27일 서울 정동 근처 맥줏집에서 한창 흥을 올렸다. 정동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에서 ‘조국·오연호 북 콘서트’가 끝난 직후였다. 트위터를 통해 모인 ‘콘서트 준비위원회’ 사람들과 함께 뒤풀이 자리를 만들었는데, “즐겁다” “재밌다”는 말이 연방 터져나왔다. ( 12월29일 기사 참조)
조 교수가 을 펴낸 것을 핑계로 “술이나 한잔하며 놀자”는 사람들이 도모해 이날 행사가 만들어졌다. 2012년 총선·대선에서 진보세력이 어떻게 집권할 것인지 따져묻는 책이 나왔으니 마땅히 ‘정치 강연’을 해야 옳았겠지만, 이들은 얄궂은 마음을 먹었다. 놀기로 했다. 합창단과 가수와 소설가를 불러 노래하고 수다 떨었다. 조 교수와 오 대표도 노래했다.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들의 노래는 기껏해야 평균 수준이었으나(두 사람의 사회적 명성을 감안해 관대히 평가해도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400여 객석을 꽉 채운 젊은이들은 내내 웃었다. 조 교수는 “2011년 봄부터 미국의 정치시민운동인 ‘무브온’ 같은 활동을 펼치겠다”는 말도 했다. 나름의 ‘정치 일정’을 밝힌 셈이지만, 그 출발은 “즐겁게 노는 것”이었다. 이들은 노는 것의 힘을 믿고 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역 4번 출구로 빠져나와 미국산 쇠고기 장터 옆 게임방 출구 계단을 이용해 가마솥순대 식당이 있는 건물 옥상으로 오면 카페 ‘살롱 드 마랑’이 있다. 2010년 12월20일 저녁, 살롱 드 마랑에서 ‘월요정치살롱’이 열렸다. 이날의 살롱은 ‘자연산 논란’으로 최근 의기소침해 있는 쭉쭉빵빵 언니들을 곁에 두고 배 나온 아저씨들이 망측한 리비도를 무지하게 발산하는 이상스러운 술자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말뜻 그대로 ‘사교모임’이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초대돼 풀뿌리 공동체를 지향하는 성미산 마을 주민들과 술 마시고 수다 떨며 정치적으로 사귀었다. 두 달 전,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를 불러 술을 마신 뒤 두 번째 자리였다.
성미산 마을 자치센터 격인 사단법인 ‘사람과마을’의 위성남 운영위원장은 “강의는 일방적이고 재미가 없으니, 가벼우면서도 재밌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토크쇼’를 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함께 술 마시는 게 포인트인데, 술만 마시면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성적 왜소 콤플렉스가 깊은 야시시 정치인을 걸러내는 데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쨌든 이 토크쇼는 정치적이다. 성미산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주변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주민참여형 정치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2012년 총선을 겨냥해 지역을 대표할 만한 정치인을 가려 키우자는 뜻이 담겨 있다. 우선 지명도 높은 중앙 정치인을 데려와 흥행을 노리고, 2011년 1월부터는 풀뿌리 정치인을 초청할 생각이다. 정치적 전망이 분명한 프로젝트인데, 그 출발은 “가벼우면서도 재밌는 방식”이다. 이들은 재밌는 것의 힘을 믿고 있다.
탁현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오는 1월25일부터 매달 한 차례 ‘탁현민의 시사콘서트’를 연다. 탁 교수는 “감성적인 음악과 지성적인 강의와 야성적인 잡설이 감동의 뒤통수를 어루만져주는 버라이어티 음악 토크쇼”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그 첫 주인공이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다. 소설가 이외수, 영화감독 이창동 등의 출연이 줄줄이 이어진다. 점잖은 사람을 데려다 “야성적 잡설”이 난무하는 콘서트를 여는 것은 물론 점잖치 못한 일이지만, 점잖은 사람이 허점을 드러내면 그게 되레 재미지다.
의 풍자 정신과 ‘디시 인사이드’의 평등한 참여는 2000년대 촛불을 만나며 삽시간에 ‘놀이 정치’의 밑돌을 깔았다.탁 교수는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등을 연출했다. 하필이면 2011년 벽두부터 사회 현안을 다루는 공연을 시작한 것에 대해 그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어쩌다 보니”는 지난 3년여 정치적 사건의 화학적 연쇄반응을 슈퍼컴퓨터로 연산해 내놓은 복합방정식의 해답이다. 지난 시절을 탁 교수가 의도했을 리 없으니 그로선 불가항력의 “어쩌다 보니”였을 터. 어쨌든 그 결과, 그의 콘서트는 정치적이다. 구체적으로 “재미로 포장한 진지함”이라고 탁 교수는 말한다. 사회 현안을 다 함께 고민하자는 자리인데, 그 출발은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재미”다. 그는 버라이어티한 재미의 힘을 믿고 있다.
놀이 안에서 우리는 색다른 존재다. 놀이는 일상적 세상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킨다. - 요한 하위징아
놀이가 정치를 만나게 된 결정적 순간은 인터넷의 탄생이다. 1995년, 정부 차원에서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이 시작되면서 인터넷은 새로운 놀이터가 됐다. 하승우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는 “선거법·집시법 등 각종 법률이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최대한 틀어막고 있는 한국에서 인터넷은 정치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1998년 정치 패러디 사이트 가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정치를 장난감 삼아 놀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해낸 매체였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논객들이 가공할 촌철살인을 뽐내며 정치 풍자의 무림에 고수로 등장했다. 1999년 만들어진 ‘디시인사이드’는 조금 더 진화된 형태였다. 만 해도 패러디꾼과 구경꾼이 구분됐지만, ‘디시인사이드’에선 네티즌들이 제각각 글·사진·동영상을 올려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글·사진을 올리고 감상하며 낄낄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일컬어 ‘디시 폐인’이었다. 의 풍자 정신과 ‘디시 인사이드’의 평등한 참여는 2000년대 촛불을 만나며 삽시간에 ‘놀이 정치’의 밑돌을 깔았다.
일련의 사태를 상징하는 것이 ‘개죽이’다. 디시 폐인들이 사진을 합성해 자신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죽자고 한번 웃어보자는 것 말고는 아무런 메시지가 있을 리 없는, 대나무에 매달린 강아지 ‘개죽이’는 2004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에서 ‘정치적 깃발’이 됐다. 개죽이 사진이 박힌 깃발을 들고 디시 폐인들은 광장에 나와 저희들끼리 놀았다. 도대체 대나무에 매달린 강아지가 어떤 정치 구호를 표현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던 각종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자신들의 엄숙한 깃발이 어쩐지 어색해졌다. 깔깔 웃으며 저항하는 디시 폐인의 등장은 엄숙한 저항 정치에 던져진 작은 충격이었다.
‘놀이 정치’는 뒤이은 촛불집회에서 계속 진화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는 ‘82쿡’ ‘소울드레서’ ‘쌍코’ ‘MLB’ 등 평범한 온라인 카페 회원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각각 요리·패션·성형·야구 등에 관심 많은 동호회 카페에 가입해 오동나무에 꽃피는 수다만 떨고 자빠져 있던 놀이꾼이었다. 정치 패러디를 즐긴 것도 아니고, 그냥 놀이 자체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정치적 결사체로 거듭났다. 국민적 저항이 있을 때마다 공안당국은 불온용공 조직을 조작해 탄압했는데, 촛불집회 때 검경이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한 것이 바로 이 요리·화장·야구 카페 회원들이었다. 통혁당·남민전·민청학련의 엄숙함이 없는 그들을 향해 당국은 자꾸 허방을 짚었다. 그 무렵을 돌이켜 조국 교수는 “노래 부르며 놀다가 구호를 외치고 그러다 춤추고 즐기는 촛불 시민을 보면서 저것이 바로 대중이 요구하는 정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촛불집회를 통해 등장한 ‘유희적 저항’은 새로운 논란도 낳았다. 어떤 이들은 광장을 통한 시민의 참여정치가 만개했다고 평했지만, 다른 이들은 정당·의회로 수렴되지 못한다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 분석했다. 우려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저 놀기만 하여 세상이 바뀔 가능성은 아무 짓도 안 하는데 세상이 바뀔 가능성과 같다. 제로다. 영이다. 없다.
놀이의 재미를 통해 정치적 참여로
최근 흐름은 놀이와 정치, 제도정치와 광장정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유쾌한 민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정치와 놀이가 서로 만나는 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시민의 연대 서명을 이끌어 민주진보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2010년 9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놀이의 ‘유쾌함’과 엄혹한 ‘민란’의 개념을 이어붙인 이들의 발상도 ‘놀이적’이다.
“젊은 사람들은 놀면서 세상사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놀면서 정당 활동을 하고 싶다. 정치와 놀이를 결합한 신명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문씨는 말한다. 최근 5만 명 회원을 돌파했는데, “원래 5만 명이 모이면 각 정당 앞에서 촛불시위를 하려 했지만, 회원들이 ‘촛불시위는 재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문씨는 즐거운 압박을 토로한다. “올해부터 회원들 스스로 만든 합창단과 악단이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 그의 고민을 덜어준다. 어쨌든 놀면 되는 것이다. 정당을 새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온통 ‘어떻게 놀 것인가’ 궁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원자화된 개인’이 ‘놀이의 재미’를 만나 ‘정치적 참여’에 나서는 과정을 눈여겨보고 있다. “놀이와 정치가 만나는 흐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신 교수가 보기에 지난 20여 년 동안 ‘계급적 집단’은 약해졌다. 이익단체·노동조합·정당 등에 귀속감을 느끼는 개인이 사라졌다. 이제 개인은 감성적 요소를 매개로 새로운 집단을 구성하고 해체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이 “재미와 놀이, 즉 유희적 소통”이다. 신 교수가 보기에 2010년대 한국 시민들은 “놀이를 통해 새로운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착안한 정치 세력들이 “유희적 시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신 교수는 분석한다.
진지함은 놀이를 배제하지만 놀이는 진지함을 잘 포섭한다. -요한 하위징어
1980년대와 2010년대의 결정적 차이는 ‘소셜네트워크’다. 의 저자 하워드 라인골드는 “휴대전화와 같은 이동통신 장비들이 다른 사람들과 통일된 행동을 할 가능성을 높이고, 그 네트워크의 속도도 빠르게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휴대전화, 스마트폰, 트위터 등으로 이어진 소셜네트워크는 놀이터의 성격은 물론 놀이의 성격까지 급변시키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의 ‘보온병 폭탄’ ‘자연산’ 발언은 정당 간 비난 성명이 아니라 네티즌들의 무수한 말장난과 놀이를 통해 대중적 분노로 확산됐다.
촛불 집회를 통해 정치적으로 ‘커밍아웃’한 ‘82쿡’ ‘소울드레서’ ‘쌍코’ 카페 회원들은 지금까지도 정치 놀이를 이어가고 있다. 송년회에서 1만원씩 내고 5개 인디밴드의 공연을 즐긴 뒤 모은 돈은 4대강 사업 반대 등 정치 활동에 쓰기로 했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대중의 정치적 열정을 거세하는 것이 현대 정치의 특징”이라고 본다. 지도자와 추종자의 관계로 굳어진 현대 정치에선 소수의 추종자를 제외한 다수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술 변화를 통해 형성된 새로운 의사소통 공간에서 “놀이를 향한 대중의 열정이 정치적 매개를 만나 다시 한번 의회 정치에 새로운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촛불 집회를 통해 정치적으로 ‘커밍아웃’한 ‘82쿡’ ‘소울드레서’ ‘쌍코’ 카페 회원들은 지금까지도 정치 놀이를 이어가고 있다. 2010년 12월23일, 서울 홍익대 앞 시어터 제로에서 송년회를 열었는데 그 제목이 가관이다. ‘늬들이 고생이 많다 2.’ 1년 전에도 같은 제목으로 행사를 열었으니 이번이 두번째라는 뜻이다. 3개 카페 회원 150여 명이 1만원씩 내고 5개 인디밴드의 공연을 즐겼다. 모은 돈은 4대강 사업 반대 등 정치 활동에 쓰일 예정이다. 참석자는 모두 20대 여성이었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즐거운 놀이를 더 좋아했던 것이다. 그들은 정신없이 놀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정치 프로파간다에 잽을 날렸다.
진보 정당들은 ‘놀이 정치’에 주목한 선구자다. 진보신당은 2008년 3월 창당대회를 서울 동대문에서 열었다. 청바지 입은 사람들만 입장을 허용했다. “톡톡 튀는 진보”를 드러내는 작은 놀이였다. 사회당은 2008년 11월 ‘덕후 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위문화를 즐기는 덕후(‘오타쿠’의 한국식 발음)를 모아 새로운 진보 정치를 펼치겠다는 뜻이었다. 이들은 집회에 나갈 때마다 만화 캐릭터를 깃발에 새겼다.
재미는 진지함을 이긴다
다만 진보 정당의 놀이 정치는 아직 걸음마다. 거대 정당들은 엄숙한 표정만 지으며 “정치에 관심 갖지 말라”고 놀이 정치를 훼방 놓고 있다. 조국 교수는 최근 ‘그림자 내각’을 시민들이 직접 구성하는 ‘드림팀 놀이’를 제안했다.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바라는 장관 후보를 추천하고 각 정당이 이를 수렴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하위징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엄숙한 정치는 대중의 재미를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대중의 신나는 놀이는 정치의 진지함을 끌어안는다.
솔직히 우리 모두는 재미진 놀이의 품 안에 와락 안기고 싶은 것이다. 그 즐거움으로 세상까지 바꿀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채털리 부인’을 앞세워 사람들과 어울려 놀았던 영국 소설가 D. H. 로렌스는 ‘건전한 혁명’이라는 시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정치에 재를 뿌리는 인간들을 향해 이런 똥침을 날렸던 것이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 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 그저 재미로 하라/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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