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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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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정치는 무죄다, 웃기는 정치인이 문제지

김어준·노정렬·김용민의 ‘그까이꺼 정치’ 10문10답…

아무리 놈들이 비위 상하게 해도 웃으며 정치를 씹어야 하는 이유
등록 2011-01-07 10:53 수정 2020-05-03 04:26

정치야말로 가까우면서도 멀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단골 메뉴다. 그러면서도 낯설고 무겁고 어렵다. 정치인이 없어도 세상이 돌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지만, 그들은 세상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기도 하고 그 와중에 폭소를 던져주기도 한다.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잘 모르는, 중요한 것 같은데 다가오지 않고 다가가고 싶지도 않은 정치에 대해, 정치를 가지고 노는 세 명의 ‘구라’에게 물었다. 총수 김어준, 시사평론가 김용민, 개그맨 노정렬씨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를 혐오하는 이들이 가질 법한 질문에 답을 달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로 요약할 수 있다. _편집자

1. 정치가 뭔가요? 정치라는 게 필요한가요? 너무 웃겨요. 국민은 개그맨들이 웃겨주잖아요. 교과서나 책 속의 정치와 현실 정치는 너무 다른 것 같아요. 정치인이 없어도 세상은 잘 굴러갈 것 같은데요.

김어준 정치가 웃긴 게 어때서. 좋잖아. 웃기니까. 안상수 대표 보라. 기량이 만개했다. 문제는 웃기다는 데 있지 않다. 웃기기만 하다는 데 있는 거지. 정치인 없어도 세상 잘 구른다. 그러나 정치 없이는 세상 안 구른다. 그런데 정치 대신 욕망이 이념 행세하고 보신이 신념 구실한다. 그러니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도 정치를 않는 게 문제인 게다.

노정렬 정치는 공동체의 살림살이다. 국내 정치는 세금 어떻게 거둬서 어디에 쓸 건가를 정하는 살림살이고, 국제 정치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 특히 전쟁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는 거다. 돈과 사람을 어떻게 쓸 것인지 결정하는 정치는 꼭 필요하다. 사람 사는 곳에 정치는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없던 시절에도 정치는 있었다. 왕이 하거나 소수 귀족이 하거나. 무력으로 하거나. 무(無)정치, 비(非)정치도 결국 그 자체가 정치적인 거다.

2. 새해 예산안을 두고 왜 만날 싸우나요?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결 아닌가요? ‘근육’과 ‘쪽수’로 밀어붙여 날치기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정상적인 회의 진행을 막는 사람들도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어준 다수결은 민주주의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도일 뿐이다. 유일한 방도가 아니라. 더구나 길은 길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라 하는 건 경부고속도로가 바로 서울이라 하는 꼴이다. 목적지 갈 생각이 애초부터 없는 사기꾼이거나, 목적지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멍청이거나. 다수결이 가장 효율적이다 주장할 순 있다. 그러나 효율은 이익을 다툴 때나 유용한 거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가치가 아니라 이익의 문제로 바라볼 때 맞이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가 바로 이명박이다. 어머나. 씨바. 그 다수결 독주 몸으로 막는 거, 비민주 맞다. 그러나 반민주는 아니다. 그게 어디냐.

김용민 소수의 목소리가 존중되고 포용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장점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칠 때 뭐했나.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면 민주주의가 전체주의, 사회주의보다 나을 게 뭐 있나. 의회민주주의 국가의 다수당이라면 소수로부터 찬성은 아니어도 기권 정도는 받아내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반대 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것까지 독단적으로 처리해버렸다. 견제 없는 다수의 무한 질주, 그 종착점은 독재다.

» 김어준. 한겨레 박미향 기자

» 김어준. 한겨레 박미향 기자

3. 좌파·우파가 뭔가요? 왜 서로를 좌익 빨갱이, 수구 꼴통이라고 부르며 못 잡아먹어 안달이죠? 말로는 상생과 통합, 대화와 타협을 얘기하는데 실제와는 거리가 멀잖아요. 정치인들의 언어는 따로 있나요?

김어준 삶의 공포와 대면하는 서로 다른 두 태도, 그게 바로 좌우라. 우는 세계를 약육강식 정글로 본다. 그 두려움, 스스로 포식자가 되어 해결하려 한다. 더 많은 자원 독점해 자기는 살아남는 게다. 키워드는 경쟁이요 그 엔진은 욕망이라. 반면 좌는 정글 자체를 문제 삼는다. 개인이 아니라 결국 정글 탓인 게라. 정글의 공포는 잘게 나눠 각자가 감당할 공포의 규모를 줄여 대처하려 한다. 제한된 자원을 비슷하게 분배해 각자 공포의 크기를 균등하게 만드는 게 중요할밖에. 하여 좌의 키워드는 연대, 그 엔진은 염치.

4. 자꾸 투표를 하라는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인증샷’을 올리고 하는데, 사실 누가 누군지 모르면서 부모님이나 친구들 말 듣고 투표하는 건 더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 투표용지에 ‘지지 후보 없음’ ‘관심 없음’이나 ‘기권’란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지나요?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면 누가 유리한가요?

김어준 누가 누군지 모르면서 남 말 듣고 투표하는 게 더 문제, 아니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게 더 문제지. 모르는 게 투표 않는 걸 정당화할 순 없다. 투표 않는다고 바로 큰일 나는 건 아니다. 큰일 나도 할 말이 없는 거지. 이것만 알면 된다. 투표 않는 이들이 늘수록 유리해지는 건 언제나 나쁜 놈들이라는 거.

5. 정당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아닌가요? 정치 기사를 읽다 보면, “한나라당 안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온다”는 식의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한나라당 개혁파’라는 표현도 있던데요, 제가 알고 있는 개혁과는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민주당도 그렇고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에도 안 맞는 정당에 왜 몸담고 있는 거죠?

노정렬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모이는 곳이 정당인데 이것 역시 이론일 뿐. 실제로는 대충만 뜻이 같다. 심지어 세계관이 다른데도 같은 당인 경우도 있고. 지역주의가 온존한 우리나라에서 일단 당선 가능성을 젤 염두에 두다 보니, 될 곳으로 들어간다. 이른바 계파나 라인을 잡다 보니, 보스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물론 떨어질 줄 알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온 정치인도 찾아보면 적지 않다. 찾아야 보인다는 게 문제다.

6. 정치인들은 계모임을 많이 하나요? 예전에는 친노, 요새는 친이·친박, 신문을 보면 무슨 계들이 많던데 모여서 뭘 하나요?
» 김용민.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 김용민.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김용민 친목과 이익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로 모이면 나라와 국민 걱정보다는 ‘주군을 어떻게 잘 모실까’를 궁리할 거다. 대통령 선거 때 1등 공신이 되려는 거다. 킹메이커로 부각되면 곳곳에서 줄 대려 하고 그런 식으로 존재감이 커질 때 자신에게도 ‘다음’이 있다. 지도자가 되려면 정책 비전도 우수해야겠지만, 사람 관리도 잘해야 한다. 사람 관리란 탁 까놓고 말해 기득권 분배다. 그 사람 라인인 것 같은데 어느 날 솔로의 길을 걷거나 딴 편에 붙는 정치인들 있다. 십중팔구는 그 지도자의 ‘불찰’이다. 토라졌다는 얘기다. 정치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7. 왜 공약(公約)은 꼭 공약(空約)이 되고 말지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왜 하나요? 허위사실유포죄처럼 허위공약남발죄 같은 것을 만들어 거짓말을 남발하는 정치인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나요? 선거 때 한 공약을 임기 말에 평가해 보여주는 시민단체나 인터넷 사이트는 없나요?

노정렬 그래서 언론과 시민단체가 중요한 거다. 그런데 옥석을 가리지 않고 여야 싸잡아 비판 혹은 찬양하고는 중립이고 공정이란다. 국민이 현명하게 헛공약과 참공약을 구분할 줄 알면 좋지만 사는 게 바빠 진위를 못 가릴 때 언론이 나서야 한다. 이거 제대로 할 줄 모르면 언론 아니다. 미국의 고 마이클 잭슨 선생 왈, “유 아 낫 언론”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리고 공약을 실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대운하 공약, 당선됐다고 실천하면 안 되는 거잖아.

김용민 허위공약남발죄를 만든다? 약속은 신의의 문제이지 법으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없는 죄도 만들거나 사문화된 법까지 끌어들여 반대파를 조지는 MB가 더 반길 거다. 시민단체가 매니페스토 운동을 벌이거나 공약 미이행 사례를 공개해 정치인의 신뢰성을 검증하도록 하는 것이 적당할 듯. 공약 적극 이행, 반드시 정답인 건 아니다. 대운하 공약 보라. 뭇 생명체를 ‘죽여주지’ 않나. 미이행도 때론 차선이 될 수 있다.

8. 주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을 좋아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언론에 난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율이 높게 나와요.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도 선거 전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많이 달랐는데 왜 그런 거지요?

김어준 여론조사 때 사실대로 말하면 이명박 정권이 잡아갈까봐.
여론조사 때 사실대로 말하면 이명박 정권이 정신 들까봐.

9.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웃음이 나올 때가 많아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 민간인 불법 사찰에는 화가 나고요. 탄핵을 당해도 10번은 당했을 것 같은데 안 그런 이유가 뭔가요? 제 생각엔 국민이 들고일어나도 몇 번은 그랬을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거죠?

김용민 빈틈을 보이는 순간, 그동안 묵히고 묵혔던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나와 국민적 봉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 정권이 철벽공안 정책을 펴는 거 아닌가. 반대파 밥줄 끊기, 재판 걸어 괴롭히기, 뒷조사하기. 권력은 아이스크림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녹는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레임덕에 접어드는 순간, 물대포에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은 다시 일어날 거다. 그런 불행을 막는 길은 MB가 대오각성하고 ‘차카게’ 사는 거다.

» 노정렬.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 노정렬.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노정렬 1년6개월 남았는데 그냥 가자는 거 아닌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교훈으로 삼게!

김어준 촛불집회부터 이미, 탄핵이었다.
심정적 탄핵, 100번씩들은 했다. 거기 법적 효력도 소추 권한도 없다는 문제, 사소하다. 오히려 기억의 소추는 일사부재리도, 불소급도 적용되지 않거든. 죽었다고 봐야지.

10. 책에서 ‘현실 정치에 영향을 행사하려는 모든 것이 정치다. 따라서 무관심마저도 정치적인 행위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저는 부당한 세상을 바꾸고 싶고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나중에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또 정치인이 되려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고 싶어요.

김어준 목표가 한나라당이라면 최소한 위장전입·자금비리·부동산투기의 커트라인은 통과한 뒤 다시 문의 바란다.
민주당이라면 어떤 유리한 상황에서도 제 존재감을 겸허히 삭제할 수 있는, ‘병신술’이 기본 자질로 요구된다.
그 외 모든 군소 정당 입당 희망자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미리미리 등록 바란다.
정당 따위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면, 이 분야 세계 신기록 타이틀 보유자, 충남 논산에 생존해 계신다.

노정렬 꼭 출마해야 정치하는 거 아니다. 나처럼 시사풍자 개그를 해도 되고, 인터넷에 댓글을 멋지게 달아도 되고, 멋진 정치인 후원회나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것도 정치하는 거다. 암튼 중요한 것은 실천. 진실로 원한다면, 물심양면으로 돈빵·몸빵 하면 그게 정치에 입문하는 거다.

김용민 아카데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격증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니 기본만 알려드리겠다. 일단 모든 선거에 참여하시라. 사랑은 모르겠으나 정치는 아무나 한다. 어느 한편에 서면 객관성·중립성을 잃을지 모른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시라. 경쟁 본위의 사회에서 도태된 약자를 뒷받침하는 즐거움, 이거 알아야 한다. “정치란 국민을 넉넉하게 먹고살 수 있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역대 철인들의 정의를 마음에 새기시라. 이 모든 원리의 출발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 지침 실천한다면 MB를 좋아할 수 없다. 반드시 그 인간을 싫어하시라. 공연한 비밀이 됐지만, 2012년 총선·대선의 키워드는 ‘MB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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