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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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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대학생·장애인 간을 빼먹다

날치기 예산안 통과로 차상위계층 대학생 등록금,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지원비, 영·유아 양육수당 등 취약계층 지원 대폭 줄어
등록 2010-12-23 10:42 수정 2020-05-03 04:26

김아무개(22)씨는 내년이면 대학 4학년이다. 지난 12월16일 기말고사를 마쳤다. 캐나다 어학연수 계획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친구 앞에서 김씨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번 겨울방학에 독하게 벌지 않으면 4학년을 제때 마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국회의 예산안 날치기는 아르바이트와 학자금 대출로 근근히 대학 생활을 해오던 김씨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올해 2학기에 받았던 차상위계층 대학생 장학금 100만원이 내년 2학기부터는 나오지 않게 됐다. 2009년 2학기부터 도입된 한 해 805억원의 차상위계층 대학 장학금 예산 518억원이 전액 삭감된 것이다. 2011년 2학기부터 지급이 중단된다.
난감했다. 지방 국공립대지만 이과계열이어서 등록금이 250만원을 넘는다. 단 한 번도 방학 때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쉬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겨울방학에는 내년 3월 자격증 시험에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과외 알바를 2개에서 1개로 줄였다. 어려서부터 꿈꿨던 교사임용시험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그 100만원이라는 돈이 발목을 잡았다. 다시 알바를 구해야 한다. 김씨는 “그럴 수도 있죠”라며 웃는다. 문제는 방학에 닥쳐 알바를 급하게 구하면 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외 자리도 경쟁이 치열하다. 이미 구한 1곳도 방학 때 계속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최소한 서너 곳은 해야 한 달 100만원을 겨우 번다.

장학금 100만원 삭감당한 대학생 5만 명

» 지난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62주년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21 정용일

» 지난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62주년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21 정용일

‘학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쌓인 빚은 이미 1천만원을 넘어섰다. 입학과 동시에 총 6번의 대출을 받았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였다. 바로 갚지 않으면 졸업하고 나서도 문제였다. 그래서 신입생 때부터 알바를 했다. 4년 동안 사흘 이상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중간·기말 고사라고 ‘열외’해주지 않는 알바 앞에서 여행은 사치였다. 당연히 학점 관리도 제대로 못했다. 반액 장학금을 받은 1학년 2학기 때가 유일하게 좋은 성적이었다. 어학연수는 꿈도 못 꿨다. 그래도 빚은 갚을 새 없이 늘어만 갔다. 처음에는 대출금을 갚아나가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교재비·용돈을 벌어 쓰기도 벅찼다.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다만 앞날이 걱정이다. 등록금 전액은 아니지만 이번 학기에 받은 차상위계층 대학생 장학금 100만원은 김씨에게 큰 돈이었다. 일단 다음 학기에는 정부 장학금 100만원을 이외에 150만원 정도를 더 벌어야 한다. 150만원이면 그래도 버틸만 한데 그 다음 학기에는 장학금이 끊기니 250만원이 넘는 돈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또 대출이다. 결국 빚이 1500만원이 넘어설까 걱정이다. 현재 5%가 넘는 금리도 만만찮다. “이자라도 좀 낮춰졌으면 좋겠는데….” 교육과학기술부가 한국장학재단의 대출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 또한 날치기 과정에서 대책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김씨처럼 갑작스럽게 장학금을 못 받게 된 대학생은 5만 명. 당장 100만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겨울방학 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김씨는 말한다. “그나마 저는 좀 나은데, 이번에 입학한 동생은 사립대에 들어가서 걱정이에요.” 자신의 두 배를 빚으로 안아야 하는 동생이 걱정이다.

양영희(44)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 아침 7시면 활동보조인 이아무개(49)씨가 양씨의 집을 찾는다. 양씨를 돕기 위해서다. 이씨가 도착했을 때 양씨는 이미 깨어나 있지만 옷을 혼자 입지 못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고 식사를 차릴 수도 없다. 이 모든 과정을 이씨가 돕는다. 그리고 양씨는 이씨 덕택에 출근한다. 집 인근의 자립생활센터가 양씨의 일터다. 이씨가 출근 시간 전후 양씨를 돕는 시간은 3시간이다. 양씨는 이씨 덕분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양씨는 이런 활동보조서비스를 한 달 170시간 받는다. 보건복지부에서 배정받은 100시간, 서울시에서 받는 70시간을 합한 것이다. 시간당 8천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다 합해 약 136만원이 들지만, 양씨는 한 달에 7만원만 낸다. 나머지는 복지부·서울시가 지원한다.

50만원 수입에 15만원 내라니

이번에 날치기 통과된 법률 가운데 장애인활동지원법이 내년 10월에 시행되면 현재 활동보조서비스의 개인 자부담이 8만원 한도에서 전체의 15% 정률제로 변경된다. 그럼 양씨가 부담하는 돈은 15만원을 넘게 된다. 양씨는 “지금 상황에서 그 돈을 내기는 힘들 것 같다”며 “활동보조서비스를 줄여야 하고 그렇게 되면 직장을 잃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장애인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삭감액은 장애인연금 313억원, 장애인활동보조예산 75억원 등이다. 장애수당은 1003억원에 달한다. 이 삭감은 기존 금액의 삭감이 아니라 이번에 증액하기로 한 예산을 없앤 것이어서 당장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도 자립생활센터에서 받는 50만원 조금 넘는 수입과 물가상승률을 생각한다면, 양씨는 최저의 생존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양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현재 활동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35만 명(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 기준)의 장애인 가운데 5만 명만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양씨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이다. 30만 명은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나마 5만 명도 전부 서비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최대 8만원인 자기부담금을 낼 형편도 되지 않아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현재 이용자는 3만 명에 못 미친다.

이번에 날치기 통과된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시행되면 현재 활동보조서비스의 자부담이 8만원 한도에서 15%의 정률제로 변경된다. 그럼 양씨가 부담하는 돈은 15만원을 조금 넘게 된다. 양씨는 “지금 상황에서 그 돈을 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국회의 날치기에 곤란을 겪게 된 이들의 면면은 결식아동, 기초생활수급·차상위계층 가정 대학생, 장애인, 기초생활수급권자 등 대부분의 소외계층을 아우른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벼룩에는 간이 없고, 이들에게도 내줄 간은 없다. 한 달 몇천원, 몇만원만으로도 이들의 생계는 위태롭다.

삭감된 예산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앞에 언급된 항목을 합해 80가지에 이른다. 우선은 아이들이다.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비는 아예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36개월 이하 영·유아 10명 가운데 7명에게 월 10만∼20만원씩 양육수당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필요한 2744원의 예산은 삭감됐다. 맞벌이 부부와 사회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방과후 돌봄교실 설치 지원사업 400억원, 학교 내 성폭력을 예방하는 초등학생 안심알리미 서비스 25억원 등도 없던 일이 됐다. 청소년 공부방 예산은 지난해 29억원에서 0원이 됐다. 이제 지자체가 전액 지원해 운영해야 하는 385개 청소년 공부방은 지자체의 재정 상태에 따라 존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공부방은 주로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대기자 수가 줄을 이어 몇 달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라는 국공립어린이집 90개 신축 예산도 10분의 1 수준으로 깎였다. 지난해에도 국공립어린이집은 10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예방접종 지원 예산도 삭감됐다. 민간 병·의원의 경우 8종 22회 접종으로 아이 한 명당 약 49만원이 드는 예방접종에 대한 부모 부담을 현재 70%에서 10% 수준(약 4천원)으로 낮추도록 한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이다.

청소년 공부방은 존폐 위기에 처해

노인예산도 삭감을 피하지 못했다. 기초노령연금 예산 611억원이 깎였다. 기초노령연금은 내년에 65살 이상 노인 70%에게 지급하기로 한 법정 급여지만 이 가운데 8만3천 명이 제외될 처지에 놓였다. 또 저소득층 노인과 장애인에게 의치 등을 지원하는 노인·장애인 구강건강관리 76억원 등도 전액 삭감됐다.

복지예산을 제외하고 들여다보면 증액된 항목도 많다. 가장 큰 몫은 4대강이다. 2010년보다 14% 증액돼 9조2638억원에 이른다. 총 22조원의 사업이다. 한국의 복지 분야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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