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내 가정 문제라고만 생각하던 난임이 사회와 연결돼 있음을 꽤 자주 깨닫게 된다. 대표적인 순간이 병원비를 결제할 때다. 진료받고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주사제의 값이나 수술 처치료를 지불할 때 정부의 난임 시술 지원금으로 일부 금액을 결제할 수 있다. 사회가 난임 가정을 지원해준다는 안도감이 들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난임지원금은 2021년까지 국비와 지방재정에서 돈을 모아 운용돼오다가 2023년부터 사실상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예산을 배정해 이용하고 있다. 거주하는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난자 채취 비용 100만원가량, 동결한 배아를 해동해 여성의 자궁에 이식해 착상 여부를 확인하는 비용 50만원가량을 지원한다.
보조금 지원 정책의 상당수가 그러하겠지만, 난임지원금은 공짜가 아니다. 조건이 있고, 결과가 필요했다. 나는 이것을 성과주의에 기반한 지원금 제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정적 의견이 수렴되면서 점차 개선되는 과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난임여성의 몸과 마음을 출생률을 끌어올릴 임신의 도구로만 보는 측면이 기저에 깔려 있다.
2024년 10월 말 남편이 카카오톡 메시지로 ‘서울시 난임지원금 확대 정책 변화’ 기사를 보내왔다. ‘와 정말 다행이다’라고 속으로 외쳤다. 내 눈길이 머물렀던 문구는 이러했다.
“공난포, 미성숙 난자 등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시술에 실패하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경우에도 난임 시술 중에 부담했던 시술비를 횟수 제한 없이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의사가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을 이 글에서 여러 차례 설명한 적이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느님’(전지전능한 능력의 조물주에 빗댄 조어, 의사+하느님의 의미)이라도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성숙시키는 과정이 잘 진행되지 않아 채취할 난자가 없거나(공난포) 채취한 난자도 수정란에 이르지 못하고 폐기되는 경우(미성숙 난자)가 종종 있다. 아니, 매우 자주 있다. 고령 환자나 난소 기능이 좋지 않은 경우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과배란 주사를 맞아 그달에 10개의 난자를 채취한다고 해도, 실제 배아(정자와 수정 이후 세포 발달 단계에 진입한 수정란)로 발달하는 수정란은 또 그보다 적은 편이다. 개인마다 그 수는 또 다르다. 난자가 0개인 공난포가 최악의 경우다.
한 달의 도전이 이렇게 실패하면 정말 서럽고 기운이 쭉 빠진다. 그런데 더 절망적인 것은 수정할 난자가 없으면 난임지원금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몸의 사정으로 매달 1~2개의 배아만을 만들 수 있어 이를 모아 이식하려는 환자들에게 지원금 없이 시험관 시술 시도를 진행하기란 매우 큰 부담이다.
난임 시술 초기, 지금보다 나이가 젊었고 또 자궁 수술을 하기 전까지 나는 공난포의 공포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궁 수술을 하고, 약 처방이 잘못되어 호르몬계에 이상 신호가 잡히고, 잦은 시험관 시술로 난소에 물혹이 생기고, 이런저런 치료를 받는 사이 시간이 흐르면서 난소 기능은 꾸준히 후퇴해가는 중이다.
난소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물혹’이 생겼다는 어느 달, 보통은 과배란을 쉬어야 하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자는 의사의 판단으로 난자 채취 과정에 돌입했다. 2주 동안 과배란 주사를 맞고, 혹시나 조기 배란이 되어 채취될 난자가 이미 배란됐을까 임신부처럼 천천히 걷고 과로하지 않는 등 나만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날 금식하고 당일 주삿바늘도 여러 개 꽂고 수술실에 누웠다가 깨어났는데, 눈을 떠보니 내 옆에 평소와 다르게 의사가 서 있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의사가 내게 공난포 소식을 알렸다.
“여러 번 채취를 시도했는데 난포 속에 난자가 없었어요. 이런 일 자주 있어요. 그런데 다음달에는 또 채취될 수도 있고 공난포 나온 여성들도 임신 잘할 수 있어요.”
과배란에서 채취까지 매달 시험 보는 마음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지내고 있는데 난자가 없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깊은 서러움이 목 안에서 터져나왔다. 탈의실에서 눈물을 닦고 발개진 눈으로 터덜터덜 땅만 보며 걸어 나오는 나를 알아본 남편이 어리둥절해하며 내 옆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말을 붙였다.
그날 난자 채취 수술비와 과배란 주사제 비용 등을 합쳐 그달의 치료비 70만원가량을 아무런 지원 없이 전액 결제하면서 나에게 정부가 약속했던 지원금은 일종의 성과금이었음을 깊이 깨달았다. 난자를 채취한 여성, 임신에 성공할 가능성을 보고 그 조건으로 주는 성과금. 나의 노력 여부는 상관없었다. 난임여성을 위한 위로금은 더더욱 아니었다. 성과가 없으면 지원금은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많은 난임여성의 지탄을 받았던 난임지원금 지원 불가 항목은 서울시의 경우 손을 보기로 확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지자체에서, 여전히 지원 불가 항목으로 남아 있다. 다행히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기준, 지자체 거주 기간이나 연령별 차등 지원 등의 벽도 차츰 완화돼가는 추세이기는 하다. 난임 치료를 받은 경우 일반 병원 진료 세액공제보다 두 배 많은 30%의 세액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하지만 난임지원금이 늘어날수록 풀어야 할 과제는 계속 쌓여만 갈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모든 자원을 일부 계층이 독식할 수 없다. 사회 여러 문제 중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자원 배분은 효율적으로 진행돼야 함은 상식이고 이는 공동체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기도 하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보조금 정책을 어디까지 사용해야 하는가. 고령 산모가 늘어 정부의 보조금도 늘고 있는 시대, 모든 시민은 이에 대해서도 질문할 것이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난임지원금 통계를 확인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난임지원금 액수의 증가 추이에 주목한다. 아시아경제는 2023년 17개 시·도 난임 시술비 총지원금이 1천억원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2021년 673억원, 2022년 893억원으로 늘었다. 시술받는 이들과 시술 횟수가 증가하면서 금액도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령 혹은 질병이 있는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돕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는 걸까.
2023년 2월 말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난임 지원 정책 관련 토론회에서 나온 한 의료전문가의 발언은 난임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논란이 됐다. 난임여성 당사자이자 기자인 내게는 그의 발언은 조금 더 복잡하게 다가왔다.
그 전문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말들을 쏟아냈다. “35살, 40살이 돼서야 임신하려니까 임신이 어려운 것이며, 돈을 내서 될 때까지 하는 것, 몇 년을, 몇 번을 하고도 (안 되는 임신 시도를) 계속하게 하는 것이 여성의 몸에 바람직한 일인가”라고 물었다. 또 “40살 이상이 시험관을 계속 무한 반복하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느냐”라며 “지원 횟수가 늘어날수록 환자들이 내 상태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다 쓰지 않으면 내가 손해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난임여성들이 모인 온라인카페에서는 아직도 이 전문가의 이름이 분노 버튼(언급만 해도 화나는 용어)처럼 통용된다. 하지만 그가 다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임신에 대한 열망과 자유의지만이 아니라, 여성 몸의 건강과 사회의 재원 활용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지원금이 무조건 능사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차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40살가량이 되면 가임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과학에 기반해 의학을 전공한 전문가라면 할 수 있는 말이고, 보조금 정책의 효율성을 따지는 경제학자라면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와 같은 임신 시도 고령 환자들에게 기회를 언제까지 줘야 하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또 지금 드러나듯 부자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 사이의 지원금 차이 등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하지만 난임지원금을 성과주의에 기반한 보조금 정책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지금 우리 사회의 한계다. 인구 문제는 정부의 단편적 개입만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 오늘의 청년세대를 거쳐온 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저출생을 개선하려면 결국 젊은 나이의 청년들을 일찍 결혼하게 하고 일찍 출산하게 하려는 많은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를 뒤엎을 또 다른 보조금들이 지급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 모순을 놔두고 현상인 고령 임신 지원금 제도만 짚어 비효율성, 정책의 실효성 등을 지적하는 것이 다소 폭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고령, 기저 질환이 있는 여성일수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성과주의에 기반해서는 이들까지 정책이 품을 수 없다. 만약 재원이 정말 부족하다면 지원 대상을 구분하기보다 미래 난임 환자 수 감소를 전제로 지원 금액을 조절하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 글에서 꾸준히 질문할 것이다. 난임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고, 사회적 책임이 일부 요구되는 현상이라는 점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젊어서 결혼하고 임신·출산했어야 한다는 ‘간편한’ 댓글은 단호하게 사양하겠다. 설령 만혼과 만출이 개인의 판단 착오라 말한다 해도 타인의 인생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난임 치료를 빨리 졸업하길 누구보다 바라는 것은 당사자 본인이다. 만약 난임이 사회문제가 맞는다면 난임지원금이 지금처럼 성과금 체제인 게 맞을까. 실제 당사자로서 사회가 나를 지지하고 위로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내 심신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게 느껴졌다. 난임여성들을 위로하는 것 역시 긍정적 ‘성과’일 수는 없을까. 재정 지출에 분노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문제가 사회문제인지 아닌지를 돌아보자고 먼저 제안하고 싶다.
난임여성A
*우리들의 난임일기: 난임여성 A는 대학 졸업 뒤 사회생활 17년차가 된 서울 거주 여성입니다. 직업은 기자입니다. 난임 치료를 받는 1년5개월가량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난임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난임은 젠더, 의료, 인구 문제와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입니다. 난임 여성이 회사, 가정, 병원에서 겪는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4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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