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곳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홈리스가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가난해서 집을 사거나 임대하지 못한다. 주택이 충분하지 않은 나라도 있다.” 싱가포르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 이 옆에 함께 실린 사진을 두고 몇 년 전 한국에서 논란이 일었다. 한국의 노숙인 사진이 실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끄럽다거나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하필 한국 사진이냐는 것이다. 한국에도 노숙인이 있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에 생기는 반응이다.
노숙인을 지우기 위한 뻔한 대책들그런데 자꾸 모두 아는 사실을 없는 일로 만들려는 이들이 있다. 지난 5월 ‘G20 대비 노숙인 대책회의’가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주재로 열렸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전후로 노숙인들이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다. 당시 회의에는 경찰청, 국토해양부, 보건복지부, 서울시, 행정안전부 등이 참여했다. 노숙인들이 보이지 않게 하라!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관계 부처들이 모인 것이다.
일단 경찰이 거리를 열심히 순찰한다. 주요 공공 역사마다 삼엄한 분위기를 만들어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하루에 몇 번이든 신분증을 내놓으라며 불심검문을 해 귀찮게 군다. 노숙인들은 귀찮고 화도 나지만 결국 신분증을 보여준다. 괜히 대들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경찰서로 가면 그만큼은 노숙인이 거리에서 사라질 테니 ‘대책’은 된다.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무작정 거리에서 내몰면 여론도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노숙인이 입주할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하고 대기한다. 서울시 역시 거리 노숙인에게 임시 주거지를 지원한다. 좋은 정책이긴 하지만 노숙인들이 모두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어차피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쉼터 입소다. 생색은 내면서 노숙인 ‘대책’ 기조는 그대로 둔다. 보건복지부는 이렇게 마련된 자리에 노숙인들이 적절히 들어가도록 안내하고 그 밖에 필요한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인들이 이 모든 제도에 접근하려면 전 국민의 신원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도 힘을 보태야 한다.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서울시는 ‘월드컵 노숙자 특별보호대책’을 준비했다. 거리 노숙인들을 지방의 수련원으로 ‘특별 연수’를 보낸다는 방안이었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서울시는 자진 철회했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부산시는 ‘거리 노숙인 특별보호관리 대책회의’를 열었다. 몇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시설에 입소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시설 입소에 참여하지 않는 노숙인은 경범죄로 처벌하고, 시설이 부족할 수 있으니 임시 주거시설도 설치하겠다고 했다.
보이는 것을 지우는 것은 악하다거리에서 자야 하는 노숙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에 눈감는 것은 솔직하지 않다. 그런데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지워버리려는 것은 악하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러니 더욱 적반하장이다. 한국에서 노숙인이 급증한 것은 1998년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요한 구조조정이 수많은 사람을 거리로 내몰았다. 한국만이 아니다. 금융 지원을 한다는 명목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빈곤을 심화시켜온 IMF는 2008년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공모자이자 무능한 유물이었다. IMF를 다시 살려낸 것이 바로 G20 정상회의다. 그런데 그 회의를 한다며 이미 거리에 거처를 마련한 노숙인들을 다시 내쫓는다. 두 번씩이나 거처를 빼앗고 있다. 한국에 노숙인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거나 불쾌한가. 우리가 정말 부끄러워하고 불쾌해야 할 것은 노숙인을 지워버리려는 사회다. G20 정상회의가 부끄럽고 불쾌하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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