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촛불 국면’에서 시민을 상대로 무더기 검거와 기소가 이뤄졌다. 억울하다는 이들이 속출했다. ‘억울함’은 타당한가, 입증되고 있는가, 또 물을 수밖에 없다. 은 이들의 기소 이후를 추적했다.
‘경찰 입건-검찰 기소-사법부 재판’의 세 단계를 서로 비교해보면 드러난다. 검거가 정당했다면 기소로 이어질 것이고, 기소가 정당했다면 다들 형벌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100% 일치하는 세계는 어디에도 없다.
2008년 경찰의 국정감사 보고를 보면, 당시 불법시위 행위자로 입건된 이들은 모두 3609명이다. 물론 여기엔 집시법 위반만 포함되진 않는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도로교통방해 혐의 등도 적용했다. 반면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검찰이 기소한 이들은 1270명이다. 2010년 7월2일 기준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3명 중 2명꼴(65%)로 조사만 받고 집으로 갔다. 그만큼 무리하게 검거됐다는 말이다.
33명 변호해 현재까지 3명 무죄 받아재판 현황을 살펴봐야 한다. 검찰은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이들의 재판 현황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통보해왔다. 대신 은 경향성을 살피기로 했다. 촛불 연행자 33명을 변론한 민병덕 변호사의 ‘실적’을 따졌다. 당시 연행자들을 적극 도운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가운데 가장 많은 사건을 맡은 이에 속한다. 일단 혐의 내용은 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 22명, 집시법 7명, 일반교통방해 2명, 일반교통방해와 공무집행방해 2명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32명이 약식기소 뒤 벌금형을 받았다. 집시법 위반의 경우 50만~100만원, 일반교통방해는 150만~200만원, ‘집시법 위반+일반교통방해’는 150만~300만원, ‘일반교통방해+공무집행방해’의 경우 1명은 250만원 벌금형, 다른 1명은 불구속 기소 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자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약식기소된 이들은 모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자유형을 받은 이는 항소했다. 재판 진행 상황을 보면, 이 가운데 2명이 최종심에서 무죄와 일부 무죄(일반교통방해 부문)를 선고받았다. 1명은 1심 무죄 뒤 검사의 항소로 2심 계류 중이다. 1심에서 70만원의 벌금형을 받고 직접 항소해 2심 계류 중인 이가 3명, 검사의 항소로 계류 중인 이가 1명이다. 1심에서 벌금 30만원을 받은 1명의 경우, 항소 여부가 불투명하다. 나머지 25명은 모두 1심에 머물러 있다.
결과적으로 전체 무죄율(일부 무죄 포함)은 3명으로 9.1%다. 다만 계류 중 사안은 집시법 10조(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과 집시법 10조 중 ‘시위’ 부분에 대한 위헌제청 결정 등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무죄가 추가될 공산이 없지 않다.
술 마시다가 잡혀간 뒤 2년 재판‘촛불 연행자의 기소 이후’는 사례로 구체화한다.
대학 동기 박영수(46·가명)씨와 박경호(46·가명)씨. 그들의 시간도 2008년 여름에 멈췄다. 거대한 섭리조차 가로막은 자, 대한민국의 검찰이고 경찰이다. 둘은 서울 종로구 효자동 ‘먹자골목’에 있었다. 그해 6월1일, 일요일이다. 전날 저녁에 시작된 식사 자리가 새벽 4시30분 술자리로 이어졌다. 인근 촛불집회가 사윌 즈음이다. 영수씨는 귀갓길 택시를 잡기 위해 이동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일대의 촛불 시위대와 함께 엮인 것이다.
“광화문 일대 모든 교통이 통제된 상태였어요. 전경들이 해산하려는 사람들을 에워싸더라고요. 아니 이러면 다 연행하겠다는 거 아니냐고 항의했지요.”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잡아”라는 소리가 들렸다. 찰나로 팔다리가 붙들렸다. 헤어졌던 친구가 달려왔다. “지금까지 나랑 술 마셨다. 시위한 것도 아닌데 왜 잡아가느냐”고 따졌다. 경호씨는 영수씨보다 더 먼저 경찰 호송차에 실렸다.
동이 틀 때 서울 강동경찰서였다. 조사를 받았다. 중천에 해가 뜨니, 유치장이었다. 대학 동기는 유치장 동기가 됐다. “항의 엄청 했지요. 야간집회든 뭐든 참석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경찰 조서를 쓸 때에도 그런 적 없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하지만 검찰은 둘 다 약식기소했다. 혐의는 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다.
영수씨는 당초 연행된 일요일 오후면 집에 갈 줄 알았다. 월요일은 출근해야 했다. 조사가 끝나자마자 유치장에 갇힌 46시간은 잔인한 ‘복선’이었다. 휴대전화도 압수당한 고립무원. 화요일 새벽 1시가 돼서야 경찰서를 나왔다. “연락도 못한 채 무단결근을 했고, 다음날 아파서 그랬다고 했지요.”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싸워볼까…”2009년 초 벌금 200만원을 통고받는다. 영수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는 “소박한 일상을 일탈하게 한 이유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9년 5월에 시작된 재판은 올해 끝이 난다. 1심 무죄판결에 검찰은 항소했고, 2심 무죄에 상고했다. 영수씨는 “‘촛불 사건’은 끝까지 간다는 게 검찰에 내려진 명령 같았다”고 말했다. 올 2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기까지 1년6개월이 지난 셈이다. 이조차도 이례적으로 ‘속성’이다.
술 냄새가 많이 났다는 경찰의 진술을 확보한 덕분이다. 수사 기록상 연행 시각보다 술집에서 신용카드를 결제한 시각이 더 늦다는 증거 덕분이다. 기자는 웃고 말았다.
법정에 설 때마다 그는 직장을 결근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회사는 당신이 뭔데 그리 자주 아프냐고 했을 겁니다.” 기자는 또 웃어버렸다.
그의 친구 경호씨는 아직 2심 재판 계류 중이다. 약식명령(벌금 250만원)에 맞서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올 상반기 1심 무죄판결에 맞서 검찰은 항소했다. 연행된 까닭은 물론 서로 벌금이 다른 까닭, 무죄와 ‘항소심 중’의 간극이 발생한 까닭을 둘은 알지 못한다.
영수씨는 말했다. “어느 순간엔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사법 당국을 상대로) 전면적으로 싸워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정말 이러지도 못하면서 분노가 차오르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의 고통은 얼마나 심하겠어요.”
실제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 따위의 소송 계획이 없냐고 물었다. “허허” 쓴웃음이 들려왔다. 검경이 이겼다, 정부가 이겼다. 이들의 시간은 2008년 여름에 멈췄다.
어쨌건 검찰의 ‘무죄 실적’은 그렇게 추가된다. 민변은 2009년 5월 현재 약식기소된 1050명 가운데 640명이 정식재판을 의뢰했다고 잠정 추산한다. 이 가운데 유·무죄는 또 얼마나 될까. 알 수 없다.
취업한 직장도 3개월 만에 사직
2년은 길다. 이후의 무죄가 결코 달콤할 리 없다. 지난 6월 30대 여성의 무죄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왔다. 촛불집회 연행자는 아니다. 촛불집회 시민 성금을 거뒀다 88만원을 술과 사다리 등 집회 용품을 구입하는 데 썼다며 횡령 혐의로 기소된 옥아무개(30)씨다. 지난해 8월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검찰은 상고했다. 그 역시 경찰 조사가 시작된 2008년 7월부터 꼬박 2년을 공권력과 다퉈야 했다. 그가 운영하던 인터넷 쇼핑몰은 기소 직후 5분의 1 수준으로 매출이 떨어졌다. 거래처도 달아났다. 동생들 신원까지 온라인을 통해 노출됐다. 돈을 벌기 위해 지난해 초 취업한 직장도 3개월 만에 관둬야 했다. 법정을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이름 석 자를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예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2년은 무척 길다. 현재 17가지 혐의로 1심 재판 중인 촛불 연행자 최현우(34·가명)씨는 “빨리빨리 재판을 진행해서 얼른 사회 복귀의 길을 만들어주는 게 시급하다. 지연 자체가 공권력의 과도한 횡포다”라고 말한다. 이후의 무죄라도 그 맛은 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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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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