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연인원 40만 명의 경찰력이 투입돼 철통 보안 속에 열릴 모양이다. 행사장으로 통하는 길목마다 검문·검색을 강화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각국 정상의 안전과 테러 방지를 위한 것이라지만, 실제로는 정상회의 반대시위를 막기 위한 조처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위 없는 행사장 주변을 보고 세계 정상들은 안전함과 평안함에 흡족해할까, 아니면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에서 가능한 일인가라며 의아해할까. 전국의 총기류를 모두 압류하고 기초·교통 질서 단속과 이주노동자·노점상 등을 대상으로 한 ‘거리청소’식 단속도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식 공권력 행사다. 공공의 이익과 안전이라면 개인의 인권을 뒷전으로 물리치고 이것이 법치라고 외친다. 질서와 안정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작아지기만 한다.
<font color="#00847C">대통령 코드에 맞춰 무리한 기소 </font>이명박 정부 2년이 지나자 이렇게 공권력은 한없이 팽창돼 있었다. 급기야 민간인 불법 사찰과 ‘날개꺾기’ 고문이 버젓이 부활했다. 촛불문화제에 대한 무력 진압,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용산 철거민 참사 등에서 보듯이 서민의 생존권 주장과 의사표현을 억압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불법·좌파 친북으로 몰아가며 공권력으로 누르는 상황이 지속됐다.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공안형 경범죄’가 급증하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부 비판자를 옥죄던 ‘과잉 범죄화’가 끊이지 않는다. 공안의 망령이 되살아나 ‘공안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이다. 천안함 관련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반박하는 주장도 허위사실유포죄로 수사당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이른바 ‘법질서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공권력을 이용해 탄압하고 있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건수도 늘고 무차별적인 누리꾼 수사를 위해 전자우편 내역 조회 등에 쓰이는 통신사실 자료요청 발부 건수도 급증했다.
다행스럽게 일련의 무죄판결로 공소권 남용의 실체가 드러났다. 문화방송 〈PD수첩〉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죄 무죄판결,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무죄판결, ‘미네르바’에 대한 허위사실유포죄 무죄판결 등 검찰의 과잉 범죄화 시도가 1심 법원에 의해 제어됐다. 검찰권이 정권의 의지 실현에 동원돼 남용된 예가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배임죄 무죄판결이고, 신태섭 전 한국방송 이사와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해임 무효 판결이다.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건수가 계속 증가하는 데 반해, 무죄율은 높아지고 처벌 수위는 낮아지고 있다. 경찰관의 직무수행을 막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법정에서 체포 과정의 적법 절차 위반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대통령의 발언이나, 법질서 확립을 위한 과도한 공권력 투입이 법치주의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코드를 맞춰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원해 무리하게 형사범죄화하려 한 탓이다. 경찰과 검찰이 형벌로 무장된 온갖 처벌법을 동원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를 형사범죄화한 결과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해 집회·시위와 관련한 공권력 행사는 제한적이어야 함에도 경찰의 적극적 법 집행과 공격적 진압 방식은 체포와 처벌을 양산하고 있다. 질서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형법이 최우선으로 투입되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형사처벌이 국민을 위협하는 도구로 남용되는 것이다. 대검 중수부 수사 사건의 무죄 비율이 높아지고, 대형 정치적 사건에서 줄줄이 무죄판결이 내려지는데도 책임자가 없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이 정부에서는 책임져야 할 자들이 오히려 승진하고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죄 없는 자를 무리하게 기소하는 공소권 남용을 통제할 제도도 없고 공권력 행사를 제어할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뒤 ‘인권’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입에 올려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공권력의 통제·감시 장치인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을 무시하고 무력화했다. ‘인권의 파수꾼’으로서 공권력 행사를 삼가던 전임 대통령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국가 공권력의 남용을 불러온다.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에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는 반면 시민참여는 확대되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은 보장돼야 한다. 한데 검찰과 국정원처럼 국가기관의 권력은 커지기만 한다. 공권력을 남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한 검찰과 경찰에 불이익을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영전시키는 잘못된 인사가 공권력 남용을 조장하고 있다.
<font color="#C21A8D">과소수사와 과잉기소의 모순</font>국회마저 다수당인 집권여당의 견제 기능 상실로 권력분립은 바라기 어려운 상태다.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은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길들여지고, 거대 보수 언론은 이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있다.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도 재정 지원으로 유혹해 재갈을 물린다. 정부 비판적 시민단체는 불법단체로 낙인찍혀 정부지원금이 끊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2년이 지나면서 국가 공권력을 감시·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서서히 마비되고 있다. 일련의 시국 사건에서 줄줄이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집권여당이 법원을 비난하면서 법원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여야 합의로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여당은 무죄판결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법원 개혁안으로 ‘법원 길들이기’에 치중하고 있지만, 먼저 개혁돼야 할 것은 수사권과 공소권을 남용하는 검찰이다. ‘스폰서 검사’ 사례처럼 범죄 혐의가 있어도 수사하지 않는 ‘과소수사’(過少搜査)와,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배임 사건이나 미네르바 사건처럼 범죄 혐의가 불충분하거나 범죄가 되지 않음에도 무리하게 기소하는 ‘과잉기소’(過剩起訴)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주의로 특징지어진 검찰 권력의 비대화와 자의적 행사가 정치권이나 기업인이 검찰 권력을 가까이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같은 별도의 기구로 검찰권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적 중립성 논란의 대상이자 기소 사건의 무죄율이 높아 비판을 받고 있는 대검 중수부도 폐지해야 한다. 검찰의 공소권 행사에 대한 시민적 통제로서 일본의 검찰심사회제도나 미국의 대배심제도(Grand Jury)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려면 검찰 내부의 비리에 대한 자정 시스템과 징계권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부적 감찰을 통한 자기통제는 부적법한 검찰권 행사와 검사의 도덕적 해이를 외부적으로 노출하지 않고 검찰 내부의 비공식적 통제 과정에 둠으로써 감찰 본래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은폐와 왜곡, 제 식구 감싸기의 관행이 국민의 불신을 키워왔다. 감찰관 직위의 개방직화와 감찰위원회의 개방화 및 의결기구화가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이나 체포·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사법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 정부 들어 유난히 법치 이념이 강조되고 법질서를 내세울 때 어김없이 ‘법대로’가 등장한다. 그러나 법치를 외치는 자들은 국민이 법질서를 어기는 횟수보다 자신이 더 많이 법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법치국가의 법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다. 법으로 국민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법을 모르고 무시하면 공권력을 가장한 불법이 국민의 삶을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시민은 자기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고 생각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통치자가 국민에게 법치를 말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통치자에게 법치를 요구해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이명박 정부 공권력 과잉’ 김인회 교수의 분석
<font size="3"><font color="#991900">“법치만 강조하면 사회가 거칠어진다”</font></font>
‘이명박 정부 공권력 3년’을 분석하기 위해 모은 자료를 법조·학계의 전문가가 함께 살폈다. 그 가운데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형벌권 강화 추세의 근원적 배경을 짚었다. 그가 던진 화두는 현 정권의 ‘법치주의 강화’와 ‘공안의 일상화’다.
<font color="#006699">- 법치주의 강화가 왜 문제인가.</font>
= 법치주의를 강조할 때, 엄벌주의는 필연적이다. 한 범죄에 대해 엄벌을 취하면 다른 범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 전반이 관용이나 인도적 형벌, 범인 교화 등은 생각지 않게 된다. 사회가 거칠어지는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하게 되면 교도소에 수감되는 사람 수도 늘어나지만 범죄도 늘어난다.
<font color="#006699">- 현 정부는 어떤가.</font>
= 이전 정권 때와 지금의 집회·시위 분위기를 비교해보자. 지금 누가 집회에 나가자고 하면, 물대포에 대비해 우의를 준비해야 하고, 잡으러 오면 도망가야 하고, 사진에 찍히면 나중을 대비해야 할 것 같지 않나. 민주주의에 의해 교정되지 않는 법치주의는 냉혹하고 엄격한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합법과 불법의 중간지대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font color="#006699">-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청구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font>
= 공안의 일상화다. 통신회사가 개인 정보를 거의 모두 가지고 있어, 이것만 압수수색하면 수사는 더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본 검찰이 공안 중심으로 재편된 1930년대 이후를 보면 야당 정치인 탄압, 사상범 탄압, 민중생존권 투쟁 탄압으로 나타났다. 정권 유지에 가장 위협이 되는 집단들이다. 이게 공안의 성격이다. 한명숙 전 총리, ‘미네르바’와 〈PD수첩〉, 용산과 쌍용자동차 사건…. 일치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
<font color="#006699">- 검찰의 기소율,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율은 타당한가. </font>
= 우린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편의주의다. 기소유예를 확대할 것을 본질적으로 요청한다. 독일은 법적 요건이 갖춰지면 반드시 기소해야 하는 기소법정주의인데, 이는 기소유예를 적게 하자는 거다. 그런데 막상 우리 기소유예 비율이 독일보다 많이 낮다. 범죄에 대해 관용정책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더 깊은 원인은 국가가 폭력적이다 보니 민간의 폭력을 절대 관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기소유예 비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
<font color="#006699">- 전반적인 공권력 과잉이라 할 수 있나.</font>
= 외국과 비교해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미국은 2008년 교도소 수용 인원이 240만 명이었다. 우린 4만5천 명, 일본은 6만 명 정도다. 이렇게 따지면 가장 가혹한 나라는 미국이다. 다만 우리 경우 국가형벌권이 조직적·체계적으로 남용된 사례가 많았다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줄고 있는데, 최근 범죄와의 전쟁 수준의 법치주의로 이런 경향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듯한 국가의 태도는 진짜 문제다.
<font color="#006699">- 대안은 무엇인가.</font>
= 현 정부는 공안통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안통치의 이론적 기반은 법치주의인데, 이는 구분되기 어려운 합법과 불법의 경계도 엄밀히 구분해 엄벌주의를 취하자는 거다. 인권과 공공질서, 법치의 관계는 서로를 제약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와 발전에 필수적이다. 다만 일부의 손에 의해 그 내용이 확정돼선 안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작게는 공권력 체계를 분산해야 한다.
2년 전 대통령 자문기구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책 한 권을 펴낸다. 이다. 그해 9월이었다. 촛불집회를 계기 삼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사명’처럼 강조해온 국정 기치 ‘법질서 확립’을 비로소 매뉴얼로 구현했다. 이번에 살펴본 공권력의 실상은 이명박 정부의 ‘법질서 확립’이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과 어떻게 다른지 해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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