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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가는 속삭임 ‘삼성노조’

노조 준비하는 직원 2명 “복수노조 허용되면 막을 수 없을 것”… 최근 필요성 느끼는 직원 늘어
등록 2010-04-22 14:15 수정 2020-05-03 04:26
2004년에는 삼성그룹 무노조 정책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삼성노동자 감시공대위’의 삼성 규탄 집회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2004년에는 삼성그룹 무노조 정책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삼성노동자 감시공대위’의 삼성 규탄 집회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개별면담, 전 사원 특별교육 등으로 ‘비노조 신념화’를 재삼 선언하는 회사 쪽의 잰걸음이 계속되는 상황. 지난 4월13일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삼성 직원 두 명을 만났다. 이들과의 만남은 서울 지역 두 군데에서 30분 이상의 거리를 이동해 쫓기듯 장소를 바꿔가며 이뤄졌다. 삼성에서는 노조를 준비하는 것만 알려져도 개별면담이 실시되고 그해의 인사고과에 반영돼 연봉 삭감이나 발령 조처 등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노조 설립의 꿈은 인생을 건 것이다. 약속 장소를 바꾼 것도, 기자에게 자료를 건네며 “확인 뒤 소각해달라”고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노조가 설립된 다음”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헌법상 권리라는 노동조합 단결권은 이미 현실의 언어가 아니었다. 이들이 삼성의 비노조 특별교육을 몸으로 겪으면서 느낀 것은 막막함이다. ㄱ씨는 “호텔급 콘도 2인1실에서 자면서 5만 명을 대상으로 100차례에 걸쳐 교육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겁이 날 정도”라며 “(노조를 향해) 다섯 걸음을 힘겹게 내디디면 회사는 100걸음을 내달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노조 설립에 대해 ㄱ씨는 ‘대세’를 강조했다. ㄱ씨는 “회사 쪽에서는 설립 자체를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교육이겠지만 막상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어떤 이유로도 자발적인 노조 결성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내에 있는 흡연실에 가면 다른 부서 직원들이 노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다. 예전에는 없던 분위기”라며 “이건희 회장이 복귀한 마당에 어림도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회사가 간부급 어용노조를 만들거나 사원이 자발적 노조를 결성할 것이라는 의견도 오간다”고 전했다. 함께한 ㄴ씨는 “설립이 문제는 아니다”라며 “문제는 노조가 설립된 다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들이 ‘찍히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가 만든 노조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현장에서 일한다고 무시받지 않는 것, 일하다 죽으면 일하다 죽었다고 인정받는 것 등 당연한 권리를 인정받겠다는 진심을 현장에 있는 동료들이 알아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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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드러나지 않은’ 소수의 노조 설립 준비자들을 제외하면, 삼성 내부에서 노조에 뜻을 둔 사람은 2007년 ‘삼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삼역모)이라는 과장급 노조 준비 모임을 주도한 직원들 정도다. 삼역모는 3년 전 등산모임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 회사의 회유로 갑작스럽게 해체됐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찾았지만 일부 직원은 여전히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주축으로 참가했던 한 과장은 과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의 회유에 넘어간 간부급들이 모임 해체를 선언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며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이 여전히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조직에 대한 바람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당시 삼역모는 민주노총 등의 도움을 받았지만 회사 쪽의 회유와 협박으로 내부 결속력이 와해되자 외부의 지원도 무용지물이었다. 여전히 등산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과장은 “이번에는 사람 수를 늘리는 데 급급해 조직이 허술하게 운용되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며 “복수노조 허용 시기에 맞춰 좀더 길게 보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아남으려면 계열사 간 연대를”

삼성 내 노조 설립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삼성 직원들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복수노조가 내년 7월 허용되면 노조 설립 자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없어진다는 것은 삼성 쪽이 노조 설립을 저지해온 가장 유효한 수단을 잃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미리 유령노조를 만들어 새 노조가 복수노조 금지 조항에 걸리도록 하는 방식이 노조 저지 수단으로 흔히 사용돼왔다.

문제는 민주적으로 노조가 설립되더라도 창구 단일화 문제를 극복하고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경영진이 새로 만들어지는 노조를 곧바로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부 직원들의 지지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회유·협박에도 버티면 일단 노조가 만들어질 수는 있다”며 “다만 중요한 것은 구성원의 세를 얼마나 규합할 수 있느냐다. 회사와의 교섭 자격을 의미하는 창구 단일화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초기에 숫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회사의 지속적인 압력을 견디지 못해 자연소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계열사들을 묶어서 노조를 만든 뒤 많은 조합원 수를 확보해 버티면서 지지를 얻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10년이 넘도록 외부에서 삼성 노조 설립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이하 삼성 해복투) 김갑수 의장과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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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의장은 삼성SDI 해고자로, 1990년대 중반부터 노조 준비모임을 만들어 경기 수원과 충남 천안 등지에서 활동하다 해고됐다. 해고 뒤 삼성 해복투에서 활동하면서 삼성 안의 노조 결성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삼성SDI 과장들을 중심으로 천안과 부산, 울산 등에서 노조 설립이 추진될 당시 삼성 직원들과 민주노총 등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금속노조에 개별 가입한 삼성 직원들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김 의장은 지금은 수원과 천안 등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원회와 함께 일하고 있다. 김 의장은 “많은 사람들이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뜻있는 이들이 (노조를) 준비하고 있다”며 “금속노조 등의 지원은 받지 못하는 상태지만 지역 단위의 민주노총 지부와 협조해 내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환 위원장은 2000년 초 삼성 해복투 결성을 주도하고 2003년 설립한 삼성일반노조를 이끌고 있다. 삼성일반노조는 삼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는 유일한 노조다. 삼성 내에서 불이익을 당한 직원이 가장 먼저 믿고 찾는 인물이다. 그 또한 민주노총과 함께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 활동을 벌이고 있다.

“4월 말께 서울 영등포 쪽에 사무실을 낼 계획이다. 그러면 노조 업무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갑수·김성환, 밖에서 싸운다

노조 사무실을 갖추기 위한 활동 자체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알리는 활동이라고 할 만큼 사무실 한 칸을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 무노조에 맞선 삼성 노동자들의 조직활동을 본격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삼성 X파일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삼성반도체 백혈병 발병 사례 등을 겪고, 구조조정으로 동료들이 그만두는 모습을 보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는 직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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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민주노총은 2008년 삼성·포스코 등 노조 미조직 대기업에 노조를 세운다는 목표로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미조직비정규직사업 테스크포스팀을 꾸렸다. 그 뒤 삼성 직원 가운데 노조를 원하는 이들을 금속노조에 개별 가입하게 하는 방식으로 노조 설립 토대를 마련해왔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노조원의 신분이 드러나자 대부분 삼성 쪽의 회유·협박으로 노조를 탈퇴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개별 접촉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정희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현재는 한 부서에서 삼성 쪽 직원들을 접촉한 뒤 위원장 등 집행부에 직접 보고하는 체제로 내부적으로도 보안을 유지하면서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외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을 통해 알릴지는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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