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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리면 말 바꾸는 군… 못믿겠군

온라인 ‘군방고수’들 문제제기에 해명 계속 바꿔… 일각에선 영구 미제 가능성 제기
등록 2010-04-15 19:41 수정 2020-05-03 04:26
지난 4월1일 이기식 합참정보작전처장이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언론이 제기한 여러 의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난 4월1일 이기식 합참정보작전처장이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언론이 제기한 여러 의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천안함 생존자 57명이 환자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함선이 침몰한 지 열흘이 지난 4월7일이다. 맞은편엔 기자들이 앉아 있었다. 집단적 ‘진실게임’은 처연했다. 의혹이 증폭되는 걸 막으려는 정부·군의 잔인한 결단, 그리고 의혹을 해명하려는 언론의 잔인한 요구가 호응한 결과다. 같은 날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중간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아고라 반박글 뒤 TOD 추가 공개

불신은 사그라졌는가. 실종자 가족부터 따졌다. “(증언 내용이) 입을 맞춘 것 같다”거나 “합조단의 조사 내용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으며, 가족협의회 쪽이 합조단에 참여해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군 당국에 요청하겠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믿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을 법한데, 군과 청와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사고 발생 시각이 일주일 사이 세 차례에 걸쳐 모두 23분가량 앞당겨졌다. 최초 상황 보고나 구조 과정은 점점 더뎌졌다는 얘기다.

2001년 미국 잠수함과 일본의 수산고교 해양실습선이 충돌했다. 당시 총리가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이후 사임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핵심 원인 발표는 반나절 만에 이뤄졌다. 국민 안보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과 직접 견줄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참사 발생 보름이 지나기까지 사고(암초·내부 폭발)인지, 사건(기뢰·어뢰에 의한 침몰)인지조차 구분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상식적인지 국민 대다수는 의심한다.

우리 군 역시 매일이다시피 기자회견을 통해 진상 규명에 접근코자 했다. 하지만 이른바 민간 ‘군방고수’는 물론 전역자, 즉 ‘병장고수’들의 간단한 경험 진술만으로도 군쪽 설명엔 ‘파공’이 생겼다. 그리고 결국 수정됐다. 의도를 떠나 거짓말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해안 초소에 설치된 열상감시장비(TOD)가 대표적이다. 침몰 정황을 파악할 유일한 시각물로, 군은 함수만 담긴 영상을 편집해 지난 3월31일 처음 공개했다. “폭발음을 듣고 (해병이) 녹화를 시작한 것”이라며 “(앞 시간대의) 다른 자료는 없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하지만 사실과 달랐다.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 반박의 글들이 올랐다. 그를 뒷받침하는 댓글이 줄지었다. ‘TOD 운영 경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의 자성’은 “백령도에서 1.8km 밖에 침몰된 천안함은 침몰되기 전부터 침몰된 후 그리고 당시 일출되기 전까지 모든 상세 기록이 테이프로 100% 녹화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4월2일)했다. 이튿날 ‘blue(블루)’도 “일몰부터 일출까지 2시간 운용에 30분 휴동을 거듭하며, 기기가 쉬는 동안에는 다른 기지에서 중첩으로 감시해 감시 공백을 없앤다. 따라서 (침몰 시점의 천안함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국방부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태안에서 근무했던 TOD병”이라는 ‘블루’는 군의 설명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했다.

실제 군은 4월7일 천안함이 정상 운항 중이던 장면까지 추가 공개했다. “없다”던 영상물이 “있는 줄 몰랐다”로 해명되며, 두 차례나 더 나온 셈이다.

이처럼 ‘군방고수’들은 설을 제기하는 것에 치중하지 않는다.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을 경험과 논리로 짚는다. 사고 원인도 마찬가지다.

어뢰공격설, ‘군방고수’들이 차단

언론은 초기 기뢰설에서 어뢰설 또는 일부의 암초 충돌설, 다시 기뢰 가능성을 유력한 원인으로 좇는 형국이다. 그만큼 정보가 충분치 못해 널을 뛰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보수 언론은 3월 말부터 북한의 어뢰 공격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3월31일), “최 함장 ‘피격당했다’ 첫 보고”(4월2일) 등의 제목이 달렸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빌려 “어뢰 가능성 실질적으로 더 커”라고 제목을 내건 기사(4월3일)가 정점이었다.

여론이 그리 확산되진 않았다. 온라인에서 ‘군방고수’들의 견제가 컸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며 ‘천안함 사고 진상’에 관한 분석글을 써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시켰던 ‘나그네’는 △미국의 대북 정보력 △한-미 양국 해군의 군사훈련 상황 △잠수정 운용이 불가능한 지형 특성 등을 꼽으며 어뢰 공격설을 차단했다. 지난 4월5일 영관급의 한 해군 현역 장교는 기자에게 “수많은 문제제기 가운데 가장 신뢰가 가는 글”로 ‘나그네’ 글을 지목해줬다. 실제 글은 대학 커뮤니티, 언론사 홈페이지 토론 게시판 등에 널리 퍼진 상태였다.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 올린 ‘손리사’의 글(3월31일)도 강력했다. 2000년부터 선박을 운항한 해기사로, 천안함 침몰 원인을 아예 “침수”로 못박았다. “장교를 비롯한 지도부가 선수에 있었다는 것, 나머지 승조원이 브릿지 근처에 있었던 것은 침수가 된다는 선미의 보고와 대책을 반영하는 현장의 상황”이라는 등의 논리를 내세웠다. 그는 “5년 동안 선박이 침몰하는 장면을 본 것이 10여 차례이고 직접 구조도 해봤다”며 “선박이 (자기 무게) 5배 이상의 외부 압력이 아니라면 용골이 부러질 수 없다. 단시간의 외부 공격에 의해 천안함처럼 깨끗이 절단되듯이 두 조각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4만6천 명이 조회했다.

국방부가 ‘손리사’의 글에 아예 댓글을 달아 반박했다. “모 병사는 샤워 중이었고, 모 부사관은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등 침수 상황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상적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안 질의를 위해 지난 4월2일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청와대발 쪽지를 받는다. “VIP께서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고…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시고…”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민’이 ‘군’을 향해 글을 쓰는 이유는 간명하다. 정보사 예하 기술정보단에서 번역병으로 근무했던 ‘나그네’(40대)는 과의 인터뷰에서 “당장 초기 수색 작업 때, 자기 반응으로 금속을 탐지하는 매드 기능을 가진 해군 초계기를 띄우지 않고 시간을 허비한 건 미필적 고의에 가깝다”며 “소설을 쓰겠다는 게 아니라, 정상적이지도 석연치도 않은 조처에 대한 해명을 당연히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누리꾼이 사고 원인을 추론하기보다 초기 대응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데 주력했다. 침몰 당시 함미 쪽 병력의 추가 구조가 전혀 되지 않은 것이 납득할 만한지 묻는다. TOD 운영병이던 ‘블루’도 “천안함의 위치 정보는 이미 레이더와 TOD에 포착돼 일지상에 기록돼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28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최초 TOD로 확인했을 때 침몰 함정이 반으로 갈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병장고수’들의 말이 맞다면, 좌표를 뻔히 알고도 구조가 아닌 수색을 되풀이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초기 대응을 잘했다”고 격려했다.

“생존자까지 공격받는 상황 답답”

한 토론 게시판에 천안함 침몰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 이아무개(36)씨는 부사관 출신이다. 처음 주검으로 발견된 고 남기훈 상사가 해군기술병과학교(진해)의 2기수 선임이다. 이씨는 “경험상 어긋나는 설명이 나오고,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면서 생존자까지 공격받는 상황이 답답해 실상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군에 대한 ‘불신’의 파편이 천안함 승선자를 겨냥했던 셈이다. 본질까지 흐린다. 2000년 해군 중위로 예편한 최아무개(39)씨는 “정부가 설득력 있는 해명을 못하고 그걸 찾으려는 노력도 불충분하다 보니, 추측만 난무하는 흥미거리가 돼버렸다”며 “희생자를 추모해야 할 상황마저 변질됐다”고 말했다.

불신은 불신을 부르게 마련이다. 조만간 천안함을 인양하면 진상은 모두 규명될까? 적잖은 이들이 벌써부터 ‘영구 미제 가능성’을 거론한다. 이야말로 ‘음모론’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점 의혹 없이 모두 공개하라”는 지시를 네 차례나 했기 때문이다.

천안함 생존자 57명은 기자회견장에서 내남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몇몇은 울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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