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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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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주의가 애도를 막는다

원인 공방에 밀려 실종자들에 대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시민들, 촛불마저 차단당해
등록 2010-04-13 15:18 수정 2020-05-03 04:26

슬픔이 없다. 장병 44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2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어 우리에게 돌아온 참사 앞에 보름이 지나도록 슬픔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우리 사회가 누군가를 잃었을 때 촛불 추모의 상징적 장소였던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 사이트 아고라에도 원인 규명을 둘러싼 군 전역자 ‘고수’들의 겨루기만 난무한다. 오프라인도 조용하기는 다르지 않다. 고 남기훈 상사, 고 김태석 상사가 뭍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슬픔은 어디로 실종된 것인가?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은 왜 전 국민적 애도 물결로 이어지지 않을까. 4월8일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만난 실종자 가족. 사진공동취재단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은 왜 전 국민적 애도 물결로 이어지지 않을까. 4월8일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만난 실종자 가족. 사진공동취재단

슬픔의 유보

사건 초기 정부에서 제공한 강한 생존 가능성은 모든 감정을 유보상태로 만들었다. 생존의 희망이 집단적 기다림으로 합의가 된 것이다. 슬픔을 표현하고 집단적 애도를 촉구하는 태도는 곧 구조 포기를 의미한다는 불안감마저 엿보였다. 고 한주호 대위와 금양 98호 어민 2명의 사망, 고 남기훈 상사와 고 김태석 상사의 죽음이 확인됐지만, 그들을 위한 추모는 잠시 유보됐다. 대신 나머지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을 믿고 싶은 집단적 열망만이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유보는 사고 시각 번복과 열상감시장비(TOD) 촬영 시간 거짓말, 사고 지점 항해 이유 번복 등 정부의 말바꾸기와 거짓말이 잇따르면서 분노로 변했다. 사건 원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소모적 논쟁 또한 답답증을 불러 일으켰다. 회사원 이아무개(35)씨는 “자꾸 뭔가를 감추는 듯한 태도로 명쾌하기 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정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며 “슬픔까지 뒤로 미루고 있는 것도 모르고 우리를 바보 취급하면서 쓸데없는 비밀주의를 이유로 대는 것을 보면 더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하지만 인양이 되고 그 분들이 모두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슬퍼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분노와 안타까움은 있으되 슬픔은 찾을 수 없는 상황은 인터넷에서도 감지된다. 피로파괴를 주장하는 글이나 TOD를 담당했던 전역자가 올린 글이 수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반면 추모와 애도의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몇 건 안 되는 추모 글의 조회수도 두 자릿수를 겨우 기록하고 있다. 이는 흡사 어린아이의 실종을 맞닥뜨린 가족의 태도와 유사한 집단 반응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우리 정서상 슬픔과 추모를 개별 희생자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실종자 전원이 인양될 때까지 슬픔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며 “시민들은 집단적 슬픔을 파편화해 잠재적으로 공유한 상태로,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보면서 (천안함이 인양될 때까지) 정부의 의무와 역할이 뭔지 끊임없이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인양 뒤에도 슬픔의 유보는 계속될 수 있다. 애도의 표현이 공론장에서 나타나려면 죽음이나 실종이라는 현상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기제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집단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육하원칙을 기본으로 책임자와 사건 원인 등 최소한의 정보가 합의되고 이해되는 것을 뜻한다”며 “현재는 그 기초적 정보조차 베일에 가려진 상태”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전모가 드러나야 사건 초기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분노나 사고 해결이 지지부진함에 대한 안타까움 등의 감정이 슬픔과 복합되면서 터져나올 것”이라며 “사건이 영구 미제로 남겨진다면 이 복합적인 감정도 영구 유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슬픔의 피로

사고 시점이 보름을 넘어서면서 원인 불명의 지속에 따른 피로감으로 감정이 소진됐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갖는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는 “실종은 시간의 단절이나 감정의 변화 없이 힘겹게 버텨야 하는 상태”라며 “2주가 넘는 기간에 원인 공방만 지지부진하게 계속되는 상황에 익숙해져버렸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슬픔은 한데 모아져 일종의 공명 작용을 통해 확장돼야 하는데, 안타까움과 슬픔이 혼재된 상태가 지속되면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공에서 바람 빠지듯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석은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만나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비극이 장기화·일상화되면서 안타까움 이상의 감정을 느낄 여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먹고살기 바빠서’라는 전가의 보도 같은 명제도 다시 등장한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로 시작된 참사가 20여 년 동안 끊이지 않은데다 고 노무현 대통령, 고 김대중 대통령 등 뜻하지 않은 사회적 죽음을 경험하면서 집단적으로 감정의 피로가 누적된 게 아니냐는 질문이 더해진다. 결국 이런 반응은 살아가기 위해 각자가 경험적으로 체득한 학습효과라는 비관적 결론에 이른다.

슬픔의 차단

현재의 상황이 유보나 피로가 아니라 지금껏 존재해온 군 사고에 대한 관습적 차단 반응일 뿐이라는 시선은 무의식의 좀더 깊은 곳을 찌른다. 군대 내 사건을 국가 안보 문제와 결부해 비밀주의를 용인한 뒤 ‘그들’의 문제로 치부하는 시선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육군 부사관으로 예편한 이아무개(32)씨는 “전방에서 총기 난사 사고 등으로 많은 장병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을 때도 대중에게 군대 내 사고에 대한 의식은 추모나 애도와는 거리가 멀지 않았느냐”며 “한 다리만 건너면 내 동생, 내 친구들이지만 군 사고라는 사실만으로 원인 규명이나 실체 공개에 대한 요구는 대부분 가족을 중심으로 이뤄져왔고, 사회적으로는 ‘불쌍하다’ ‘재수가 없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현실의 광장에서 애도 분위기는 더없이 썰렁하다. 추모의 상징이 된 촛불은 지난 3월31일 이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지난 4월6일 저녁 7시 서울 청계광장에 한국대학생문화연대 소속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기 위해 나선 현장. 그들은 “희생자 추모를 왔다”며 ‘기적을 바랍니다’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촛불을 켰다. 찬 봄바람에 위태롭게 타오른 촛불의 수는 딱 셋이었다. 그나마도 청계광장을 지키던 20여 명의 경찰이 “바람이 많이 불어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끄라”며 저지했다. 참가자인 이재근씨는 경찰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미신고 불법집회 중단하라” “자진 해산하라”는 경찰의 경고만 반복해서 되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촛불은 채 10분을 타지 못하고 진화됐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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