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은 지난 2년 가까이 공식적으로 회장직을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삼성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쳐왔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냉장고 폭발사고에 크게 화를 냈다. 곧바로 삼성전자는 일사불란하게 관련 제품 리콜에 들어갔고, 해당 사업부 고위임원 징계도 단행됐다.
‘전 회장’일 때도 입김 셌는데…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이 회장이 맡을 사내 역할에 대해 “(이 회장이 과거에도) 큰 의사결정이나 그룹이 나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매일 하루하루의 경영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며 “역할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매일 출근해 자잘한 업무를 챙기기보다 ‘큰 그림’ 그리기에 치중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 복귀와 함께 ‘회장실’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삼성은 이 회장을 보좌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42층에 회장실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그동안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있던 업무지원실·커뮤니케이션팀·법무실 등을 업무지원실·브랜드관리실·윤리경영실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3개 실을 하나로 묶어 총괄하는 자리가 새로 생겨날지 아니면 회장실에서 과거 전략기획실 역할도 겸하게 될지도 주목된다. 회장실이 이전 전략기획실 기능을 맡게 된다면, 회장실 실장은 삼성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의 복귀도 점쳐진다. 이 고문은 이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로 이 회장 퇴진 뒤에도 삼성과 이 회장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해왔다. 이 고문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전시회(CES), ‘호암 이병철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식 등 최근 이 회장의 공식 행사 참석 때 지근거리에서 수행해온 점도 ‘이학수 복귀설’에 힘을 싣게 한다. 이에 대해 삼성은 “계획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이학수도 겨울올림픽 위해 뛴다?물론 이학수 고문이 다시 전면에 나설 경우,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이 고문은 삼성특검 사태에 따른 사면·복권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는 지난해 정부에 제출한 ‘경제인 특사’ 건의서에 이 고문의 이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이 고문이 굳이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의 장을 맡지 않은 채 드러나지 않게 이 회장을 보좌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고문은 이 회장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활동을 위한 물밑작업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복권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든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라”는 이건희 회장의 언급은 삼성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가 시장을 주도할 만한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혁신적 상품인 아이폰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다 하드웨어 시장에만 치중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한발 뒤처졌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앞으로 조직 내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크게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상보다 이른 경영 복귀인 만큼 삼성의 부담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말 단독 특별사면을 받은 뒤 3개월 만에 복귀를 선언해 여론이 그리 곱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회장은 복귀를 한 뒤 경영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너 복귀에 대한 후폭풍이 다시 불 여지가 있어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KBS 박장범, 8년 전 ‘최순실 딸·우병우’ 보도 막았다
윤 골프 취재할 때 폰 뺏은 경호처 “기자 도주” CBS “그런 적 없다”
이재명 재판에 ‘상식적 의문’ 2가지…그럼 윤 대통령은?
‘입틀막’ 경호처, 윤 골프 취재하던 기자 폰 강제로 뺏어…경찰 입건도
“중국인 2명 이상 모이면 빌런”…서울교통공사, 혐오발언 ‘급사과’
[단독] “김건희 ‘저 감옥 가요?’…유튜브 출연 명리학자에 먼저 연락”
대법,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 ‘차명투자’ 27억 과징금 확정
귀뚜라미 보일러, 중국에 납품업체 기술자료 32건 빼돌렸다
이재명 “김건희 특검법 반드시 통과”…유죄 선고 뒤 첫 공개발언
천만 감독·천만 배우·300억 대작, 썰렁한 극장가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