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9일 오후 2시45분께, 서울중앙지법 425호. 형사합의23부(재판장 홍승면) 심리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증인으로 나온 한병도 전 의원이 40분 넘게 증언을 계속하고 있었다. 검사의 심문이 끝나고, 이광재 의원 쪽 변호사의 반대심문이 시작됐다. 몇 차례 질문이 오가다 갑자기 한 전 의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겠다는 말도 들었고, 저희 집에 대한 가택수사까지 이뤄졌습니다.”
한 전 의원의 말은 이어졌다.
“검찰 수사 첫날 저를 조사했던 검사가 ‘이광재가 (당신) 면전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제가 나중에는 감정이 격해져서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제 선친을 두고 맹세할 수 있는데, 이광재가 돈을 받은 것을 정말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검사가 ‘양아치들이나 하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하는 겁니다.”
그 순간 검사석에서 듣고 있던 검사가 눈을 부릅뜨고 마이크를 잡았다.
“아니, 제가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겁니까!”
한 전 의원은 “검사님을 뵌 것은 두 번째 조사를 받은 때이고, 제가 계속 (돈 받은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은 것은 첫 번째 조사 때입니다.”
다시 검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검사가 전직 국회의원에게 양아치라고 했다는 소리인데, 판사님께서는 증인의 위증 여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 발언을 기록에 분명히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증인을 노려보는 검사의 눈길은 매서웠다.
한 전 의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양아치라는 소리를 한 검사는 분명 첫날 조사한 검사였습니다.”
쥐 죽은 듯 조용하던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몇몇 방청객은 불편한 듯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고, 몇몇 방청객은 인상을 쓰며 검사석을 노려보기도 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지한 홍승면 재판장이 “그럼 첫날 조사한 ○○○ 검사가 (양아치 발언을 한 검사가) 맞냐”고 실명을 거론하며 묻자, 한 전 의원은 “첫 번째 조사를 담당한 검사는 모두 3명이었는데, 그 발언을 한 검사는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키가 매우 큰 검사였다”고 답했다.
이날 공판은 이광재 의원이 지난 2006년 8월 박연차 전 회장이 운영하는 베트남 공장인 ‘태광비나’를 방문할 당시 동행한 한병도 전 의원에게 당시 상황을 묻는 자리였다. 이광재 의원은 이때 박연차 전 회장에게서 5만달러를 받는 등 모두 7천여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한 전 의원은 이광재 의원의 베트남 여행에 동행했다는 이유로 지난 3월21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한병도 전 의원이 ‘양아치’ 운운하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것은 3월21일 조사 당시였다고 했다.
이날 발언의 폭발성 때문인 듯, 공소 유지를 위해 나와 있던 두 명의 검사는 한병도 전 의원에게 수사 도중 욕설이나 폭력 행위 등 강압성이 있었느냐고 거듭 따져물었다. 그에 대해 한 전 의원은 “직접적인 욕설이나 폭력 행위는 없었지만, 정신적·신체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현직 고검 검사도 강압 조사 주장한 전 의원을 두 번째 조사했다는 ××× 검사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병도 의원님’이라고 호칭했지요?”라고 물었고, 한 전 의원은 “네,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재판장은 “그럼 첫 번째에는 강압적으로 조사를 받았고, 두 번째는 그렇지 않았다는 취지냐”고 되물었다. 한 전 의원은 그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증언은 그렇게 끝났다.
바로 전날에도 이 법정에서 현직 부장급 검사가 대검 중앙수사부 수사를 받을 당시 강압성이 있었다고 주장한 터여서 파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연차 전 회장에게서 사건 관련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부산고검 김종로 검사는 7월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청탁을 받지도 않았고, 받았다는 금액도 검찰이 주장하는 바와 다르다”면서 “조사에서 임의대로(원하는 대로) 진술하지 못했다”고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김 검사는 2005년 3월 박 전 회장에게서 황철곤 마산시장의 뇌물수수 혐의 조사와 관련해 수사팀에 잘 이야기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고 5천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 검사는 검찰에서 받은 두 차례의 피의자 신문조서 중 일부에 대해 “조서 내용의 임의성을 부인한다”고 말했다. 임의성을 부인한다는 것은 조사 과정에서 강압 등에 의해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조서가 작성됐음을 의미한다. 재판장인 홍승면 부장판사가 “현직 검사가 강압을 받고 진술했다는 뜻이냐”고 묻자 김 검사의 변호인 쪽은 “그에 대한 답변을 다음 재판 때까지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한편, 한병도 전 의원은 증언을 마친 뒤 과 만나 “처음에는 (양아치 표현을 듣고) 너무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워 첫 번째 조사는 그냥 빨리 마치기만 바랐다”며 “그런데 그 뒤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그 표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 수사의 잘못된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 차원에서 오늘 증언에서 말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돌아가신 선친은 원불교의 대표적인 원로셨다”며 “나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 난 뒤에는 내가 그 순간에 왜 반박하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고 계속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 전 의원의 집안은 선친과 모친 그리고 큰형까지 원불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 전 의원도 술은 일절 입에도 대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양아치 운운하는 발언으로 그가 받은 상처가 유난스레 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도 했다.
독실한 원불교 집안, 양아치 운운에 큰 상처증언을 마친 한 전 의원은 쏟아지는 비를 그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열리는 봉하마을로 향했다.
한병도 전 의원은 전북 익산에서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측근인 이광재 의원과 이화영 전 의원이 주축이 된 의정연구센터(의정연) 회원으로 주로 활동했다. 의정연은 박연차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집중된 의원 모임이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이광재·서갑원·조정식·김종률·백원우·김재윤 민주당 의원과 한병도·이화영·김태년·김형주·윤호중 전 의원 등이 멤버로 활동했다. 한 전 의원은 2007년의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 열린우리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친노 후보’로 나선 이해찬 전 총리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는 등 친노 그룹의 중심에서 일해왔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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