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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도 선언에 동참하다


200여 문인 6월9일 ‘1인1줄 시국선언’, 대학교수들 시국선언은 1987년처럼 확산 조짐
등록 2009-06-09 13:45 수정 2020-05-03 04:25

무리의 원성이 자자하면 쇠도 녹인다고 했다. 시국선언의 시장통 표현은 욕이고, 교수들의 말론 민주화에 대한 우려(서울대)이고 염원(중앙대)이다. 보수의 언어로는 ‘소란’이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라를 흔들었던 ‘조문 민란’이 지식인 집단의 시국선언 물결로 꾸역꾸역 옮겨가고 있다. 선언의 수위나 수사는 달라도, 현 정부의 통치 방식이 일방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데 대한 좌절과 분노가 저마다의 비등점에서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형국이다.

6월3일 중앙대 교수들이 “다시 민주주의의 죽음을 우려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6월3일 중앙대 교수들이 “다시 민주주의의 죽음을 우려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자유주의적 성향의 젊은 작가들도

소속 집단이 따로 없는 소장파·중견 문인 200여 명이 6월9일 시국선언을 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적 발언과는 상당히 거리를 둬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결집과 당대 정권을 공개 비판하는 형태의 ‘항거’는 한국 문단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한 명씩, 제 이름을 걸고 한 줄씩의 선언을 채워간다는 계획이다.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이른바 ‘1인1줄 시국선언’이다. 미학적 모더니티나 자유주의적 성향을 견지해온 젊은 작가들이 최초 밑불을 지폈다. 젊은 세대가 철저히 개인화되고 무장 보수화돼간다는 평가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가운데, 하나의 사건으로 회자될 만하다.

이들은 지난 5월27일 저녁 30여 명이 처음 모임을 가지면서 의견을 나누고 향후 얼개를 그렸다. 첫 모임에 참석한 한 문인은 “온라인 카페를 바로 만들고 주변에 취지를 설명하다 보니 순식간에 구성원이 확장됐다”며 “공분이 크다 보니 연령층, 작가적 관점이나 성향과 무관하게 전체 200여 명 정도가 규합됐다”고 설명했다.

6월5일 기준으로 동참의 뜻을 밝힌 이들이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200여 명이다. 두 가지 의미가 올돌하다. 그동안 문단의 사회적 발언을 주도했던 작가회의와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회의가 젊은 작가들로부터 두루 신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에두르고, 관성적이고 기계적인 사회 발언·대응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내재해 있다. 1줄 시국선언에 참가한 한 문인은 “황석영이 아니고, 백낙청이 아니고, 작가회의가 아니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삶이든, 작품 안에서든 주요 준거틀이 ‘개인’ 내지 ‘탐미’였던 문인들까지 정치사회적으로 전면 ‘기투’한다는 점에서 선언의 배경이 더 절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식인의 시국선언은 교수 사회가 포문을 열었다. 서울대와 중앙대가 각각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다시 민주주의의 죽음을 우려한다”는 제목의 선언문을 지난 6월3일 발표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삼켰고, 중앙대 교수들은 토했다. 둘 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주축이 되긴 하였으나, 하나의 프레임만으로 배경이 설명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서울대 시국선언, 2004년 이후 처음

시국선언을 통해 서울대 교수들은 “조문 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연대를 위한 정치 선언 △표현·집회결사·언론의 자유 보장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사죄 및 정적·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수사 방식에 대한 반성과 개선 등을 요구했다.

중앙대 교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파렴치한 기득권자들의 채찍에 내몰린 비통한 죽음임을 알기 때문”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김경한 법무부 장관, 임채진 검찰총장을 포함한 MB 내각의 총사퇴 등을 요구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나선 것은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반대 이후 처음이다.

이어 경북대·우석대·충북대·전남대·조선대·신라대·연세대·성균관대·성공회대·동국대·전북대 등이 시국선언에 동참했거나 할 예정이어서, 교수 시국선언은 1986~87년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쉽진 않다. 김인걸 서울대 교수는 시국선언 경과를 밝히면서 “원래 교수회관에서 전례적으로는 행사를 했는데, 서울대가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하고, 일부 장소에서도 사용이 힘들다는 의견을 받아 급하게 인문대에 협조를 얻어 겨우 장소를 구하다 보니 여러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고 선열에 대한 묵념도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고려대를 필두로, 사태만 예의주시하는 교수들도 많다.

무엇보다 1990년대 이후 교수들 또한 직업인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지식인이라기보다 ‘지식판매상’이란 비판이 제기된 것도 오래다. 기본적으로는 제도적 민주주의의 틀이 확립되면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개인화·보수화됐다는 얘기다.

지난해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우려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교육, 운하 등 다양한 의제로 확대되며 100일 이상 지속됐으나, 이를 사실상 위로하고 추스른 이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었다. 당시 시국선언에 동참한 이는 연세대 교수 등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교수들의 시국선언 물결은, 반민주 정치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지식인 사회가 비로소 공개 동의했다는 의미와, 그럼에도 얼마나 파괴력을 지닐지 미지수라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실제 이명박 정권은 아랑곳 않는 눈치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서울대 교수 124명이 동참한 시국선언에 대해 “서울대 교수 총원이 1700명이 되는 걸로 안다”며 ‘소수 의견’으로 폄훼했다. 수구 언론들도 특정 세력의 목소리로 치부한다. 서울대 시국선언을 방해하며 “국비 받아먹는 교수들이 그럼 안 되지” 등을 외친 노인 단체들처럼, 보수 시민단체들도 같은 ‘벡터’로 반작용 결집하는 양상이다.

과거를 기억하라

하지만 지식인 사회는 다음의 역사를 강조한다. 1960년 4월25일 전국대학교수단은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4·19 혁명이 일어난 지 일주일 만이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외침이었다. 이틀 뒤 이승만 정권은 퇴진했다. 전두환 정권 말기 잇따른 교수들의 시국선언 또한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동력이 되었다. 5년 전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를 추진했을 때도 시국선언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달 열린 총선에서 소수정당 열린우리당은 150석 이상의 과반 정당이 됐다.

1줄 시국선언에 참가한 한 문인은 자신들의 시국선언을 두고 “미학적 전위가 정치적 전위, 정치적 진보와 만나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6월9일 시국선언이 이뤄진 뒤, 청와대가 예처럼 “작가회의 소속 문인들만 1700여 명”이라 응대할진 알 수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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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왔습니다
764호 표지이야기 ‘개인도 선언에 동참하다’ 기사에서 젊은 문인들의 시국선언과 관련해 한 문인이 “황석영이, 백낙청이, 작가회의가 아니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인용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문인은 “대사회 발언을 많이 해온 문인과 단체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적 발언을 해오지 않았던 작가들의 사회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단순 언급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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