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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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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점화 준비된 심지

촛불시민의 1년…
떡볶이를 제공한 ‘다인아빠’는 촛불 상근자로, 과천에선 수요일마다 촛불집회
등록 2009-04-23 11:38 수정 2020-05-03 04:25

2008년 촛불은 작은 것들도 많이 모이면 온 세상을 불태울 만큼 뜨거울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잘 알고 있는 시민들은 민주적이지 않고 공화적이지도 못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안에 분노했다. 그들은 화염병 대신 촛불을 들었고 투쟁가 대신 를 불렀다. 여고생들은 자칫 초반에 사그라질 뻔한 촛불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아줌마들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앞세우며 그 집회가 평화의 향연임을 웅변했다. ‘마초적 발상’이라는 일부의 비판에도 남성들은 예비군복을 유니폼으로 입고 나와 밤새도록 질서유지 임무를 해냈다. 첫 촛불이 타오른 지 1년, 한 해 전 광장을 뜨겁게 달구던 촛불시민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그들의 가슴 한쪽에는 심지가 한 가닥 자라고 있었다. 직접 거리에 나서 제도권 시스템의 오작동에 경고음을 냈던 ‘집단의 기억’은 그렇게, 언제든 점화할 준비가 된 심지가 돼버렸다.

최초의 ‘촛불 상근자’인 다인아빠가 4월16일 서울 용산 참사 희생자들이 안치된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과 촛불 1주년 기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들렀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최초의 ‘촛불 상근자’인 다인아빠가 4월16일 서울 용산 참사 희생자들이 안치된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과 촛불 1주년 기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들렀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지난 4월16일 김경민(36)씨의 하루는 바빴다. 오전엔 민주노총, 오후엔 용산범국민대책위를 오가며 5월2일로 다가온 촛불집회 1주년을 어떻게 맞이할지 논의했다. 그는 본명보다 누리집 필명 ‘다인아빠’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마다 트럭을 몰고 나와 떡볶이와 라면 등을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며 큰딸 다인(7)이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회원 200~300명 시민단체의 촛불 상근자

그가 촛불에 뛰어든 계기는 우연한 것이었다. 7년여간 하던 택배일을 접고 트럭을 장만해 떡볶이와 어묵 등을 파는 분식 노점을 시작한 참이었다. 그러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5월31일 경복궁 근처에서 물대포를 맞고 추위에 떠는 이들을 보고는 ‘후방 지원’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 아고라에서 모금까지 해가며 그 돈으로 촛불시민의 배를 채워주던 그는 지난해 9월 아예 전업했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는 촛불 시민단체를 만들고 국내 유일의 ‘촛불 상근자’가 됐다.

그 뒤 그는 촛불이 켜지는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지난해 말 한국방송의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은 물론이고, 올해 초 방송악법 투쟁 때도 서울 여의도 집회 장소에서 떡국을 끓여 언론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철거민 등 6명이 숨진 용산 참사가 난 뒤로는 범국민대책위 쪽에 쌀과 반찬, 물 등을 정기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매달 200∼300명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재정적 버팀목이다. 그에게 ‘촛불’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인아빠가 전국구로 뛰는 동안 회원들은 각 지역의 현안에 대응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천 쪽 회원들은 계양산골프장과 경인운하 건설 반대 촛불을 들고, 경기 광주 회원들은 수도 민영화 문제에 대응하는 식이다. 이렇게 대구·광주·부산·천안·속초 등의 지역에서도 주 1회 소규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4월18일에는 경기 양평으로 회원들끼리 엠티도 간다. “일상생활 때문에 현장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을 내가 대리하고 있는 셈”이라는 다인아빠는 “꼭 오프라인 형태의 집회를 해야 촛불이 유지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위기 상황이 되면 촛불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82쿡닷컴’ YTN에 쑥떡 배달

촛불에 투신한 다인아빠의 경우는 물론 특이한 사례지만, 아직 촛불을 끌 수 없다며 지역적으로 꾸준한 활동을 벌이는 곳도 있다. 경기 과천의 촛불시민모임이 바로 그 경우다. 지난해 5월 초 ‘우리 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라는 펼침막을 집집마다 내걸어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모았던 뒷심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과천 중앙공원에는 요즘도 매주 수요일이면 비록 한두 명이더라도 모여 촛불을 켠다. ‘용산 참사 책임자를 처벌하라’거나 ‘일제고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도 함께 등장한다.

지난 경기도교육감 선거 때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운동원으로 뛰어 김상곤 후보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 모임의 카페 운영자 김태진(44)씨는 “(김상곤 당선자의) 과천 지역 득표율이 높았던 데는 촛불시민들이 개인적 조직을 가동한 점도 작용했다”며 “회원들끼리 촛불모임에 지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천 촛불시민모임은 날이 풀리는 5월에는 거리 영상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일단 일제고사에 비판적인 김 후보의 당선으로 교육 쪽 문제는 마무리됐다고 보고, 용산 참사 혹은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한 시민들의 불만을 드러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촛불은 과거의 운동권 투쟁과는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내용적으로 정치권력의 교체를 꿈꾸지 않았고, 축제 형식을 빌려 권력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했다. 그 상징 가운데 하나가 긴장한 전·의경 앞을 한가롭게 오간 유모차 부대다. 광장의 촛불이 사그라진 지금 그들은 ‘생활의 촛불’을 켜고 있다. 경기 분당에 사는 누리집 필명 ‘은석형맘’은 지난 3월31일 실시된 일제고사 때 초등학교 6학년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지난해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회에 나갔다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까지 받은 그는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내 생활과 정치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집회를 경험한 뒤 환경과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의식이 달라져 패스트푸드는 전혀 먹지 않고, 생협 제품만을 쓰고 있다. “촛불은 내 생활이 달라지는 계기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촛불 유모차와 함께하는 촛불가족’ 카페지기인 정혜원씨도 마찬가지다. 카페 회원들과 함께 한우 농가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무항생제 국산 쇠고기 공동구매에 나서는가 하면, 유전자조작 농작물을 반대한다는 글귀가 쓰인 장바구니 쓰기 운동도 벌였다. 환경에 해로운 활성세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무세제 세탁볼 보급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정씨는 “카페 회원들 가운데 생협 쪽으로 돌아선 분들이 많다”면서 “촛불 (관련 카페) 쪽에서는 이런 식의 변화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 왜곡 보도를 일삼은 보수 언론 불매운동에 나섰다가 협박 공문까지 받은 주부 사이트 ‘82쿡닷컴’(82cook.com) 일부 회원들의 가슴속에서도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25년차 주부라는 ‘푸아’는 “(MB 정부를 비판하는) 생활광고를 에 이미 여섯 차례나 냈고 조만간 에 또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는 용산 집회에 참여하거나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인 YTN 노조에 쑥떡을 들고 찾아간 이들도 있다. 이 카페 회원 ‘스푼’은 “촛불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동안 너무 소강상태였는데 뭔가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촛불집회 현장을 유모차 부대가 누비고 있다(왼쪽). 서울 중랑경찰서 방범순찰대 소속 이길준 이경이 지난해 7월27일 양심에 따른 촛불집회 진압 명령 거부 기자회견을 한 뒤 전투복을 벗고 있다(가운데). 촛불 현장의 불씨를 지핀 주인공은 여중·여고생들이다(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21> 박승화 기자·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지난해 6월 촛불집회 현장을 유모차 부대가 누비고 있다(왼쪽). 서울 중랑경찰서 방범순찰대 소속 이길준 이경이 지난해 7월27일 양심에 따른 촛불집회 진압 명령 거부 기자회견을 한 뒤 전투복을 벗고 있다(가운데). 촛불 현장의 불씨를 지핀 주인공은 여중·여고생들이다(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21> 박승화 기자·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일단 수능만 끝나봐라”

지난해 5월 초 촛불의 성격을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주역은 바로 여중·여고생들이었다. 그들은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는 날카로운 구호로 입시에 찌들고 먹을거리 위험에 처한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광장의 촛불이 약화되면서 그들은 다시 학교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강하게 그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입시 체제는 전혀 흔들림 없이 그들을 옭아맸다. 충남 홍성의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인 ㅇ아무개양은 지난해 참가한 촛불집회의 강렬한 기억이 아직 뇌리에 뚜렷하지만 몸은 강제 야간자율학습에 매어 있다. 2학년이던 당시 그는 복개주차장에서 열린 집회에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일 참여했다. “국민을 기만하려는 정부의 작태가 괘씸해서 나가게 됐고 대한민국이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는 ㅇ양은 이후 차츰 촛불의 열기가 식고 미국산 쇠고기가 아무 일 없던 듯 유통되는 현실을 보면서 좌절하기도 했다. 그보다 답답한 건 아무런 변화 없이 학교에 갇혀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였다. “학교만큼 우리를 줄 세우고 억압하는 건 없는 것 같다”는 그는 “일단 수능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중3 때 촛불 현장을 경험하고 현재 경기 분당의 한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최아무개양은 “당시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나의 발전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최양은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노길상 교사는 “촛불집회를 통해 잔치 분위기의 시위 문화도 있다는 게 아이들에게 각인된 것 같다”며 “또 사회적인 답답함 등이 있으면 그들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촛불은 이미 꺼졌으며 실패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난해 촛불 관련 카페지기를 지낸 바 있는 40대 김아무개씨는 “비관적”이라고 했다. 촛불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고, 그 이유는 조직적이고 세력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검경과 방송통신위원회 등 제도권 조직을 통해 벌이고 있는 탄압이 집요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게 김씨 생각이다. 그는 “광우병 문제도 기만적으로 해결됐고 언론 탄압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보듯 인권·복지는 계속 후퇴하고 있지 않느냐”며 “마지막 한 방이 약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촛불 카페를 ‘눈팅’만 하고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식으로 촛불을 끄려는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양심에 반한다며 촛불집회 진압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양심선언을 한 이길준씨는 지난 4월9일 대법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와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등 관계자 5명은 지난해 11월6일 체포됐다가 지난 4월17일 보석 결정으로 석방됐다. 이들의 1심 공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재판은 속도를 잃었다. 촛불집회와 관련해 불구속 기소된 사람은 모두 45명, 약식기소된 이는 589명에 이르는 것으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파악하고 있다.

겉불은 껐으나 속불은 끄지 못했다

지난해 숭례문 화재 때 소방본부의 물세례는 겉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속불은 끄지 못했다. 촛불을 대하는 정부의 대응도 비슷한 양상이다. 숭례문은 대로변에 하나였지만 촛불은 전국적으로 수십만의 가슴에 밑불이 남아 있다. 촛불은 애초, 부자들은 비싸고 안전한 한우 사먹고 가난한 이들은 결국 값싼 대신에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을 수밖에 없도록 한 정부의 계층 차별적 정책에서 출발했다. “그처럼 대중이 광범위한 평등을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다시 촛불은 일어날 것”(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 교수)이라는 진단은 지금의 막무가내 정부에 꽤나 불편하게 다가갈 듯싶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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