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는 정당의 빈자리를 채웠다. 1987년 이후 줄곧 그랬다. 한국 정당에 결여된 것이 시민단체에 있었다. 그 비결은 최초의 본격 시민단체인 경실련 발기취지문에 기록돼 있다. “비폭력 평화운동의 방식으로, 대중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관념적이고 원칙론적인 주장을 배제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함께 적혀 있다. “그럴 때만 시민들의 신뢰를 받을 것이다.” 시민운동은 처음부터 ‘신뢰’에 의지해 탄생했다.
시민단체로부터 시민들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 개혁의 의제를 주도해왔지만, 최근 그 동력을 잃고 있다. 지난 11월6일, 서울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환경련 전현직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 단체 간부의 공금유용 사건에 대해 사죄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시민들이 보낸 신뢰의 핵심은 “시민단체들이 사회 공익 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고 김준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자기들 이익만 챙기는 편파적 정당과 달리 시민단체는 공익을 추구한다,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단체는 명망가에 의해 좌우되는 정당과 달리 민주적이다, 정경유착의 검은돈이 흘러드는 정치권력과 달리 시민들의 자발적 회비에 의해 운영되는 시민단체는 투명하다…. 이런 ‘신뢰의 연쇄고리’가 90년대와 2000년대 초 ‘시민운동의 시대’를 낳았다.
경실련(1989), 환경운동연합(1993), 참여연대(1994) 등이 잇따라 탄생한 90년대 초·중반의 ‘생성기’를 거쳐 시민단체들은 2000년대 초반 ‘절정기’를 맞는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낙선 대상으로 지목된 국회의원 후보자의 68.6%가 실제로 낙선했다. 수도권만 보자면 낙선 운동 대상자의 95%가 떨어졌다.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후원금은 3억5천만원에 이르렀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이를 ‘대의의 대행’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정당이 민심을 대의하지 못하니까, 시민들이 참여연대나 경실련과 같은 ‘종합적 시민운동’을 지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무렵까지 시민단체는 사실상 ‘대안정당’의 구실을 했다.
2001년 국정홍보처가 우리사회 각 집단의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시민단체가 1위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65%가 시민단체를 믿는다고 답했다. 2002년 갤럽 인터내셔널이 45개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주요 기관의 신뢰도를 조사했다. 한국인의 정부 신뢰도는 25%, 의회 신뢰도는 11%였다. 45개국 국민 가운데 한국인은 자기 나라 정부와 의회를 가장 불신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인의 시민단체 신뢰도는 77%였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다. 적어도 2002년까지 한국은 정부와 의회를 가장 불신하면서 시민단체를 가장 신뢰하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후 시민들은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였다. 신뢰의 기반이 됐던 공익성, 도덕성, 내부 민주주의, 시민참여, 정책 대안 마련 등의 요소에 하나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는 2000년 낙선운동과 2001년 언론개혁운동이 시민운동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시민운동의 절정을 장식한 사건이 곧바로 침체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보수) 언론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보수 세력의 반발을 이용하면서 시민단체의 도덕성 등 각종 문제를 지적해 시민운동의 위기담론을 전개했다”고 박 교수는 분석했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도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이 시민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편향에 대한 시비에 노출되는 계기가 됐다”며 “시민운동가들이 언젠가는 정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시민들이 갖게 됐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이 시민단체를 적대하기 시작하면서 시민운동이 ‘공공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통념에도 균열이 생겼다. 핵심 고리는 돈 문제였다.
‘정부 돈 받는다’, 보수 프레임의 확산정부가 시민단체의 재정을 지원하는 일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정무2장관실을 통해 시민사회단체에 약간의 재정을 지원했다.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던 김영삼 정부는 경실련 등 시민단체를 ‘파트너’로 삼길 원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만들어졌다. 연간 15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공공사업 프로젝트를 공모했다. 심사를 통과한 시민단체들은 정부 예산으로 공공사업을 수행하거나 연구·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전까지 새마을운동,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에 지원되던 예산을 ‘개방’한 셈이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2000년 이후 이 제도를 끈질기게 문제 삼았다. 시민단체가 정부와 결탁했다는 보도의 단골 근거로 사용했다. 현재 이 예산은 연간 100억원 규모로 줄었고, 그나마 내년에는 다시 절반 규모로 줄인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부당하다는 생각이다. 2004년, 미 존스홉킨스대학의 레스터 샐러먼 교수가 32개국 시민단체들의 재정 수입원을 조사했다. 각국 시민단체 예산 가운데 정부 지원이 차지하는 몫은 평균 35%였다. 한국 시민단체 평균은 24%였다. 한국 시민단체들의 정부 재정 지원 의존도는 세계적 평균치보다 낮다. 실제로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경우 회원들의 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5% 안팎에 이른다. 게다가 서구에서는 공공 서비스를 정부 대신 행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기금 지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국가에 예속돼 있고 정치적으로는 정권에 기울어져 있다는 보수 언론의 ‘보도 프레임’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참여정부 들어 진보개혁 성향의 인사들이 주요 공직을 맡은 것도 이런 여론의 확산에 일조했다. 그들 대부분은 과거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련, YMCA, 민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당선자 시절인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하례식에 직접 참석해 “시민단체 덕분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축사도 했다.
시민단체의 신뢰도는 이때부터 극적으로 변모했다.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16개 주요 사회기관의 신뢰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시민단체는 2003년과 2004년 신뢰도 1위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국회·정부·청와대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5년이 되자 시민단체의 신뢰도가 5위로 떨어졌고, 2006년에는 6위로 밀려났다.
19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소식을 듣고 이를 자축하고 있는 경실련 활동가들(왼쪽/한겨레 자료). 2000년 4월3일 낙선운동 대상자 명단을 발표한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총선시민연대 대표단(한겨레 이종찬 기자).
이런 추세는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005년 이후 실시해온 연례조사를 보면, 시민단체의 신뢰지수는 2005년 4.8을 기록한 뒤, 2006년 4.4, 2007년 4.6, 2008년 4.4 등으로 하락하고 있다. 2008년 조사만 볼 때, 시민단체의 신뢰지수는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6.0), 헌재·대법원 등 사법부(5.7), 청와대·검찰 등 권력기관(4.6)보다 못했고, 전경련·민주노총 등 이익집단(4.4)과 같았다.
최근 환경운동연합 간부의 공금 횡령 사건이 시민운동 진영에 ‘결정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운동가가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 지원금을 개인 용도로 썼다는 의혹은 그 자체로 ‘정치권력과 유착한 시민단체’라는 보수 세력의 주장에 부합한다. 요즘 시민운동가들이 모이는 술자리의 단골 화제도 환경련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환경련에 대한 질타다. 9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온 한 시민운동가는 “99년 경실련 간부의 칼럼 대필 사건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는 ‘거짓말’이 문제가 됐지만, 지금 환경련은 ‘도둑질’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고 있다. 그런데도 환경련 활동가들의 사태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련 활동가들이 조직의 위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편파 또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난보다 시민운동가들이 더 뼈아프게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민주주의 문제다. 시민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내부의 민주주의도 강화하지 못한 결과, 보수 세력의 이념 공세 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에는 총선시민연대를 매개 삼아 시민들이 정치개혁을 요구했죠. 그런데 2002년 대선에서는 시민들이 ‘대선유권자연대’에 모여들지 않더라고요. 시민단체들이 만든 그런 연대조직이 있었던 것도 잘 기억하지 못할걸요. 당시 사람들은 ‘노사모’로 몰려갔어요.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막막했죠. ‘도대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가’ 싶었어요.”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의 회고다.
올 봄과 여름에 걸친 촛불 정국은 그 흐름을 재확인한 계기가 됐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무관심한 개인이라고 치부했던 평범한 시민들이 촛불 항쟁을 주도했는데, 시민단체들은 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한때 강력한 후원자였던 그들에게 더 이상 감동과 신뢰를 주지 못하고 관성에 젖어 있다”는 게 안 팀장의 생각이다.
관성의 저변에는 시민단체의 내부 민주주의 문제가 있다. 김준기 서울대 교수는 지난 2006년 전국 76개 시민단체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조사·연구했다. 그 결과, 이들 단체가 의사결정기구(운영위원회 등)를 소집하는 빈도가 1년에 여섯 차례 이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정부투자기관의 이사회 개최 빈도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는 사무처의 몇몇 간부 중심으로 단체의 중요 현안이 결정된다는 사실도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내부 민주주의가 진전되지 못하면, 조직 전체의 활력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시민단체들의 대표적 활동 형태인 ‘입법청원 운동’의 경우, 참여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 2001년 130건에 이르렀던 제정·개정·폐지 입법 청원은 2005년 28건으로 뚝 떨어졌다. 홍일표 희망제작소 연구기획위원은 “특히 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 비해 (시민단체들의) 입법 청원은 급격히 줄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물론 민주당·민주노동당 등이 정당 본연의 기능을 강화한 긍정적 측면이 작용했다. 그러나 민의를 대변해 구체적 대안을 내놓는 제도 개혁 분야에서 시민단체의 ‘새로운 콘텐츠’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반이명박’에 머물러선 안 돼촛불 정국 이후 여러 고심 끝에 시민단체들이 내놓은 카드는 ‘민생민주국민회의’다. 지난 10월26일 출범했다. 지난 12월4일에는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함께 ‘경제·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제 정당·시민사회단체·각계인사 연석회의’를 결성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지난 대선과 촛불을 통해 정치권력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됐다”며 연석회의 결성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책을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민주정당이 연대해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겠다는 뜻이다.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추구하는 것이 일종의 ‘반이명박 전선체’가 아니냐는 지적도 여기서 비롯했다.
그러나 정권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방식으로 시민단체의 지도적 위치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적지 않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시민운동이 ‘반이명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촛불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확인했는데,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시민단체들이 그런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시민운동 전체가 ‘새로운 주기’에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의 조직 역량은 강화됐지만 시민들과의 직접 소통은 약해졌다고 그는 분석한다. 지금까지 ‘저항의 권위’를 얻었다면, 앞으로는 ‘소통의 권위’를 얻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조 교수는 특히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시민들에 주목했다. 2002년 이후 사회변동을 이끈 것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온·오프라인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하고 결집하며 흩어지는 유연한 ‘전자적 대중’”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2008년 현재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사활의 기로에 서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뒤이은 실정은 다시 한번 ‘민주주의 투쟁’을 요구한다. 동시에 촛불 시민의 등장은 구태의연한 반정부 투쟁 방식의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90년대 민중운동 진영은 시민운동이 왜 등장했는지는 고민하지 않고 그저 ‘프티부르주아’ 운동이라고 비판만 했지요. 그런 자세 때문에 민중운동이 침체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시민운동가들이 지금 촛불 시민들이 왜 탄생했는지 고민하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에요. 다만 시민단체들이 촛불로 대표되는 새 흐름에 어떻게 합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죠.” 하승창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시민단체들의 앞길을 밝혀줄 유일한 등대는 결국 촛불 시민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참고 자료김준기, 서울대출판부 김호기, 아르케 〈NGO와 정부 그리고 정책〉 박상필, 한울 이달원·정승윤, 시대정신 조대엽·김철규, 집문당 조대엽, 아르케 주성수 등, 창비 하승창, 역사넷 홍일표,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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