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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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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는 이단적 혁명가

개혁적 사고와 보수적 실천 ‘부조화’…예언가 아닌 순발력 있는 전문가
등록 2008-12-05 14:20 수정 2020-05-03 04:25

2008년 여름 직접민주주의의 광장 ‘아고라’를 달궜던 ‘미네르바’는 정말 지혜의 신이었을까? 2008년 늦가을 홀연히 광장 위로 날아가버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민주주의 언덕에 황혼이 드리우고 있음을 알리는 흉조였을까?
네티즌 사이에 ‘선지자’로 추앙받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 올려놓은 ‘묵시록’을 검증해보자.

미네르바는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타결을 4주 전부터 예견하거나 촉구해 화제를 모았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왼쪽)가 지난 10월30일 통화 스와프 최종 타결을 발표한 뒤 자리를 뜨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미네르바는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타결을 4주 전부터 예견하거나 촉구해 화제를 모았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왼쪽)가 지난 10월30일 통화 스와프 최종 타결을 발표한 뒤 자리를 뜨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먼저, 미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예측했다는 점에 대해서다. 리먼이 파산 신청을 하기 닷새 전인 9월10일 미네르바는 다음 아고라에 리먼 파산은 물론 ‘리먼 부도 → 미 증시 폭락 → 미 정부 재정 적자와 금융권 파멸 → 리먼 추가 구제금융 → 초장기 경기 침체’라는 중기적 시나리오까지 작성해 올렸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이 리먼의 구조요청을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일반인보다 몇 단계 앞서 내다본 예지력이 돋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진 지난 3월부터 다음 희생 타자로 리먼이 지목됐으며, 리먼은 그 뒤 시장에선 사실상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발언은 타이밍이 근접했을 뿐 새로운 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일본, 홍콩 등 외국계 증권사의 국제 인수와 파생상품 부문에서 수년간 일해온 ‘알파헌터’(필명)는 “당시 뉴스의 초점은 파산을 신청한 리먼이 아니라 뜻밖에 파산하도록 방치한 미국 정부였다”면서 “미네르바가 만약 이 부분까지 예측했다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올린 시나리오에 ‘추가 구제금융’이라는 단계가 있는 걸로 보아 그 역시 리먼이 실제 파산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이라는 점은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리먼 파산 신청은 예정된 수순일 뿐

미네르바의 예언자적 성가가 아고라 광장 밖으로 울려퍼진 때는 한국이 제2의 외환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보도된 ‘검은 10월’이었다. 환란의 비상 탈출구가 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한국은행의 10월30일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을 일찌감치 예견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합동 연차회의 개막을 약 일주일 앞둔 10월3일, 미네르바는 “이 회의에 참석하는 강만수 장관과 이성태 한은 총재의 달러 스와프가 거부당할 경우에 한국은 10월 하순부터 대대적인 역외 헤지 펀드의 추가 공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대통령 할아비라도 미국에 가서 긴급 달러 유동성 스와프 거래가 가능하도록 로비해야 한다”고 다급하게 외쳤다. 이 대목을 두고 한국방송 은 미네르바가 미 연준이 아닌 IMF와 스와프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하고, 따라서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10월9일 “이 모든 사태를 한 방에 해결할 올인 전략은 오로지 ‘미국 FRB 원-달러 통화 스와프’다”라고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미네르바의 스와프 협정 예견과 관련해 한 외국계 증권사 스와프 트레이더는 “미네르바가 당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던 재정부나 한국은행 쪽에 소식통이 있거나 외환시장 직접 참여자로부터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이고, 둘 다 아니라면 미네르바 자신이 외환시장 참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반면 태리연구소 최용식 소장은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추진은 두 달 전부터 외환시장에 떠돌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종합해보면, 미네르바의 이벤트성 예측은 개인의 신통력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판단력이 있으면 가능한 성질의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네르바도 자신이 예측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사항들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환율이나 스태그플레이션 등에 관한 미네르바의 예측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놓고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다음 아고라 미네르바 글 모음

다음 아고라 미네르바 글 모음

음모론자 시각에 강한 거부감

궁금한 것은 미네르바가 왜 5개월여에 걸쳐 무려 200여 편의 방대한 글을 인터넷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올렸는가라는 점이다. 이 점을 들어 미네르바를 외국계 투기세력과 결탁해 극단적 비관론을 유포하는 음모론자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미네르바는 “내가 외국인이라면 왜 여기(아고라)에 알려주겠나?”라고 반문하면서 음모론은 패망의 지름길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특히 “환율이 며칠 폭등하니까 여기에서 나라 망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진짜 문제”라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일부 네티즌들을 되레 꾸짖기도 했다. 지독한 비관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나는 경제 예측이라는 걸 한 적이 없고 다만 ‘극사실주의적’인 관점에서 1+1=2라고 가르쳐준 것밖에는 없다”고 답변한다. 미네르바의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인 ‘극사실주의’는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 같은 화면을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미네르바는 “거짓말로 내년에는 (경제가) 다 잘 풀릴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극사실주의라는 내 신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극사실주의자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기 때문에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어떻게 극사실주의가 비관론이 되는 것이냐”며 따져 묻는다.

미네르바의 첫 번째 키워드 ‘극사실주의’는 “이제 마음속에서 한국을 지운다”라는 화제의 글에서 두 번째 키워드인 ‘매트릭스’와 과격하게 만난다. 영화 가 아니라 를 인용하며 정교하게 짜맞추어진 어느 마을 안의 매트릭스 체계에 대한 주의를 환기한다. 그 문제제기는 “여태까지 조국이라는 이름하에 포장돼온 그 모든 것들이 환상이라는 걸 느끼면서 그 후에는 아무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참전해 총을 들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언문으로 이어진다. “피라미드 계급 체제가 더욱 견고해진 사회 매트릭스 안에서 절대다수가 사육당하고 있다”고 설파한 미네르바의 혁명성은 다음 메시지에서 절정에 이른다. “개소문이 말했지.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그의 매트릭스 혁파론은 세 번째 키워드인 ‘천민’의 자각을 촉구한다. “천민들이여, 눈을 떠라. 자신의 사회 계급적 위치를 재확인해보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과 솔직한 대화를 하라. 인간이 평등하다는 건 제도적 틀에 한정된 기본권이 평등하다는 것일 뿐이다. 사회적 계급이라는 견고한 틀을 깨고 나올 수 없다면 다른 돌파구를 찾는 게 유일한 길이다.”

문체와 비유 뛰어난 연금술사

이쯤 되면 수사 운운했던 당국이 다시 군침을 삼킬 만하다. 하지만 ‘불온한 혁명가’ 미네르바의 실천적 지향은 그 기대를 배신한다. 천민의 생활금융 컨설턴트 역할이 그것이다. 그는 동사무소 무료 시설 이용, 마트 할인 시간 안내, 공짜 쿠폰 활용 방법 등 천민들이 비상경제 체제 아래서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비책들을 자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정경유착으로 형성된 한국적 천민자본주의를 ‘천민을 등쳐먹는 경제’라고 되받아치는 미네르바는 진정한 언어의 연금술사다. 미네르바는 11월18일 마지막 글에서 “이제 조만간 대대적인 애국주의 광풍이 몰아칠 것이다. 이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언제나 리바이벌돼온 교과서적인 양떼몰이 이론”이라고 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그가 광장을 떠난 지금, 대통령의 주식 매수 권유 발언, 외화 모으기 운동 제안, 국익에 반하는 개인의 ‘마이너스 베팅’에 대한 훈계 등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네르바는 영원한 예언가다.



미네르바 묵시록에 나오는 은어 해석
‘고구마 장수와 미자’ 불륜 혹은 로맨스?


미네르바의 묵시록엔 ‘은어’들이 출몰한다. 주연 배우들의 정체와 삼각관계를 추적해보자.
먼저 ‘노란 토끼’다. “노란 토끼가 시작된 거야. 내년 꽃 피는 봄이 되면 알 거야.” 노란색은 황인종이고 토끼는 한반도를 상징하므로 노란 토끼는 한국 금융시장을 교란하려는 아시아계 자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대해선 미네르바 본인이 이미 답변했다. “노란 토끼란 환투기 세력으로, 외양은 미국 헤지펀드지만 배후엔 일본의 엔 캐리 자본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일본이 IMF 자금 지원과 CD 매입을 통해 한국 경제를 내년 3월까지 편입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살벌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미네르바 자신을 지칭하는 ‘고구마 파는 노인’은 뭐하는 사람일까? “진짜 고구마 파는 노인네라니깐 그러네. 지금 장사하는 곳이 동네에 소문나서 재무 상담을 겸업하느라 힘들어.” 외환 업계에서 고구마는 달러로 통한다고 한다. 그러면 ‘군고구마 장수’는 외환딜러가 된다. 그래서 고구마 리어카를 끄는 미네르바도 외환딜러다. 물론 글의 표현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변수는 그의 고객인 ‘미자’다. “오늘 오후에 고구마 사러 온 색시야. 이름 물어보니 미자래. 최미자. 39살 최미자.” 처음엔 일상의 에피소드를 그리기 위한 조연으로만 생각됐다. 그런데 등장 횟수가 잦아지면서 비중이 높아지자 ‘미자’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먼저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인 미국의 조지 소로스를 암시한다는 설이다. 미자는 ‘미국 자본’의 약칭일 수 있으며, 소로스가 운용해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린 퀀텀 펀드는 창설(1969년)된 지 올해가 39년으로 미자씨의 나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최씨 성에 대해선 ‘최고 미국 자본’(최미자)의 약어라는 그럴싸한 해몽이 나왔다. 반면, 미자가 국내 특정 자산운용사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나이는 그 자산운용사의 펀드 설정 규모인 39조원를 의미하며 최씨 성도 그 운용사의 최고위급 간부의 성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미네르바가 쓴 ‘미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파트(주식)값을 내려서 팔고 싶은데 부녀회(정부)에서 막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보유하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부의 증시 안정화 정책 때문에 주식을 팔지 못하고 있는 여성이 그 운용사라는 것이다. “미자가 이혼하면 안 된다. 미자가 잘살아야 할 텐데. 이 집구석도 남편이 주식을 잘못 꼬질러서 문제가 터진 집이거든.”
미자가 소로스라면 노란 토끼의 실체와 맞아떨어진다. 엔화를 빌려와 원화를 공격하는 미국 헤지펀드다. 이때 노인은 미자에게 고구마를 팔면 안 된다. 미자가 국내 운용사라면 노인은 고구마를 싸게 팔아도 된다.
미자가 도대체 누구기에 고구마 장수는 ‘아고라’를 떠났을까? 그는 11월 “이제 찾지 마세요. 이건 제가 짊어질 십자가입니다. 진짜 이제 병원 요양 치료를 해야 합니다. 끄집어내면 싱가포르나 그런 쪽의 외국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그냥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2진수 데이터로만 만나야 합니다. 판도라 상자를 열면 모든 게 종결된다는 것 또한 인생의 교훈입니다”라는 알 듯 말 듯한 글을 남겼다. 그는 9월 위기설이 막 지나가자 “전 이제 본토로 꺼지겠습니다”라는 작별 인사를 한 전력도 있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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