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사장 임명을 둘러싸고 정권과 노조가 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공기업들이 주요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YTN의 소유구조 특성상 사장 선임에 청와대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5년 전 노무현 정부 초기에 정권에서 낙점한 사장 후보에 대해 노조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사장에 재선임된 지 1년이 채 안 된 백인호 사장이 사퇴 뜻을 밝혔다. 이와 거의 동시에 한국방송과 경인방송을 거친 표철수(58·현 경기도 정무부지사)씨가 새 사장으로 올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청와대에서 낙점했다는 것이다. 표철수씨는 이해성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부산고 선배였다. 실제로 한전KDN 등 대주주들은 표씨를 새 사장 후보로 공론화했다. 그러자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장균 노조위원장은 2003년 3월 사장후보 선임을 위해 열린 이사회 회의장에 들어가 “노사가 하나 되어 꾸려나가도 어려운 상황인데, 사원들이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을 사장으로 선임하면 회사가 어떻게 되겠나. 회사를 생각해달라”며 항의했고, 이사회 쪽은 일부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 우리끼리 이야기해볼 기회를 달라”며 무마에 나섰다. 결국 이날 이사회에서는 사장 후보 추천 안건을 추인하는 대신 사장 후보 추천위를 꾸리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사장 후보 추천위가 꾸려졌고 대주주는 애초 사장으로 밀었던 표철수씨를, 노조는 전윤철 전 경제부총리와 성유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표완수 전 경인방송 사장 등 3명을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회사 간부들도 또 다른 2명을 추천했다. 이들 6명 가운데서 새 사장이 결정될 상황에서 갑작스레 변수가 생겼다. 표철수 후보가 자진 사퇴한 것이다. 서동구 당시 한국방송 사장이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임명된 지 열흘 만에 사퇴한 즈음이었다. 결국 1980년 해직기자 출신인 표완수(61·현 회장) 후보가 새 사장이 됐다.
5년 전엔 한국방송이 먼저였다면 이번에는 YTN이 먼저다. 그리고 5년 전 한국방송에서 ‘낙하산 사장’이 스스로 사퇴하면서 YTN 낙하산 사장 문제까지 자연스레 해결됐다면 이번에는 튕겨낼 듯한 싸움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YTN에서 먼저 낙하산 사장 논란이 시작되더니 한국방송에서 ‘낙하산 사장’이 안착한 뒤까지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방송 사장이 열흘 만에 사퇴한 뒤다른 점은 그뿐이 아니다. 5년 전 YTN 노조를 이끌었던 우장균 기자는 “당시도 노조가 표철수 사장 내정자를 만나 모든 공약과 비전을 내걸고 구성원들에게 신임을 묻는 ‘끝장투표’를 비공식적으로 제안했는데, 사원총회에서 직접 설명할 기회를 주고 비노조원까지도 투표권을 준다는 조건을 달아 이를 받아들이더라”며 “‘끝장투표’ 제안도 거부하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지금의 구본홍씨와는 격이 달랐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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