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불교도대회 참여를 위한 상경길 분위기…“기껏 밀어줬는데 이렇게까지 하다니”
▣ 대구·청도·성주=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 8월26일 오후 만난 대구 동화사 총무국장 현관 스님의 얼굴엔 노기가 가득해 있었다. ‘스님답지 않게’ 심통이 난 표정이었다. “이런 보수적인 지역에서 불자들이 들고일어선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유신이나 5공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영남 지역이 불교가 강해요. 동화사 말고도 대구·경북에 교구 본사가 여럿인데, 여기 스님들도 다 ‘우리가 지도자를 잘못 선택했다. 방심했다가 당한 것이다’라는 분위기예요.”
“이명박 찍은 사람 물으면 대답 안한다”
정부 관계자들의 잇단 종교 편향 발언과 경찰의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수색 사건으로 불교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영남 지역 불교신자들의 움직임이 주목을 끌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에 기울어져 있는 이 지역 불심에 명백한 분화·이탈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서운함에 일종의 배신감 같은 정서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8월26일 오후에 찾은 경북 청도군 적천사에서는 스님과 40~50대 여성 신도 3~4명이 모여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한 말들을 나누고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50대 여성 신도는 “청와대고 어디고 불교신자라고 하면 차별하니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나는 다른 일 때문에 내일 서울(범불교도대회)에는 못 가지만 불자들은 다 올라가 힘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도들과 다음날 서울행을 준비 중이던 적천사 주지 정광(54) 스님은 “대한민국은 다종교 국가인데 한곳으로 편향하는 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정치는 국민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과제이고 어떻게든 국민들 숨통을 틔워주는 것일 텐데, 지금 정부는 이걸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이들일수록 섭섭함 또는 배신감을 강하게 토로했다. 경북 성주군 감응사에서 만난 주지 정혜(51) 스님은 “사실 영남권에서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작업을 많이 했고, (이 대통령 고향인) 포항 쪽 사찰들에서는 스님들 상당수가 이 대통령 선거운동도 했다”며 “솔직히 나도 이 대통령을 찍었는데, 누구건 대통령이 되면 정직하고 바르게 해야 하는데 이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범불교도대회에 참석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올라갈 것”이라고 답한 정혜 스님은 “대통령이 카리스마를 가지고 국정을 운용해나갈 필요도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초반에 국민을 너무 무시하고 국민과 부딪치는 쪽으로 나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화사에서 만난 자명(60) 포교사(조계종 총무원과 포교원에서 인정하는 불교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신도들이 소정의 시험이나 논문을 거쳐 ‘포교사’ 자격을 인정받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포교 활동을 한다)는 “불교도들은 이 대통령에게 배신당했다는 말도 하는데, 영남 지역에서는 불교 쪽에서 무슨 단체까지 만들어가며 이 대통령을 많이 지지해줬기 때문”이라며 “‘기껏 밀어줬더니 이렇게까지 하다니’라며 분개하는 것이 영남 불교신자들의 정서”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누구를 찍었냐’는 질문에 “꼭 얘기해야 하냐”며 멋쩍어했다. 한동기 동화사 총무과장은 “지난 대선 때 대구 지역에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78%가 나왔다. 그렇다면 불자들도 그 정도 찍었을 텐데 요새는 신도들 모였을 때 ‘여기 이명박 찍은 사람 누구 있냐’고 물으면 아무도 답을 안 한다. 창피한 일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공은 대통령에게
영남 지역의 심상치 않은 불심은 8월27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에서 현실화됐다. 애초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영남 지역의 보수성을 감안해 동화사와 그 말사에서 관광버스 30대가량이 상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날 실제로 서울에 온 관광버스는 모두 57대였다. 주최 쪽에서 예측한 것보다 두 배 가까인 많은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정권 규탄 집회에 참가한 것이다. 동화사는 조계종 제9교구본사로 산하에 110개가량의 말사가 있으며, 대구·경북 지역에는 동화사 말고도 은혜사와 직지사, 불국사, 고운사 등의 교구본사가 있다.
이처럼 반발하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정서 속에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존재일까? 8월27일 오전 범불교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전영권(49) 대구시 동구의회 의원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놨다.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 때 선거운동 하느라 대구 근처 절이란 절은 다 돌아다녔다. 그런데 스님들 10명이면 8~9명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좋아하지 이명박 대통령을 좋게 보지 않더라. 우선 ‘이 대통령은 얼굴 상이 대통령상이 아니다’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니까, 영남지역 스님들 대부분이 이 대통령을 찍어줬다. 이런 상황이었는데 종교차별 얘기가 나오니 스님들 속이 어떻겠나.”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대구 지역 불교대책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웬만해서는 스님들 마음 돌려세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범불교도대회 이후 영남 지역 스님들과 불교신자들이 적극적인 정권 반대 운동에 나서게 될지는 미지수다. 한평생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민정당, 민자당 등만 지지해온 이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여기에 반대하며 다른 당을 지지하는 일은 생각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 쪽이 빨리 답을 내놓고 갈등을 봉합하고 넘어갔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도 많았다. 자명 포교사는 “어린아이도 부모가 다른 형제만 편애하면 울지 않나. 범불교도대회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불자들의 의식을 깨운 것”
경위야 어찌됐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교도들 사이에서 ‘정치권과의 관계맺기’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박광서 공동대표(서강대 물리학과 교수)가 바라보는 이번 사건의 성격은 다음과 같았다.
“기독교는 정치적 이념보다 종교적 신념을 앞세우는 종교여서 서구에서도 사회 또는 과학과 갈등을 많이 겪었다. 이에 반해 불교는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이념은 별개라고 보고, 정치적 이념을 개개인에게 맡겨버리는 종교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불교에서 정치적 이념과 관계없이 종교가 건강하게 유지·발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대통령이 가시적인 조처를 내놓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도 있다. 범불교도대회야 일회성이겠지만, 종교차별감시단 같은 상설조직을 만들고 적극적인 활동에 나선다면 그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이제 스님들이 황당한 종교 차별 사례들(표 참조)을 하나하나씩 얘기하기 시작하면 일반 신도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정치권이 조직화되지 않았던 ‘의식’들을 깨운 것이다.”
그는 “적어도 선출직 공직자들은 공직자 신분인 동안에는 종교를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이번에는 대통령이 사과하고 정치 중립처럼 공무원의 종교 중립도 법제화돼야 하는데, (현 정부 아래서) 이런 게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간 상황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 참회 △종교차별 금지 법안 마련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등 요구조건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이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추석 뒤부터 지역별로 불교도대회를 열 방침임을 밝힌 상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아직 이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을 검토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지역별 불교도대회가 열리는 상황이 된다면 첫 대회는 영남권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영남의 불심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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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을 계기로 불교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8월27일 범불교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대구 팔공산 아미사 주지 덕현 스님의 말이 대표적이다.
“이건 노무현 대통령 때보다도 더하다. 정치력 부재에, 대외적 여건이 나쁘다고는 하지만 경제도 못 살리고 있잖나.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로 여기저기에 낙하산 인사나 하고, 공항공사 민영화한다더니 (인수사로 거론되는 회사와 관련된) 조카 이야기가 나오고…. 또 KBS 이사회고, 방통위원장이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잖나. 사실 갓난아이도 코웃음칠 일이다.”
불교계 전체적으로 가장 크게 문제의식을 갖는 지점은 현 정부의 역사관이다. 정부와 뉴라이트, 보수 기독교 교단 등이 어우러져 함께 추진한 건국절 기념과 이승만 전 대통령 띄우기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조계종과 천태종 등 범불교 종단들이 공동으로 꾸린 범불교도대회 봉행위원회의 유인물을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이 유인물 4쪽에는 ‘선교 정치인들이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승만 장로를 국조(國祖)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여기서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자발적 공창이라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켰던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느닷없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을 했다. 그 뒤 한기총, 뉴라이트 등 이명박 대통령 지지 기반에서 꾸준히 물밑 작업을 해왔는데 올해 본격화됐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 글은 특히 현 정권과 뉴라이트 등이 이승만 전 대통령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로 △이승만 장로가 내각 21명 가운데 9명을 목사 2명 등 개신교 신자로 채운 선교 정치인의 원조라는 점 △친일 문제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개신교가 해방 이전의 시간을 역사적으로 지우고 싶어하는 점 △궁극적으로 개천절과 3·1절을 없애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점 등을 들고있다. 보수 기독교단과도 각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과 극우보수 개신교, 뉴라이트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유인물 2~3쪽에는 안중근·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인사들과 세계무형문화유산인 강릉 단오제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극우보수 개신교 쪽이 이 대통령과 연결돼 있는 그림(사진)까지 실렸다. ‘뉴라이트가 지향하는 미래상은 저와 똑같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한 유인물은 “실용정부 집권 6개월간 종교차별이 지난 10년간보다 많다니, 당신은 대한민국 대통령입니까? 개신교 공화국 대통령입니까”라고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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