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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경영’은 정말 바뀔 것인가

등록 2008-07-24 00:00 수정 2020-05-02 04:25

전문 경영인 체제 확립·개별 기업 독자성 실현해야…이재용 전무 복귀에 관심 집중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회실 해체로 이른바 ‘뉴 삼성’이라 불리는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섰다. 뉴 삼성의 고민은 ‘리더십 부재’와 ‘미래 먹을거리’, ‘삼성 브랜드’ 등 세 가지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7월 초 첫 사장단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를 세 가지 위기라고 강조했다.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으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전면에 나서게 됐지만 과연 계열사 CEO들이 재벌 총수처럼 적극적으로 새로운 먹을거리 찾기 등에 나서겠냐는 안팎의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이현석 상공회의소 상무는 “그룹을 총괄하고 조정·지휘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브랜드관리위원회의 역할은?

관리 위주의 삼성 조직문화가 리더십 부재의 위기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전 회장의 절대적 권한을 인정하는 경영 시스템이 결국 창조보다는 관리를 중시하고, 위험과 파격을 싫어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한 민간 연구소 연구원은 “실제 삼성에서는 계열사 임원이 되어도 사소한 의사결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권한 이양을 통해 말단에서부터 창조적 아이디어가 올라오도록 만드는 글로벌 기업들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재벌그룹들이 오너 회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구조가 강하다. 이 때문에 2인자 또는 그 이하의 경우 철저한 파벌 구조를 띠고 있다. 오너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날 때 아노미 현상과 함께 치열한 내부 파벌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제왕적 경영구조에 젖은 관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경영권 승계만이 질서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이 퍼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리더십 부재는 미래 먹을거리 사업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신속하게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야 할 신수종 사업의 특성상 오너가 사라져 성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새로운 먹을거리 사업은 리스크가 매우 높아 계열사 CEO가 실패에 대한 문책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미래에셋 리서치센터장도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전략적 장기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반도체와 같은 장기 수종 사업 투자결정이 늦춰지게 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의사결정 권한을 계열사로 분산하되 그룹의 중요한 사항은 사장단회의를 강화해 보완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제왕적 경영구조와 초일류 기업이 공존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실질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재벌 구조를 탈피해 네트워크형 소그룹으로 분할하거나 개별 기업 경영의 독자성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분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의 리더십 문제는 자연스레 이재용 전무 복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전문가마다 시각차를 보인다. 김성희 소장은 “복귀 자체가 회장 승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소그룹별 또는 기업별 전문경영인 체제가 갖춰질 때까지 복귀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은 “재판이 끝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복귀해야 한다. 해외 근신은 의미 없는 이미지메이킹 작업일 뿐이다. 현업에 복귀해 리스크가 있으나 반드시 필요한 프로젝트에 뛰어들어야 한다. 과거 e삼성과 같은, 자신의 일을 벌여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경영 능력을 스스로 입증해, 주주들이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위험 없이 무임승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현석 상무는 “몇 년이라고 시간을 정하기는 어렵고 그룹의 사정과 여건에 따라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 사람들은 브랜드관리위원회를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삼성은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면서 브랜드관리위원회와 투자조정위원회를 만들었다. 일단 삼성은 브랜드관리위원회가 삼성 브랜드를 통합 관리하고 계열사 간 마케팅 예산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는 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브랜드관리위원회를 이재용 전무를 뒷받침해주는 조직으로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브랜드관리위원들의 면면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1970년대 말 입사자로, 50대 ‘젊은 피’들이다. 브랜드관리위원회의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과 박준형 삼성증권 사장은 53년생(55살)으로 동갑내기 금융통이다. ‘미래 먹을거리 발굴’이라는 책임을 짊어진 임형규(55) 삼성전자 신사업팀장과 오창석(58) 삼성테크윈 사장도 50대다. 김인(59) 삼성SDS 사장, 최지성(57)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 등도 그룹 내에서 대표적으로 이재용 전무 쪽 사람으로 꼽히는 인사들이다.

리더십 부재라는 환경 속에서 삼성이 이미지를 개선하고 나아갈 길은 무엇일까? 브랜드가치 조사기관인 인터브랜드의 2003년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은 20위 안으로 처음 진입했지만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삼성은 2002년 브랜드가치 83억달러를 인정받아 세계 기업 브랜드 중 34위였지만 2003년 108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아 25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하지만 2004년부터 4년 동안 20~21위권에서 맴돌았다.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는 길

오히려 최근에는 특검 수사로 브랜드 이미지는 더 나빠진 것으로 삼성 내부에선 보고 있다. 삼성이 혹한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익광고를 내보내는 것도 이같은 이미지 개선 작업의 일환이다. 삼성은 단기적으로 브랜드관리위원회를 통해 삼성특검으로 악화된 이미지 개선과 국내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전략을 우선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이미지 개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원재 소장은 “신뢰가 자본이 되는 시대가 오는 만큼, 한국사회 및 국제사회의 각종 이해관계자들이 인정하는 형태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등의 가치를 담고 있는 유엔글로벌콤팩트 가입과 결사의 자유(노동조합) 인정 선언은 인상적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국제사회와 한국사회의 신뢰를 한번에 크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현석 상무는 삼성이 앞으로 브랜드 관리를 위해 가장 신경써야 하는 것으로 “정경 유착, 편법 상속, 비자금 조성 및 관리 등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벗어나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첨단기술 개발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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