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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분노 지수 올라가며 시민들의 논쟁도 거세져… 생활정치의 다른 영역으로 이어질 방법 찾아야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밀고 들어갈 때 버티는 놈은 무조건 체포해.”

6월25일 저녁 7시 서울 효자로 경복궁 지하철역 근처에서 한 경찰이 무전기에 내뱉은 말이다. 인도에 있던 구봉성(33)씨는 두 귀를 의심했다. 차도에 있던 전경들이 인도로 밀고 들어왔다. 시민들은 “인도까지 왜 점거하냐” “우리더러 도로 불법 점거라고 불법성 운운하더니, 너희는 왜 인도를 막는 거냐”고 외치며 몸으로 버텼다. 한 시민이 열받은 김에 담배 연기를 전경을 향해 내뿜었다. 곧바로 “채증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몇몇 여성들이 “그래도 수고한다. 전경들 덥겠다”며 가지고 있던 종이로 전경에게 부채질을 해줬다. 경찰은 이번에도 “채증해”라는 말과 함께 카메라를 들이댔다.

“계엄 흉내내는 거야?” “정부 무개념”

이날 밤 12시가 좀 지난 시각부터는 광화문 사거리 금강제화 앞, 새문안교회 주차장 뒤편 등에서 살수차가 동원돼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살수차는 지난 6월1일 새벽 경찰의 강경진압 논란을 부른 뒤 다시 살수차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바로 전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경한 법무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각료들이 엄정 대처 방침으로 즉각 화답했다. 그로부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살수차가 등장한 것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둘러싼 곳곳에서 살수차·소화기·짱돌까지 ‘진압 3종 세트’가 거리를 채웠다. “계엄 흉내내는 거야?” 시민들은 지나가면서 ‘엄혹한’ 거리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굴하지 않고 ‘맞장’ 떴다. 한번 물을 뿌리기 시작하면 10여 분은 계속되는 살수차 호스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맞섰다. 수원에서 올라온 박지영(34)씨는 우비를 입고 살수차의 물이 멈출 때까지 여러 사람들과 팔을 겯고 자리를 지켰다. “도망가는 것은 정부가 원하는 거잖아요.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 않아요. 물쯤이야, 좀 참죠, 뭐.” 살수차에서 뿜어져나오던 물이 멈추자 한숨 돌린 박씨가 머리를 털며 말했다. “진짜 오늘은 올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아기 엄마도 연행했다잖아요. 12살 초등학생도 연행하고, 거기다가 국회의원도 연행하고. 정부가 요샛말로 무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살수차가 텅 빈 물탱크를 채울 동안, 박씨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경찰의 강경 대처에 따라 시민들의 분노 지수도 올라가고 있다. 공사에 다니는 오아무개(31)씨는 6월25일 세 번째 거리로 나왔다. 오씨가 말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청계천이나 버스 전용차선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추진해왔던 정책에 대해서 찬성했기 때문에 그를 뽑았다. 그런데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사안에서 이명박 정부는 ‘막가파’ 식으로 귀를 닫고 대응한다. 정부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 두렵다.” 두 달 가까이 꾸준히 촛불집회에 참석해온 직장인 오성진(27)씨는 “이제 시위 양상이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대책이라고 내놓은 추가협상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면서, 추가협상 끝나자마자 불법 폭력시위를 엄정 대처한다니 뒷골이 확 땅겼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시민들도 저항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분노의 지수가 올라가면서 시민들의 논쟁은 거세졌다. 25일엔 시민에게 전경이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경이 방패로 시민을 때리려고 하면, 일거에 여러 명의 시민이 달려들어 전경을 저지하고 끌어내기도 했다. 대열에서 이탈된 전경을 둘러싼 시민은 “전경을 고이 돌려보내자” “연행자와 바꾸자” 논쟁을 벌였다. 경찰 차벽에 대항하는 모래주머니를 쌓을 때도 “쌓자” “말자” 논란이 일고, 비탈진 새문안교회 뒷길에서 전경버스를 끌어낼 때도 “위험하다. 끌어내면 안 된다. 이제 버스 끌어내기는 그만하자”는 주장과 “끌어내서 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촛불집회에 모여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광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인권선언을 만들어야”

더 격하고 뜨거워진 촛불의 미래는 어떨까.

배성인 한신대 연구교수는 “이런 다양한 논쟁은 촛불집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종다양한 배경과 기반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며 “이 촛불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도 26일 제주도에서 열린 2008 제주인권학술회의에서 “촛불집회의 시민들은 새로운 정치 주체의 출현이기보다는 맥락에 따라서 달라지는 다의적 주체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촛불집회에 모인 대중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적 낭만화를 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사람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0교시, 영어몰입교육’ 등에 대한 문제의식, 민영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됐다”며 “그간 투기자본이나 특정 기업을 감시하는 소비자 운동이 소비자 운동단체의 대리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이번엔 시민들 스스로가 조·중·동 등 언론기업을 감시하는 자기주체적 소비운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이번 촛불의 의미를 평가했다. 이러한 자기주체성이 생활정치의 다른 영역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촛불의 열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시로 보자면 대표적인 것이 오는 7월30일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다. 서울시교육감은 6조원이 넘는 예산 운용권, 1200개가 넘는 초·중·고 교장 임명권, 교원 인사권, 교육청 직원 인사권 등을 갖고 있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현재 이명박 정부가 내건 교육 정책의 방향과 같은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후보로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이 교육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찾아내고 이를 선거에서 구현한다면 촛불의 열정이 생활정치로 이어지는 좋은 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단체들은 촛불이 이어지기 위해 헌법적 가치의 재발견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모두 헌법적 권리다. 국가로부터 건강을 보장받을 건강권(헌법 36조), 모두가 공평하게 교육받을 교육권(헌법 31조), 인간다운 삶을 운영하기 위해 전기·수도·의료서비스 등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권리(헌법 34조) 등이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지금 요구되고 있는 권리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헌법적 권리인데, 이 권리들이 침해되자 모두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며 “이 촛불이 무색하지 않으려면, 세계인권선언처럼 거리에 모인 모든 시민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꼭 보장해야 할 것들을 꼼꼼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한 ‘시민인권선언’을 만들고 이에 대해 도덕적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 모든 것이 특정 단체의 주도 아래서 이루어진다면 의미가 없고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촛불의 동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라고 거리에서 질문하면 시민들은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6월25일 새벽 1시. 서점에서 일하는 강아무개(31·여)씨는 시민들과 전경들이 돌을 주고받는 투석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실 몸은 지친다. 마음도 지쳐간다. 한동안 안 나왔었다. 재협상에 기대를 걸었다. 비도 오고 마음을 쉬는 중이었다. 그런데 협상문도 공개하지 않고 관보 게재를 강행한다니, 좌절스럽다. 사람들이 줄었다고 민심이 줄어든 것은 아닌데, 정부의 행태를 보고 아찔한 마음에 나왔다”고 말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여성은 “도서관에 오는 엄마들의 이야기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전에 촛불집회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던 주부들도 “한번 나가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애들이 가고 싶어하는데 데리고 가볼까” 등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배성인 교수는 “촛불이 두 달째 광화문 차량을 돌아가게 하고 있지만, 불평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며 “실제 촛불을 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이 촛불을 지지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동력이 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촛불 동력 떨어졌다고 보기 힘들어

촛불은 두 달째 의연히 불을 밝히고 있다. 국민들은 매일같이 온·오프라인 광장을 통해 마음에 촛불을 켜고 건강권, 교육권 등 기본적인 권리와 함께 자신이 뽑은 대표가 자신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할 참정권을 요구해왔다. 촛불이 쉽게 꺼질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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