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만의 반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한나라당 중진 “촛불을 하나님이 주신 시험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 높다”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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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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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6월24일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하라고 말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다음날 쇠고기 장관고시를 강행했다. ‘공권력이 있으라’ 했다. 시민들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앞 도로를 점거했다. 경찰은 20여 명을 연행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현역 야당 의원도 연행됐다. 이날 저녁 25일 만에 물대포가 다시 등장했다. 경찰은 토끼몰이식 진압을 시작했다. 통합민주당의 김재윤 의원이 급히 달려왔다. 항의했다. 경찰 간부는 “국회의원이라고 (경찰에) 뭔 할 말이 있느냐”고 눈을 부릅떴다.
6월27일 새벽 1시10분께는 서울 청계광장 인근 도로에서 민주당 김세웅·안민석·최규성 의원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의원들에게도 소화기 분말을 뿌렸다. 안민석 의원은 끌려다녔다. 경찰 지휘관은 “의원이면 다냐”고 소리질렀다. 국회의원들이 경찰에게 맞고 연행되는 것은 5공화국 이후 처음이다.
조·중·동과 경제5단체 요구에 대응
이날 낮 어청수 경찰청장은 경찰청 출입기자들과 만났다. 어 청장은 “시위 진압 때 안전을 최고로 생각하는데, 대책회의는 강경 진압이라고 생각한다”며 “어쩔 땐 80년대식 강경 진압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80년대식(강경 진압)을 몰라서 그렇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농담이어도 섬뜩하다.
앞서 100만 명 촛불 대행진이 있던 6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만의 하나라도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재협상 시한으로 정한 6월20일을 하루 앞두고는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과 <아침이슬>을 들으며 국민들을 편안히 모시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했다”고 했다.
닷새 만의 반전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한나라당의 한 중진급 인사는 “조·중·동이 연일 폭력시위에 엄중하게 대처해 법과 질서를 세우라고 요구하고, 경제5단체도 법 질서 확립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영향을 받았다”며 “이들이 지지층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에 이들의 요구에 맞춰 움직이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여론의 추이가 촛불을 꺼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론의 추이를 잘 살펴야 하는데, 여론이 바뀌고 있는 것을 감안해 나온 발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부속 여의도연구소가 6월22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촛불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37.6%에 ‘그만둬야 한다’는 의견이 54.1%로 나왔다. 거의 매주 이뤄지는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서 촛불을 끄자는 의견이 높은 것은 처음이었다. 때마침 <중앙선데이>가 6월22일치로 ‘촛불집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58.2%로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38.1%)보다 높았다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이를 고무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민적인 촛불 피로의 누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유가 급등과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는 것도 한몫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지만, 경제위기가 이명박 대통령을 살리게 될 것”이라며 “경제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불안감을 느낀 다수가 결국 국정 안정과 법질서 강화를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제2의 IMF를 연일 강조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반장’이란 별명을 얻은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했다. 홍 원내대표는 평소 ‘경제는 진보적으로, 사회문제는 보수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6월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에서도 항시 시위가 있지만, 경찰이 설정한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용서하지 않는다”며 “한국의 촛불시위는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5년 내내 방치하면 서울광장은 법질서를 벗어난 해방구가 된다”고 말했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도 그는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주장은 국민 건강을 빙자한 반미에 있다”며 “대책회의의 핵심 세력은 골수 반미단체인 진보연대”라고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그날 오후 경찰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등 18개 단체들의 천막을 강제 철거했다.

△ 6월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 전쟁 기념식에서 참전군인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님 힘내세요’라는 중간의 손팻말이 눈에 띈다. (사진/ 연합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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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 최고 단계
6월24일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청와대에서는 말을 삼가고, 한나라당에서 주도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는 대신, 부담도 나눠지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현재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국정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청와대 수석이 전원 교체되고, 내각도 사실상 언제 교체될지 모르는 과도기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원내대표가 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정치는 제가, 정책은 임태희 의장이 하겠다”며 “대통령은 통치에 집중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홍준표 원내대표는 한승수 총리, 정정길 대통령 실장과,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청와대의 각 수석들과 핫라인을 구축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잦은 독대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여러 차례 “이 대통령과 만나기도 하고 전화도 한다”며 “그때마다 국민들의 마음을 바르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태초의 말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결국 특별 기자회견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말들에 진정성이 없었음이 드러난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촛불집회를 보며 교훈을 얻었다는 정황보다 상황 인식에 변함이 없다는 증거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체제를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당·내각 인사가 대표적이다.
이준한 교수는 “만약 한승수 총리가 유임되고 7월6일에 있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관리형이라는 박희태 전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허수아비 총리’와 ‘허수아비 당대표’ 체제를 갖추게 된다”며 “이럴 경우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최고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상황에서 내각 개편은 한승수 총리는 유임되고, 그간 문제를 빚어온 장관 3~4명을 교체하는 중폭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지도부 경선 구도에서는 박희태 전 의원이 정몽준 최고위원과 확고한 2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정정길 대통령 실장의 임명도 이명박 대통령의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보다는 ‘부리기 편한’ 인물을 택한 결과라는 것이 한나라당 내의 비판적인 견해다. 친박 계열의 한 여당 의원은 “정정길 실장도 대통령과 ‘6·3동지회’ 출신으로, 결국 인사와 국정은 ‘아는 사람끼리’ 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으로 돌아올 것이란 진단이다.
대통령학 전공인 함성득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직후에 통치라는 행위와 자신의 집권 능력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졌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서도 아직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사진 오른쪽)가 6월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당내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을 임태희 정책위원장이 유심히 듣고 있다.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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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거부와 돌파의 대상
이명박 대통령은 왜 촛불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한나라당의 한 중진급 인사는 이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광화문 앞을 가득 메운 촛불을 하나님이 주신 ‘고난과 시험’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개신교적인 교리에서 보면,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니 감내해야 하지만, 결국 이를 이겨내고 승리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신교적 교리에서 보면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선은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다”며 “개신교 장로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을 선의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보면 촛불의 정체는 ‘사탄’이다. ‘악’이다. 이렇게 인식할 경우 촛불은 교훈의 대상이 아니라, 거부와 돌파의 대상이다. 역시 독실한 보수 개신교도인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한때 북한과 이란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로 인한 국제적 갈등을 선과 악의 대결로 인식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공교롭게도 추부길 목사(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는 6월5일 한국미래포럼 창립 2주년 감사예배에서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발언했다. 추 비서관은 이 연설에서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이들을 “과장과 거짓으로 무장한 세력”이라며 “이들은 과장과 거짓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의심과 분노를 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중진급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발언을 가지고 추부길 비서관을 문책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추부길 비서관은 6월23일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사탄 발언’과의 연관성을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추 비서관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등 정식 홍보라인과 갈등이 많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추 비서관의 사직을 결정했다기보다는 이 대변인 등의 압력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6월25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혁 과제를 한꺼번에 밀고 나가는 데는 무리와 부담이 따르는 만큼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해 치밀하고 착실하게 추진해야 하며, 결론적으로 개혁의 후퇴는 있을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회의 결과를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개혁은 후퇴 없다.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바뀐 것은 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다시 시작되려는 정권의 독주를 우려하고 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여론조사에서 촛불집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하지만, 한국방송 6월24일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50.8% 대 43.5%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며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의견은 28.1%에 ‘안전하지 않다’는 68.1%로 큰 격차를 보였다”고 말했다. <한겨레>의 같은 날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산 쇠고기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비율이 65.5%에 이르렀다. 추가 협상에도 불구하고, 정부 발표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숭례문 꼴 날 수도
한귀영 실장은 “숭례문 방화사건 당시 소방당국은 불씨가 가득한 내부는 그냥 두고 기왓장에만 물을 쏘다가 결국 전소시킨 적이 있다”며 “지금도 촛불집회라는 기왓장에 집중하다가는 쇠고기 불신 때문에 불길이 다시 살아나 기둥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다시 강화하는 것이 지금은 좋을지 모르지만, 결국 모든 책임의 화살을 대통령 본인에게 돌리는 상황을 다시 초래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권력을 나누고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결국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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