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이후 ‘친사용자’ 정책 드러내… ‘대정부 100대 요구안’ 발표한 민주노총, 공공부문에서 정부와 대립 격화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3부- 경제의 역습]
지난 대선 기간에 이명박 당시 후보는 노동정책이라고 할 만한 내용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노동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대응이란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다만 ‘법과 원칙’을 앞세우면서 “노사관계는 당사자 해결이 원칙”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그런데 당선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노총과 사전에 약속한 간담회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노동’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지난 5월1일 노동절을 즈음해 ‘친사용자’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 구상이 이제야 진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장관은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를 과보호한다”거나 “임금교섭을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해야 한다. 정리해고가 현행 법제도하에서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비정규직법과 관련해 기간제 상한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파견 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공공부문 사유화, 강하게 밀 것”
노동계는 즉각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한 일방적인 노동 희생 정책”이라며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2∼3년에 한 번 임금교섭을 해야 한다는 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이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라며 “임·단협은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으로, 이를 2∼3년에 한 번 하자는 얘기는 노조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고, 농민에게 3년에 한 번 농사를 지으라는 황당한 얘기와 같다”고 반발했다.
특히 5월6일 민주노총은 ‘대정부 100대 요구안’을 발표하고 한승수 국무총리를 상대로 교섭을 촉구했다. 노동계가 국무총리한테 교섭을 제의한 건 사상 처음이다. 이 요구안은 △비정규직법 개정을 통한 차별 해소와 비정규직 감축 △일방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중단 △물가 불안 및 의료·교육·보육·주거·노후 등 5대 민생고 해결 △공공부문 사유화·구조조정 중단 △언론과 금융의 공공성 강화 △대운하 백지화 등 8가지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교섭안에는 또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백지화’도 포함돼 있다. 민주노총은 5월16일에 첫 교섭을 갖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이 대정부 요구안은 정치적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다. 이석행 민주노총위원장은 “정부가 교섭 요구를 무시하고 일방적 ‘시장독재’를 고집할 경우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파업을 하는 등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총파업에 대비해 여론을 노동계에 유리한 쪽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과연 이명박 정부와 노동계는 올해 대규모 충돌을 빚게 될까? 이번 대정부 요구안은 각 업종별·산업별 교섭 의제를 총망라하고 있다. 즉, 이명박 정부 들어 모든 분야에서 시장주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민영화 정책이 강도 높게 추진되고 있는 데 대한 노동계의 대규모 저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과 기득권 세력을 위한 시장화·사유화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며 “힘의 논리가 중요하다. 힘이 있으면 그만큼 총파업은 성공할 수 있다. (큰 싸움을 앞두고) 현장 조합원 조직화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와 노동계가 출범 첫해부터 대규모 충돌을 빚을 경우 싸움은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에서 가장 격화될 공산이 크다.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친기업’과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하는 공공부문 민영화와 대규모 구조조정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상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정책기획위원장은 “과거 정부에서도 그랬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이 더욱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 당초 올해 공공부문 민영화 일정이 제시되고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공공부문 축소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또 “‘강부자’ 내각에다 쇠고기 협상 등으로 인해 이명박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희생양으로 공공부문의 사유화를 더 강하고 빠르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5월19일까지 특정 분야 민영화 또는 인력 구조조정 계획 등 공공부문 구조조정안을 보고하라는 지시 공문을 각 공기업에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속전속결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운명 걸린 싸움
공공부문에서 이명박 정부와 노동계의 정면 대립은 공공부문 민영화 관련 법·제도가 제·개정되는 올 하반기에 격렬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싸움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곳의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할 경우 노사가 반드시 ‘필수유지업무 협정문’을 만들도록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조항을 둘러싸고 현재 공공부문 사업장마다 노조-정부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 쪽은 공공부문에서 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이 빈발할 것으로 예상하고 필수유지업무 조항을 앞세워 파업의 힘을 봉쇄하려 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3월11일 공공운수연맹,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보건의료노조 등 7개 산별연맹을 주축으로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저지, 사회공공성 강화 공동투쟁본부’를 출범시켰다.
현재 노조와 새 정부의 대립은 정권 출범 초기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힘겨루기 성격도 띠고 있다. 보수 혹은 실용 정권 출범에 따라 노동계와 정부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30여 년 전 영국과 미국에서도 보수당 정권의 등장 이후 공공부문 노동조합과 정부가 전면적인 싸움을 벌인 바 있다. 1979년 대처 정부가 집권한 ‘불만의 겨울’을 거친 뒤 영국 탄광노조 대파업이 벌어졌고, 1980년 미국에서 레이건 정부가 등장하면서 항공관제노조의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노조가 모두 대패하면서 노동운동은 장기 침체에 빠져들고 말았다. 민주노총은 싸움의 향배가 여론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노동계에 유리한 싸움이 전개될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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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대선 때 내세웠던 경제성장률 7% 달성을 사실상 포기한 가운데 ‘일자리 창출’도 동반 추락하는 등 고용 쇼크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업무보고를 통해 제시한 일자리 창출 목표치는 한 해 35만 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임기 5년간 300만 개 일자리(연간 60만 개) 창출’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보름도 안 된 4월28일 기획재정부는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며 ‘35만 개 일자리’ 목표조차 사실상 공식 포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통계청이 4월16일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3월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18만4천 명(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5년 2월 8만 명을 기록한 이후 3년1개월 만에 가장 적은 증가율로, ‘고용쇼크’라고까지 할 수 있다.
더욱 걱정되는 건 이명박 정부에서 연간 신규 일자리 창출이 15만 개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월1일 “향후 연간 취업자 수가 20만 명을 넘기 힘들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일자리 창출 목표 달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명박 정부 동안 취업자 증가 수는 갈수록 떨어져 2012년에 15만2천 명으로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3월 고용동향을 보면, 임시·일용직 등 경기에 민감한 서민층의 고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임시근로자가 1년 전에 비해 16만5천 명(3.2%), 일용근로자가 3만9천 명(1.8%) 각각 줄어든 것이다. 임시근로자 감소율 3.2%는 1998년 12월(10.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상대적으로 계약 해지가 쉬운 임시·일용직 근로자가 우선 정리해고의 칼날을 맞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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