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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은 물가 상승 공약이었나

등록 2008-05-16 00:00 수정 2020-05-03 04:25

경제 침체에는 대외여건 뿐 아니라 혼란스런 경제정책도 한몫…물가 압력 높은데 수출 위해 원화 가치 떨어뜨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3부- 경제의 역습]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0.7%(연 환산 2.8%),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4.1%(2007년 3분기까지는 2%대 중반).

경기는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고, 물가는 가파르게 뛰고 있다. 현실을 이제야 긍정한 것일까? 이명박 정부는 4월27일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연간 7% 경제성장’은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기획재정부는 “(당초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6%로 낮춰 잡았으나) 사실 6% 달성도 어려운 상태”라고 보고했다. “유권자 관심 끌기용으로 내놓은 7% 성장 공약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을 우려한 것일까? 그러나 정부는 5년 임기 동안 7% 연평균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붙들고 있다. 경제가 불안한 상태이지만 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을 계속해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5월8일 “올해 경제 성장률이 4.5%나 그 이하로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7% 성장 고수’를 정면으로 일축해버린 셈이다.

오락가락하는 대통령 발언

과연 7% 성장 포기는 국제 유가와 곡물가격 급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등 대외 경제 여건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혹시 이명박 정부 경제팀의 경제 운용 실력이 별로 없음을 드러내주는 건 아닐까? 사실 이명박 정부는 대선 때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면서 과도한 목표를 국민에게 제시해놓고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놓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번 의 이명박 정부 평가 여론조사 결과, 이 대통령을 지지해왔다가 최근 이탈한 층에서 ‘재임 기간 동안 나의 경제 상황과 삶의 질이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39.5%에 달했다. 모든 응답자(1천 명)로 넓혀보면, ‘나의 경제 상황과 삶의 질이 좋아질 것으로 본다’는 30.7%에 그쳤고, ‘나빠질 것으로 본다’는 28.0%로 나타났다. 37.0%는 현상유지를 점쳤다. 새 정부가 표방해온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가 확연히 꺾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 응답자에서는 ‘나빠질 것’(30.6%)이란 응답이 ‘좋아질 것’(26.1%)이란 응답보다 더 우세했다. 소득수준별로는 월 200만∼300만원 수준인 중산·서민층의 경우 ‘나빠질 것’(34.8%)이란 대답이 ‘좋아질 것’(26.6%)이란 응답보다 더 많았다.

그렇다면 7% 성장 공약에 속았다는 허탈감이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강부자 내각’은 그렇다 쳐도 경제 살리기에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지지율은 급속히 추락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공세적인 감세 조처와 적극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의 기업활동을 자극하면 기업들이 그동안 망설여온 투자를 크게 늘릴 것으로 기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0년간 투자를 안 하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는 ‘기대’만으로도 갑자기 투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범 초기부터 규제 완화와 감세를 대대적으로 외치고 있음에도 투자는 살아나는 조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가들 사이에서조차 불만이 끓어오르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세계경영연구원이 4월 말에 대기업·중소기업인 125명을 대상으로 ‘MB 노믹스에 대한 CEO들의 생각’을 설문조사한 결과, 한반도 대운하 추진에 대해 ‘적극 혹은 어느 정도 찬성한다’는 응답은 37%로, 당선 직후의 ‘찬성한다’(58%)보다 훨씬 떨어졌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23%에 달했고, ‘적극 찬성’은 두 달 전의 23%에서 10%로 줄었다. 반면, ‘적극 반대’는 10%에서 20%로 크게 늘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드러난 경제정책 혼선은 강만수(기획재정부 장관) 경제팀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라고 할 수 있다. 강만수 경제팀이 성장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와중인 3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은 갑자기 “물가안정이 경제성장보다 시급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성장보다 물가안정으로 정책의 강조점이 급선회했다. 하지만 4월 초, 이 대통령이 이번에는 거꾸로 적극적인 내수진작 정책을 주문했다. 물가안정을 희생하더라도 성장과 경기부양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 경제팀이 물가를 잡겠다는 것인지, 물가를 희생하더라도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인지 시장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말에 따라 경제정책 목표나 방향이 춤을 추면서 흔들려온 것인데, 이처럼 경제팀이 혼선을 되풀이하면서 선제적 정책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물가를 잡는다면서 ‘52개 생활물가 특별관리’(이른바 MB물가지수)를 주문하기도 했다. 시장의 가격흐름을 왜곡하는, 행정력을 동원한 가격통제 수단까지 동원한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이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하면서 경제부처 장관들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여론조사, 물가안정 실패를 1순위 꼽아

이제 ‘수출’과 ‘내수’ 두 가지 측면에서 이명박 경제팀의 경제정책 운용 실패라는 평가를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는 대선 때 서민 생활비 30% 절감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그러나 내수 쪽의 형편을 그대로 보여주는 서민생활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사실 내수 쪽은 대외 경제 여건 악화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세계 경제가 불안하더라도 국내 경제 운용에서 정책 배합이나 미세조정을 잘하면 내수를 끌어올려 서민생활을 돌볼 수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민생경제 악화는 물가 급등이 가장 큰 원인이다. 통계청의 2005년도 소득계층별 소비지출 구조를 보면, 소비지출에서 저소득층은 식료품(20.5%)과 주거(14.6%) 비중이 가장 큰 반면, 고소득층은 교육(14.0%)·교통(13.4%)·외식부문(13.1%)이 식료품(12.8%)보다 더 컸다. 소득수준 하위 10%인 최저소득층의 식료품 비중(21.7%)은 소득수준 상위 10%인 최고소득층(11.9%)의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 새 정부 출범 직전부터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이 급속히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명박 경제팀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의 이번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경제팀이 경제를 운용하면서 가장 잘못하고 있는 분야’를 물어본 결과, ‘물가안정 정책 실패’(46.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소득수준별로 보면, 월소득 200만원 미만(53.8%)과 월소득 200만∼300만원(50.9%)에서 물가안정 실패를 가장 잘못한 일으로 꼽는 비율이 높았다. 이명박 후보에게 투표했던 사람 중에서도 44.1%가 물가안정 실패를 가장 잘못한 것으로 꼽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가 최근 이탈한 층의 경우 ‘물가안정 실패’(50.4%)와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22.8%)을 지지 철회 이유로 꼽았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물가가 오르고 불만이 폭발하자 결국 이명박 경제팀이 ‘올해 6% 성장’ 목표조차 포기를 선언하고 이제 물가 관리에 올인한 것일까?

사실 거시경제는 적절한 시기에 세금·금리 등 정책수단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소득과 고용이 바뀌고, 국민의 삶의 수준과 형편이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강만수 경제팀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수출 드라이브를 펴기 시작했다. 특히 수출기업을 돕기 위해, 달러 약세라는 전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면서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추구하거나 적어도 용인했다. 정부의 환율 상승 용인은 시장에서 환율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문제는 환율 상승이 국내 물가 급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조동철 연구위원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도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물가에 상당한 추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올 1분기까지 물가 상승률 확대에 수입물가 급등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나 앞으로는 3월 이후 발생한 원-달러 환율 상승 여파가 주도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경제팀의 환율정책이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즉, 강만수 경제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 급등에다 환율 요인까지 가세해 물가 오름폭이 되레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아시아 주요국 정책 당국은 최근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려고 자국 통화 ‘절상’을 용인하고 있다. 통화 절상에 따른 수출 둔화를 감수하되, 동시에 통화 절상을 통해 수입 원유·곡물 가격 상승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함으로써 물가 압력을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 경제팀의 정책 방향은 이와 정반대를 지향하고 있다. 조동철 연구위원은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경기 확장이 아니라 완만한 경기 하강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경제팀의 거시경제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수출’이 우리 경제의 서민과 중소기업에 기여하는 파급효과는 뚜렷이 약화되고 있다. ‘높은 환율’ 정책을 통해 대기업의 수출이 증가해도 국내 일자리는 늘지 않고, 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수출 증대해도 주주들 배당 늘 뿐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수출 제조업들의 글로벌 아웃소싱 등으로 인해 우리 경제에서 수출의 고용촉진 효과가 거의 없어졌다. 새 정부 경제팀이 원-달러 환율 상승을 통해 수출을 늘리려 하지만 자갈밭에다 씨 뿌리고 비료를 친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드는 등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시점에서 수출이 증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새 정부가 국고를 동원해 인위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수출업체를 돕고 있지만, 이에 따른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면서 서민들이 고통을 떠안고 있는 형국이다.

또 대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이윤을 벌어들여도 그 과실은 주식에 투자한 부유층과 외국인 주주들의 배당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명박 경제팀의 경제 운용이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서민들의 새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기업들은 장래의 인플레이션 예상을 고려해 제품 가격을 바꾼다. 즉, 미래의 물가에 대한 예상이 바로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결정짓는 데 영향을 미친다”며 “지금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시키는 게 매우 중요한 때인데, 이명박 경제팀의 환율정책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오히려 높여서 실제로 물가 불안을 더욱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5월8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050원대(2년6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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