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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대항마는 추미애인가

등록 2008-04-17 00:00 수정 2020-05-02 04:25

박근혜의 정치력이 절정을 맞고 있는 지금, 세대교체 필요성 점점 커지는 통합민주당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박근혜의 대항마를 찾아라.’

4월9일 총선에서 애매한 패배를 겪은 통합민주당의 최우선 과제다. 지난 총선의 유일한 승자를 꼽는다면 단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저는 속았습니다”라는 박 전 대표의 말 한마디로 총선 정국이 요동쳤다. 그의 정치력은 지금 ‘절정’을 맞고 있다.

민주당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견제세력으로 버티고 있는 보수 여당에 맞서, 민주당을 ‘선명 야당’으로 재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주당 안팎의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리더십은 무엇보다 개혁성이다.

정세균·천정배·김부겸·추미애

서갑원 의원(전남 순천)은 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국민이 민주당에 요구하는 게 솔직히 중도는 아닐 것”이라며 “우리가 정녕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고 남북 평화를 추구하는 정당이라면 좀더 선명한 기치를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개혁성과 함께 요구되는 대목은 ‘새로운 인물’이다. 즉, 세대교체론이다. 통합민주당이 과거 열린우리당이나 옛 민주당의 틀을 벗은 새로운 대안 세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낡은 이미지보다 전혀 새로운 인물이 낫다는 논리다.

정동영계의 한 의원은 “절대적으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며 “본인 스스로 인위적 세대교체론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의원들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 쪽으로 흘러가는 시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컨설팅업체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 역시 “민주당이 지난 총선까지 바뀌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 완전히 실패했는데, 세대교체를 통해 치고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를 어떻게 감동으로 포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친재벌 정책 드라이브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이 개혁적 마인드라면, 최근 급속도로 경색되는 남북관계 해법을 주도적으로 풀기 위해선 남북 문제에 대한 식견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희철 당선자(서울 관악구을)는 “민주화 세력의 정통성을 지닌 사람 가운데 한반도 평화에 대해 분명한 철학이 있는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을 정리하면, 차기 ‘민주호’의 선장에게 필요한 자질은 우선 새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개혁적이고 남북 문제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선택지는 넓지 않다. 우선 차기 당 대표 물망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세균, 천정배, 김부겸, 추미애 등 주로 3~4선 의원급이다.

최근 당내에서 가장 활발히 언급되고 있는 카드는 추미애 당선자(서울 광진구을)이다. ‘추다르크’를 당 전면에 세운다면, 박근혜 전 대표의 한나라당에 맞서 각이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추 당선자는 2004년 17대 총선 직전 탄핵 역풍으로 궤멸 직전에 놓였던 옛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전력이 있다. 당시 그는 서울에 있는 자기 지역구마저 포기한 채 광주에서 눈물의 삼보일배를 거듭하며 민주당 지지를 호소했다. 그때 한나라당에 박근혜 전 대표가 있었다면, 옛 민주당에는 추미애 당선자가 있었다.

여기에 추 당선자는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다. 과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이라크 파병을 추진할 때 앞장서서 파병 반대를 외치기도 했다. 정세균·천정배 의원과 달리 참여정부에 몸담은 적도 없다.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한나라당이 ‘고정 메뉴’로 활용하는 이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한 가지 문제는 당내에 추 당선자의 조직과 세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 나선 경험이 있다. 5위까지 뽑는 당시 경선에서 그는 6위로 탈락했다.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조직과 세력이 부족했다.

상황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민주당의 차기 전당대회가 과거처럼 계파 간 권력투쟁 형식으로 전개된다면 추 전 의원에게 기회가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민주당 내에는 크게 4개 계파가 존재하고 있다.

계파간 싸움은 추미애에게 불리

당내 최대 계파로 손학규계가 있다. 김부겸 의원을 포함해 14명 안팎의 의원이 포진하고 있다. 크게 위축되기는 했지만 정동영계 역시 약 10명 정도 남아 있다. 친노세력도 백원우·서갑원·이광재 의원 등 약 10명에 이른다. 김근태계는 이미경 의원 한 명만 남았다.

추 당선자가 속한 옛 민주계도 수는 많다. 비례대표를 포함하면 13명에 이른다. 하지만 옛 민주계는 탈당파와 사수파로 갈라져 있는데다 양쪽 사이도 좋지 않다. 추 당선자가 속한 탈당파에는 김희철·김영진·김효석·이낙연 의원 등이 있다. 숫자 싸움을 하면 추 전 의원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다만 민주당 차기 전대가 계파 싸움으로 전개되는 그림을 그리기란 쉽지 않다. 총선을 치르면서 계파 구분이 애매해졌을 뿐만 아니라, 각 계파의 수장은 거의 전원이 원외로 밀려났다. 무엇보다 야당으로 전락한 뒤 첫 번째 치르는 전대에서 계파끼리 치고받는 싸움을 벌인다면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는 것은 추미애 당선자의 판단이다. 그도 고민 중이다. 추 당선자 쪽 황인철 특보는 “추 당선자가 당선 직후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데 헌신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지금은 그 말 자체로만 받아들여달라”고 말했다.



박근령 유세 효과

충북의 ‘짝퉁 박풍’ 대실패




언니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4·9 총선에서 거둔 성적표가 최상이라면, 동생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의 것은 최악이었다.
총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4월3일 한나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딸인 박근령 이사장을 충북 공동선대위원장에 임명했다. 칩거 중이던 박 전 대표 대신, 동생인 박 이사장을 급히 영입한 것이다. 박 이사장은 4월4일 충주를 시작으로 청주와 보은·옥천·영동·증평·진천·괴산·음성 지역구 등 충북의 거의 전 지역을 누볐다. 결과는 참담했다. 심지어 고 육영수씨의 고향 옥천이 포함된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에서조차 한나라당 심규철 후보는 자유선진당의 이용희 당선자에게 졌다.
충북의 8개 지역구 가운데 한나라당이 당선자를 낸 지역은 제천·단양 지역구 단 한 곳에 불과했다. 통합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제천·단양에서 한나라당의 송광호 당선자는 53.2% 득표율로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공교롭게도 제천·단양은 박근령 이사장의 지원유세를 거절한 거의 유일한 곳이었다. 송 당선자 쪽은 “우리는 박 이사장의 지원유세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박근령 효과’를 입었다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박 이사장이 발 벗고 나서서 지원해준 지역의 한나라당 후보들은 우수수 떨어지고, 그가 나서지 않은 곳의 후보만 당선되는 역설적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이유가 뭘까. 충주에서 윤진식 한나라당 후보와의 대결을 펼쳐 승리한 이시종 통합민주당 당선자 쪽 관계자는 박근령 이사장을 내세운 것은 한나라당의 전략적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가만히 지켜보니까 (박 이사장이) 많이 다니기는 하는데, 호응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박 이사장이 누군지 몰라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윤 후보 쪽에서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는 해주는데, 그러다 보니 정작 후보가 뒷전이 되고 말았다. 유권자들은 누가 한나라당 후보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한나라당 쪽 이야기도 비슷하다. 윤진식 후보 쪽 이선규 공보팀장은 “박 이사장이 면 단위 시골 지역까지 열심히 누비기는 했는데, 유권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이라도 끌어들여 ’짝퉁 박풍’을 일으키려 했지만, 코미디 같은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한편, 박근령 이사장은 4월7일 mbn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이후에 정치활동을 할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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