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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뿐일까…지구촌은 고민 중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역공동체 차원의 노력 벌이는 미·일…성폭행 전과자 공개가 재범률 낮추지 못한다는 지적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박현숙(베이징)·▣ 황자혜(도쿄) 전문위원

메건 니콜 캔카는 그해 7살이었다. 미 동부 뉴저지주 주도 트렌턴 교외의 조용한 마을 해밀턴 타운십에서 아버지 리처드와 어머니 모린, 언니·오빠와 행복했다. 1994년 7월29일 모든 게 바뀌었다.

“귀여운 메건, 강아지를 구경하지 않으련.” 그는 말했다. 30m도 떨어지지 않은 ‘길 건너 이웃집’ 아저씨였다. 그리고 모든 게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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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구걸 시키려고 인신매매

운명의 그날 저녁 6시30분, 메건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평소 조금 괴팍해 보였던 건넛집 아저씨 제시 티멘데카스(33)가 길가에서 보트를 닦고 있었다. 메건은 보트를 둘러볼 요량으로 자전거를 멈췄다. 강아지를 보여주겠다는 건 미끼였다. 집 안으로 들어선 티멘데카스는 강제로 입을 맞추기 시작했고, 메건은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했다. 티멘데카스는 어느새 풀어헤친 허리띠로 여린 메건의 목을 조였다. 그리고 삽시간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메건이 집을 나선 지 채 1시간이 안 돼, 모린 캔카는 딸을 찾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메건의 주검을 내다버린 티멘데카스는 “저도 찾아볼게요”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7시45분 퇴근해 집에 도착한 리처드 캔카는 경찰에 전화를 했다. 이윽고 순찰차가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후 이틀간 바버라 거리의 캔카 가족 집 주변은 취재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기자회견도 했다. 눈물로 호소도 해봤다. 소용없었다. 경찰은 이내 티멘데카스에게 수사력을 집중했다. 티멘데카스는 1981년 5살 아이에게 상해를 가하고, 7살 아이를 성폭행하려다 구속된 전과 2범이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이어 어린 메건의 주검이 발견됐다. 참혹한 모습이었다.

“거기 그자가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았더라면.” 어머니의 애타는 절규는 거대한 메아리로 울려퍼졌고, 뉴저지주는 메건이 참혹하게 숨진 지 89일 만에 성범죄 전과자 신상정보 공개를 뼈대로 한 ‘메건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2년여 만인 1996년 5월 미 연방정부도 비슷한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면서, 현재 미 전역 50개 주에서 같은 법이 시행되고 있다.

어린이를 겨냥한 흉악 범죄는 지구촌 곳곳에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한 자녀 낳기’가 굳어진 중국에선 영유아 납치사건과 어린이 유괴사건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벌어져 온 사회에 충격파를 던진다. 장기 적출이나 구걸에 동원하기 위해 범죄조직이 어린이 납치를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베이징 서역에서 우연히 발견된 5살 어린이는 돌보던 보모가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긴 경우다. 피해 어린이는 사지가 절단된 채 구걸을 하다 우연히 공안당국에 발견됐다.

‘위치추적 장치를 이용한 행적 파악, 신원정보 공개, 누범자 가중처벌….’ 각국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어린이를 노린 범죄를 막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이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요행히 가해자를 붙잡아 가중처벌을 하는 것을 빼고는 정부 차원의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등이 의무적으로 학생들을 등·하교시키도록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 때문에 등하교 시간 유치원과 초등학교 부근에선 자녀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로 장사진을 이룬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불안한 일상이다.

일본에선 지난해 상반기에만 어린이를 겨냥한 강력범죄가 13만9천여 건 발생했다. 전체 형사사건 가운데 18.89%에 이르는 수치다. 일본 경찰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어린이가 범죄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시간은 오후 2~6시, 방과 후부터 저녁 무렵까지다.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이 그나마 중국보다는 나은 편이다. 지자체·학교·경찰·주민이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차원의 노력이 제법 활성화돼 있다. 이미 지난 2006년 말까지 지역 순찰 등 방범활동을 하는 ‘방범 자원봉사 단체’가 일본 전역에서 1만515개나 활동하고 있다. 또 85데시벨 이상의 음량으로 20분 이상 울릴 수 있는 방범버저 보급사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지역 공동체 차원의 노력은 미국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운영하는 ‘앰버경고’(Amber Alert)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다. 어린이 납치·유괴 사건이 벌어지면, 사법당국은 각급 방송사와 운수·통신업체에 즉각 알려 이를 널리 전파하게 하는 방식이다. 지난 1996년 텍사스주에서 납치됐단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앰버 해거먼(당시 9살)의 이름을 따 붙여진 이 프로그램은 2003년부터 미 전역에서 실시되고 있다.

이 밖에도 연방수사국은 산하에 ‘아동범죄 전담부서’(CAC)를 따로 두어, 매년 수천 건씩 발생하는 유괴, 폭행, 성적 학대 등 어린이를 겨냥한 각종 흉악 범죄를 전담하게 하고 있다. 또 ‘어린이 유괴 신속대응팀’(CARD)을 별도로 구성해, 초동 단계부터 관할 경찰과 공조 수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전과자에게만 몰입할 일인가

지난 2006년 7월27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메건법보다 한층 강력한 ‘애덤 월시 어린이 보호·안전법’에 서명했다. 1981년 7월 플로리다주에서 유괴됐다 16일 만에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된 애덤 월시(당시 6살)의 이름을 딴 이 법안은 성범죄 전과자를 세 부류로 나눠 재범 가능성이 높은 ‘3단계 범죄자’는 석 달에 한 번씩 거주지를 경찰에 등록하고, 이를 어길 경우 재수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우범자의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과 직장, 사진 등 신상정보는 물론 DNA 정보까지 등록·관리하는 한편, 위치추적 장치를 통해 우범자의 행적도 감시할 수 있도록 했다.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9월 내놓은 ‘쉬운 해결책은 없다’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현재까지 나온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보면, 기대했던 것과 달리 어린이 성폭행 전과자 신상정보 공개제도가 재범률을 낮추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는 지난해 5월10일치에서 메건법을 처음 도입한 뉴저지주가 연방정부 지원으로 진행 중인 연구조사 내용을 따 “법 시행으로 (어린이 성폭행 전과자의) 재범률이 낮아졌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메건법 도입 3년 전인 1991년부터 뉴저지주 일대에서 어린이를 겨냥한 성범죄가 줄어드는 추세가 시작됐고 이후에도 감소 추세가 이어진 만큼 메건법 도입이 재범률을 낮춘 근본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는 게다.

어린이를 겨냥한 성범죄의 절대다수가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점도 ‘회의론’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미 법무부가 내놓은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12살 이하 어린이 성폭행범의 96%가 가족과 친지, 부모의 친구나 친구의 부모 등이었다. 18살 이상 연령대에서도 가족과 친지(12%)나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55%)에게 성폭행당하는 경우가 낯선 사람(33%)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동일 범죄 전과자에게만 ‘몰입’해선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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