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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약을 내 공약이라 부르지 못하고…

등록 2008-03-28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총선 이슈로 떠오르며 반한나라당 전선까지 살리는 대운하…슬그머니 발 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여당</font>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font color="#C12D84">[한반도 대운하-1부 현주소] </font>

“경부 대운하 사업은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너무 문제점이 많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 않습니다. 경부 대운하 반대 공약을 맨 앞으로 내세우겠습니다.”

통합민주당(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의 논평이 아니다. 공천 탈락에 항의해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무성 의원이 ‘친박 무소속연대’를 대표해 3월18일 밝힌 첫 정치적 메시지였다.

“생명과 평화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한반도 대운하의 추진은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이재오를 압도하는 문국현

이 역시도 고진화 의원이 한나라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한나라당 내부도 마찬가지다. ‘친박계’의 핵심인 유승민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한반도 대운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라며 “그런 사업에 수십조원을 들이는 건 결국 경제가 망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저뿐만 아니라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운하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대운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이들도 공개적인 반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들이 가장 먼저 ‘대운하 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대운하=이명박’이기 때문이다. 김무성 의원은 “대운하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라며 “그런데 이 대운하 사업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우려와 반대가 많았음에도 당론 결정 없이 대선 공약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실이다.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던 지난해 가을, 대운하 공약을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찬반 논란이 격해지자, 한나라당은 10월15일 의원총회를 열었다. 대운하 공약에 대한 찬반토론을 통해 당론을 정해보자는 자리였다. 유승민 의원은 이 자리에서 “경부운하 건설을 한나라당의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려면 의원총회에서 찬반토론을 거친 뒤 무기명 투표로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 의원들에 의해 묵살됐다. 한나라당은 이후 대운하를 사실상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친박계’ 의원들이 대운하 반대를 내세운 것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저항의 뜻을 분명히 하는 의미도 있다. 이번 공천이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을 사실상 ‘제거’하려는 의도였고, 이는 이 대통령의 뜻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한 결과다.

‘대운하 반대=이명박 반대’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대운하를 중심에 둔 정치연대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3월19일 창조한국당은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국토를 황폐화하는 경부 대운하 환경 대재앙을 막기 위해 각계각층과 제 정파가 참여하는 ‘경부 대운하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그 다음날인 3월20일 기독교방송 와의 인터뷰에서 대운하를 반대하는 지향점이 같다면 한나라당 탈당 의원들이 모인 ‘친박연대’와도 정치적으로 연대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민주당도 4·9 총선의 최대 쟁점으로 대운하를 정면에 내세울 방침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대운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계속 밝혀온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의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운하는, 결과적으로 4·9 총선에서 보수부터 진보까지 ‘대운하 반대’란 하나의 전선으로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한나라당도 이를 알고 있다. 한나라당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총선 공약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대운하에 대해서는 국민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며 “잘 다듬어 국민을 설득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운하의 파괴력은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현장은 서울 은평을이다. 이 지역구는 ‘대운하 전도사’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의 텃밭이다. 이 의원은 지난 1월5일 경북 문경시에서 두 권의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중 한 권은 자신이 대운하 예정지를 직접 자전거로 돌고 쓴 이란 책이었다. 대운하를 업고 ‘제2의 이명박’에 도전하겠다는 뜻이 물씬 배어나왔다. 여기에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대운하를 저지하겠다’며 도전장을 냈다. 이변이 벌어졌다. 문 대표가 출사표를 낸 뒤 언론사들이 실시한 양자 구도의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이 연거푸 무릎을 꿇었다. 가 3월21일 보도한 여론조사에서는 송미화 민주당 후보까지 넣은 3자 구도로 지지후보를 물었는데도, 이 의원이 10% 이상의 격차로 문 대표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수도권은 대운하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운하의 출발지가 될 수도권은 건설에서도 운송에서도 직접적으로 얻는 경제적 효과가 미미하다. 반면, 대운하로 인해 식수의 질이 나빠질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이 서울과 인천, 경기도다.

사단법인 ‘수돗물시민회의’가 3월7~8일 전국의 20살 이상 성인 5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7.4%였다. 찬성은 39%에 그쳤다. 반대 의견은 30대(65%)의 대학 재학 이상 고학력자(62%)이면서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70.6%)에서 특히 많았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과 호남에서 반대 의견이 높았다.

이득 없는 수도권은 반대 강해

한나라당이 대운하 건설을 총선 공약에서 뺀다고 정부와 여당이 대운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사공일 위원장도 3월20일 한국방송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는 게 좋다는 정부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총선에서 과반수가 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대운하 공사에 들어갈 것”이라며 “국토해양부와 환경부 장관의 인선을 봤을 때,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 추진론자들이 전진 배치된 구조”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총선 공약에서 대운하 추진을 뺀 것은 정치적인 도의를 벗어난 행위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공동상임대표는 3월20일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한나라당이 대운하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이에 대한 국민적인 심판을 받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호부호형하지 못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내 공약을 내 공약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 본다.” 심상정 대표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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