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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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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영어 말하기 시장

등록 2008-02-15 00:00 수정 2020-05-03 04:25

인수위 영어교육 강화 방침에 따라 테스트 시행사인 ‘크레듀’ 등 수혜기업으로 떠올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국에선 영어 하나만 잘해도 대학입시 특별전형을 통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취업도 보장된다. 이제는 영어 하나만 잘하면 교사도 될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로드맵’에서 영어전용교사(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를 새로운 계약직 교육공무원 자격제도로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1조7천억원을 들여 영어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전용교사 2만3천 명을 뽑은 뒤 2010년부터 초·중·고교에 배치할 방침이다. 영어전용교사는 △국내외 영어교육 과정(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을 이수했거나 △영어권 대학에서 영어 전공으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 △교사자격증은 있지만 임용이 되지 않은 사람 △전직 외교관·상사 주재원 같은 영어수업 가능 전문직 중에서 선발할 예정이다. 3∼5년 주기로 계약하되 6개월 이내의 연수를 거쳐 농어촌과 대도시 저소득층 지역부터 배치된다.

영어전용교사 취업 원하는 대학생들

또 영어만 잘하면 ‘보조교사’도 될 수 있다. 인수위는 영어에 능통한 대학생·주부·지역 주민·재외동포 등에게 일정한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고 방과후 수업 등에 ‘영어전용 보조교사’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대학생 영어보조교사한테는 학점을 인정해줄 방침이다. 이미 각급 학교에서 시행 중인 ‘원어민 영어보조교사’(학교당 1∼3명)도 학교당 8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렇게 초·중·고 영어에 올인하는 데 향후 5년간 4조원이 투입된다.

교대와 사범대를 나오지 않아도 영어전용교사로 취업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이 ‘영어 말하기’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영어교육 중 ‘말하기’는 대화를 나눌 상대방이 필요하다. 언어과학자들은, 영어는 수학·과학 등 개념 위주의 과목과 달라서 입력되는 양과 강도가 성취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병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영어정책센터)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혼자만의 정신적인 훈련뿐 아니라 물리적으로 얼마나 많이 영어 환경에 노출되느냐가 중요하다”며 “영어 말하기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데, 집에서는 잘 안 되기 때문에 자꾸만 학원 등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 말하기의 성취도는 ‘얼마나 돈을 많이 들여’ 영어로 말할 기회를 갖는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서울교육통계에 따르면, 중고생 100명당 (기술·예체능계를 뺀) 문리계 학원 수강생(1996∼2003년)은 강남교육청(강남·서초구)이 151.2명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의 1.5배에 이른다. 반면 동부교육청(동대문·중랑구)의 학원 수강생은 34.8명, 성동교육청(성동·광진구)은 28.9명, 성북교육청(성북·강북구)은 30.3명에 불과했다. 사교육 기회에서의 지역별 불평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얼마나 투자했는지가 중요한 영어 말하기는 사교육 불평등의 골을 더 깊게 할 공산이 크다.

크레듀, 중등교육 시장에도 진출

증권사 교육산업 분석가들은 “이명박 새 정부 효과로 올해부터 ‘영어 말하기 시험 시장’이 본격 형성될 것”이란 리포트를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 영어 말하기 시험 시장에서 주목받는 업체는 삼성그룹 계열 교육벤처기업인 ‘크레듀’와 토익 말하기·쓰기 시험(S&W test)을 접수 대행하고 있는 ‘YBM시사닷컴’이다. 크레듀는 미국의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OPIc·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 테스트의 국내 시행사다. 특히 삼성그룹은 올 신입사원 채용부터 오픽을 도입하고, 2∼3년 뒤에는 신규채용 때 영어 응시자격으로 오픽 등 회화평가 등급만 인정하기로 했다. 듣기·읽기 위주의 필기시험은 전면 폐지한다. 오픽은 CJ그룹 신입사원 채용과 교육부의 영어교사 연수에도 이미 활용되고 있고, 한진중공업·SK텔레콤·미래에셋 등 국내 70여 개 기업이 도입하고 있다. 박종대 CJ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이 영어 말하기 시험 점수를 제출한 사람에게는 영어 읽기·듣기시험 점수 제출은 물론 영어 면접까지 면제해주기로 해 사실상 토익시험을 대체하고 있다”며 “영어 말하기 시험 시장 규모가 2007년 200억원 수준에서 2013년에 2천억원 정도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어 말하기 시험’이 우리나라 교육시장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게 된다는 얘기다. CJ투자증권에 따르면, 2007년에 토익 말하기 시험 응시자는 약 6만 명, 오픽 응시자는 2만4천 명으로 추산된다. 장기적으로 오픽 응시자가 100만 명으로 늘어난다고 가정할 때 크레듀는 응시료 매출만 연간 700억원을 올리게 된다.

사실 영어전용교사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수위가 밝힌 2만3천 명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영어 말하기는 상호작용을 통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따라서 한 반 학생 35명당 영어전용교사 1명으로는 수업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면 학생 15명당 영어전용교사 1명이 되도록 영어전용교사를 더 늘려야 할 것이다. 진경애 교육과정평가원 영어교육정책센터장은 “역동적 수업을 위해 필요한 일정한 수 이상의 학생 등을 고려할 때 한 반 10∼15명 정도의 교실에서 영어 말하기 수업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어 말하기 열풍은 대학생·취업준비생보다는 ‘초·중등 시장’이 이끌어갈 공산이 크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고교 평준화 폐지, 자율형 사립고 대폭 확충 등을 내세웠기 때문에 초·중등 시장에서부터 영어 말하기 학습 붐이 거세게 번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일까? 기업 중심으로 e러닝 서비스를 제공해온 크레듀는 지난해 9월 ‘크레듀엠’을 오픈해 온라인 중등교육 시장에도 발빠르게 진출했다. 크레듀는 이미 시장에서 영어 말하기 시장의 가장 큰 수혜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참고서 시장도 ‘빅뱅’ 예고

인수위는 영어수업 교사 확충뿐 아니라 영어수업 시간도 초등 3∼4학년은 매주 1시간에서 3시간으로, 5∼6학년은 매주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 2012년에는 중·고교의 모든 영어수업이 회화 중심으로 바뀐다. 어느 초·중·고교 할 것 없이 교사·학생·학부모 모두 영어 중심으로 학교가 돌아가게 될 것이고,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 말하기 참고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납입금·학원비·참고서 등 각종 교육비 지출품목 물가지수(각 품목 2000년=100 기준)를 보면, 2005년에 초등학교 참고서는 151.8로 교육비 전품목 물가지수(117.8)보다 훨씬 높았다. 초등학생 참고서 가격과 문방구 가격을 비교해보면, 1990∼2000년에는 문방구 물가가 초등 참고서 물가보다 높았는데, 2001년부터 역전돼 2005년 문방구 물가는 2000년의 문방구 물가보다도 오히려 낮은 99.4로 나타났다. 물론 초등 참고서 가격의 폭등에는 학부모들의 초등교육 투자 열풍이 한몫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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