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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의 진정한 부활?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한나라당 200석 시대 오면 지방의회-지방정부-입법부-행정부 장악하는 초강력 권력 탄생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이수정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은 ‘섬’이다. 파란색 한나라당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부유하는 섬은 두 개가 더 있다. 유일한 민주당 출신인 이금라 의원과, 대통합민주신당의 조규영, 홍광식 의원이다. 102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 네 명의 ‘군소 정당’ 소속 시의원들의 의정 활동은 그 자체로 투쟁이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지면 작은 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지난해 2월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을 올릴 때 그랬다. 이수정 의원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분하기만 하다. 2007년 2월 시의회가 임시회를 열자 서울시에서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안을 가져왔다. 이 의원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두 달 전, 그러니까 2006년 12월, 시의회가 돌려보냈던 안건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견제 기능 상실한 지방의회

2006년 당시 서울시는 시의회에 버스와 지하철 기본요금을 교통카드 기준으로 800원에서 900원으로 100원(12.5%)씩 올리겠다고 했다. 서울시 안에는 광역버스 요금을 1400원에서 1700원으로 올리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서울시가 이같은 인상안을 내놓자, 이수정 의원 등 비한나라당 의원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2004년 7월 이명박 당시 시장이 이미 큰 폭으로 요금을 올렸는데, 2년 만에 또다시 올리면 서민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06년 12월 요금 인상안을 돌려보낼 때와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서울시의 요금 인상안은 2007년 2월 무리 없이 시의회를 통과했다. 이 의원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비한나라당 의원들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한나라당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버스비 인상안을 통과시키지는 못했을 겁니다. 서울시가 공청회 한 번 열지도 않고 거의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의 요구를 한나라당 ’소속’ 시의회가 거부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이 의원의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 시절인 2004년 7월 기본요금 650원에서 출발한 서울 지하철 요금은 거리와 비례해 추가되는 요금을 포함할 경우, 불과 2년 반 만에 50% 넘게 급등했다.

대한민국 상위 2%(2007년 말 기준 37만9천 명)에게 해당될 종합부동산세 문제에 대해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이 연일 ‘세금폭탄’이라며 문제 삼고 있을 때, 대다수 서울시민의 발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과 버스 요금은 부드럽게 치솟았다.

한나라당은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싹쓸이’했다. 16개 전국 광역단체장 가운데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12곳 전부를 석권했다. 수도권의 광역의원 선거구 234곳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100% 당선됐고, 서울 지역의 경우 시장은 물론 25개 구청장, 96개 지역구 서울시 의원 모두가 한나라당 몫으로 돌아갔다. 이 의원 같은 ‘섬’은 그나마 비례대표로 선출됐다.

5·31 지방선거 결과는 지방의회와 지방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 대신 자웅동체처럼 움직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 과정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한나라당이 장악한 지방의회가 역시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의 결정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해준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본다면 특정 정당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동시에 장악한 결과의 부작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방의회는 지방정부를 견제하지 못했고, 소수 정당은 무시당했으며, 이는 서민의 고통 증가로 이어졌다.

지방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대구 서구 의회의 박재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 직후 황당한 경험을 했다. 구의회 의장과 부의장을 뽑는데,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자신의 의사조차 묻지 않고 정해버렸다는 것이다.

87년 이후 최초의 여대야소 구도

박 의원은 “당시 를 보니까 전체 의원들이 임태상 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하자고 의견을 무난하게 조율한 것으로 보도됐다”며 “실제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나에게 의견 한 번 물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 서구 의회는 전체 13명의 구의원 가운데 박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이렇다 보니 구의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표결 등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마저도 생략되기 십상이라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박 의원은 다수당의 횡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참여연대의 강금수 사무처장은 “1월 말 대구참여연대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대 다수가 지역에서는 아직도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며 “한나라당의 일당 독재가 계속되다 보니 노동자 등 소외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세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독식하면서 나타난 ‘디스토피아’(dystopia)의 형태는 다양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김황식 경기 하남시장은 역시 같은 당이 장악한 하남시의회를 앞세워 화장장 유치를 강행했다. 심의조 경남 합천군수는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인 군의회를 동원해 ‘일해공원 사태’를 일으켰다. 5·31 지방선거 직후 터진 서울시 구청장들의 남미 외유 사건과 경기도 의원들의 무더기 외유 사건 등도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이 다가올 4월9일 총선에서 200석을 넘긴다면 이는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우선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개헌을 시도할 수 있는 거대 정당이 출현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의석으로 국회의원을 제명할 수 있다.

국회에 올라오는 각종 법률안도 다른 당의 협조 없이 통과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참고로 제17대 국회가 개원한 2004년부터 4년간 국회가 처리한 법률안과 예산안 등 각종 의안은 2008년 1월 현재 4336건이다.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한나라당은 다음 18대 국회에서 처리될 수천 개의 법률안을 ‘당론’으로 통과시킬 수 있게 된다.

초점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맞춘다면 ‘한나라당 200석 시대’는 다른 차원의 의미도 지닌다. 이 당선자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여대야소 구도에서 국정을 시작하는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이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은 의회에서의 여소야대 정국에 맞닥뜨렸다.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원 빼내오기’라는 편법을 통해 여소야대 상황을 해소할 수 있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속수무책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맞았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 구도로 인해 탄핵이라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4·9 총선에서 200석을 얻는다면 이명박 당선자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여당 등에 업혀 국정을 펼치게 된다. 17대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1091건의 법률안 중 10%밖에 되지 않는 112건만 원안대로 통과시켜줬다. 한나라당 200석 시대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 모두를 그대로 통과시킬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게 된다.

이명박, 권력의 집중화 꾀해

한나라당 200석 시대의 긍정적 측면을 찾는다면 이 대목이다. 한나라당이 의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이 당선자의 국정운영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된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이 당선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의회에서 법안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일당 지배 체제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는 쪽보다는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쪽이 많다. 삼권 분립,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의 분립으로 대표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이다. 국민이 선출한 정부가 전제정으로 흐르지 않도록 고안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질 경우, 부작용은 크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당장, 정치권 안팎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제왕적 대통령’ 부활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일종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향했다. 김대중 정부는 여소야대 구도를 해소하기 위해 이를 검토했고, 노무현 정부는 실제로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이를 가동하기도 했다. 모두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는 막강한 권력을 여러 기구에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200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그리고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처음으로 ‘지방의회-지방정부-입법부-행정부’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초강력 정부, 정당이 출현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당선자는 총리실을 슬림화하고 청와대의 정무 기능을 복원하는 쪽으로 확실한 방향을 잡았다. 당과의 관계에서는, 당정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당정 협의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든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키려 노력했던 것과 정반대로 권력의 집중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보수 언론으로부터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공격을 받은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었지만, 재벌기업 회장의 리더십을 그대로 국정운영에 적용하려는 이명박 당선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제왕적 대통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한나라당 200석 시대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민병두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지방권력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당 독점 구조가 가져오는 폐해는 심각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앙권력까지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이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걱정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의견도 거의 일치한다. 서울 지역의 한 재선의원은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려면 정당 안팎에 건강한 견제세력이 있어야 한다”며 “한나라당 쪽으로 개헌선에 육박하는 힘이 쏠리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남의 한 초선의원 역시 “한나라당이 200석을 넘게 된다는 것은 일단은 유권자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를 판단하는 게 무의미할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국회가 행정부 감시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했을 때 그 기능이 약화될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지방권력과 행정부를 완벽하게 장악한 ‘200석 여당’의 출현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극은 이같은 디스토피아를 빠져나갈 출구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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