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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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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보는 경협, 징검다리 놓았다

등록 2007-10-12 00:00 수정 2020-05-03 04:25

단순교역→임가공 교역→직접투자로 꾸준히 확대…이번 회담으로 SOC투자와 창구 단일화 이뤄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2007 남북 정상선언’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는 분야는 경제협력이다.

정상선언 전문 8개항 중 다섯 번째에 자리잡은 경협 분야에는 해주 지역 경제특구 건설, 문산(파주)~봉동(개성) 철도화물 수송 시작,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 사회 기반시설(SOC)을 확충하는 내용이 대거 포함돼 있다. 남북 당국의 경협 협의체인 차관급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를 부총리급의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공동위)로 격상시키기로 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1988년 ‘7·7선언’ 발표로 시작돼

경협 협의 기구의 격상과 대규모 SOC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의 경협 분야 합의는,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남북 경협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 것이란 기대감을 낳고 있다.

남북 경협의 뿌리는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88년의 ‘7·7 선언’ 발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당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교류를 실현할 것”을 천명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으로 진행된 냉전체제 붕괴 흐름의 반영이었다. 7·7 선언은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그해 10월 ‘남북 경제개방 조치’를 통해 남북한 간 교역을 허용하고, 1989년 6월에는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지침’을 제정해 남북 교류를 지원하는 조처로 연결됐다.

(주)대우(현 대우인터내셔널)가 1988년 11월 북한산 도자기 519점을 들여오는 ‘반입 승인’을 처음으로 받고, 이듬해 2월 현대종합상사가 점퍼 5천 벌을 북한으로 갖고 들어가는 ‘반출 승인’을 최초로 받는 초창기 경협 역사의 배경에는 7·7 선언이란 ‘정치적’ 사건이 깔려 있었다. 이렇게 단순교역으로 시작된 남북 경협은 남한의 원자재를 북한에서 가공해 들여오는 ‘임가공 교역’으로 차츰 발전해갔으며,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앞뒤로 개성공단 조성을 비롯한 본격적인 ‘직접 투자’ 단계로 이어졌다.

남북교류 협력을 촉진하는 노력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고 곧이어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 조치’를 비롯한 후속 조처들에 힘입어 협력 분위기를 이어왔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지난 한 해 남북 교역 실적은 반출 8억3천만달러, 반입 5억2천만달러 등 모두 13억5천만달러에 이른다. 2005년보다 27.8% 늘어난 수준이며, 남북 교역 초창기인 1989년(1900만달러)에 견주면 70배를 웃도는 실적이다. 여기에는 일반교역, 위탁가공, 개성공단, 금광산관광 사업 등 상업적 거래와 대북 지원을 비롯한 비상업적 거래까지 포함돼 있다. 남북 교역 규모는 외환위기에 따른 국내 경기 침체로 1998년 일시적으로 2억달러대로 떨어졌던 때를 빼곤 줄곧 증가세를 유지했다. 남북 교역 실적은 1999년 다시 3억달러대를 회복했고, 2000년 4억달러를 넘어섰으며, 지금은 10억달러를 웃돌고 있다. ‘정치’라는 외생변수에 의해 돌파구가 뚫리고 그 외생변수에 따라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경협 확대 분위기의 대세는 꾸준히 이어졌던 셈이다.

단순교역에 머물던 초창기 남북경협 구도에 ‘위탁가공 교역’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 것은 1992년부터였다. 그해 10월 코오롱상사가 셔츠 6200벌을 반입한 게 대북 위탁가공의 첫 사례로 기록돼 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2001년에 출간한 에서 위탁가공 방식의 출현을 단순교역의 한계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풀이한다.

“정치적 화해보다 한참 더 나아갔다”

“남한 기업들은 북한 시장 개방으로 많은 개발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환상에 불과했다. 금, 아연괴로 대표되는 지하자원과 농수산물이 북한의 최고 상품일 정도로 교역 상품에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남한 기업들은 저렴한 인건비와 관세 혜택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위탁가공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게 됐다는 것이다. 위탁가공 교역은 지금도 급증하고 있다. 1992년 83만9천달러 수준에서 2000년 1억3천만달러로 높아졌으며 2006년엔 2억5천만달러에 이르렀다. 지난 한 해 위탁가공 교역 실적은 전체 남북 교역의 약 20%(18.7%)를 차지한다.

‘교역’을 중심으로 한 남북 경협이 ‘직접 투자’ 단계로 옮아가는 모습은 2000년 정상회담 뒤부터 뚜렷해지지만, 그 싹은 이보다 훨씬 전인 1995년부터 돋고 있었다. (주)대우는 그해 5월 통일부로부터 투자 형태의 남북협력 사업 승인을 받았다.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와 제휴해 남포 공단에서 셔츠와 가방, 재킷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앞서 정부는 경협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업종·규모를 일정하게 묶는 조건으로 남한 기업의 ‘북한 투자’를 허용했다. 1차 상품, 의류 분야에 국한된데다 물류비까지 과다한 단순 교역이나 임가공 무역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직접 투자 단계에 접어든 남북경협에 또 하나의 커다란 획이 그어진 것은 1998년 6월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이었다. 이는 현대의 금광산관광 사업 개시,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개성공단 조성으로 이어졌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대우그룹이나 다른 기업들에서 이미 대북 투자에 나선 상태였지만,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경협에 따른) 헤택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면서 장기 개발권을 받아낸 건 현대였고 관광사업, 공단 조성에 이어 제조업에까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임 위원은 “어떤 면에선 경제협력이 정치적인 화해보다 한참 더 나아갔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환경 조성에 뒤따라가는 이전까지의 경협과 달리 경협 추진이 오히려 정치적인 화해 국면을 이끌고, 이는 다시 새로운 형태의 경협으로 확대 발전됐다는 것이다.

2000년 6·15 공동 선언 뒤 남북경협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공식화의 특징을 강하게 띠었다. 이때 남북 경추위 같은 경협 협의 창구가 열리고 투자 보장에 관한 합의서, 이중과세 방지에 관한 합의서, 상사 분쟁 조정에 관한 합의서, 청산 결제에 관한 합의서가 마련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선언문 서두에 ‘6·15 공동 선언을 재확인’한다고 돼 있는 것처럼 경협 분야 역시 대체로 2000년 정상회담의 성과를 잇고 확대 발전시켜나가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임원혁 연구위원은 “기본 합의 사항들 자체가 ‘질적 도약’이라기보다는 사실 1차 정상회담 이후 진행돼온 것을 확대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은 이번 선언의 경협 분야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대목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안변·남포 조선산업협력 단지 건설을 꼽았다. 안변·남포 단지 건설은 새롭게 제기돼 합의에 이른 것이고, 서해평화협력지대는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풀어 경협을 추가로 확대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상호 호혜’의 의지 구체적으로 담아

동용승 팀장도 “남북경협의 단계가 도약했다는 점을 찾기는 힘들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도약이라기보다 차기 정부 출범에 앞서 경협의 단절을 막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합의문의 경협 부문에서 개성공단에 포인트(강조점)가 모여졌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또 서해평화협력지대 같은 새로운 콘텐츠(내용)를 창출해 차기 정부에서 논의할 구조를 만들었다.” 동 팀장은 “회담 채널을 격상시키고 재정비한 것도 다음 정부로 이어지도록 한 노력”으로 풀이했다.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같은 중공업 분야,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추진 등 SOC 투자로 한 단계 높은 새로운 경협 국면을 맞게 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하드웨어일 뿐이며, 그걸 운영할 소프트웨어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소프트웨어 없이는 하드웨어 마련조차 계획대로 추진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질적 도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런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10·4 공동선언의 경협 분야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들어 ‘북-미 관계’라는 외풍에 휘말리면서 김대중 정부 때보다 남북경협이 후퇴한 듯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협력관계를 확대 유지하는 의미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이번 선언에서는 투자 분야의 남북 창구가 명료해져 직접적인 대화를 촉진하고 있다. ‘퍼주기 논란’을 낳는 일방적인 경협보다 양쪽 모두 득을 보는 ‘상호 호혜’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대목도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북한교통정보센터장)는 “여태까지 북에 대한 인프라(기반시설) 지원은 1회성이자, 지원성이었다”며 “남북 경제공동체 정신에 입각한 이번 합의로 남한 쪽은 북한 투자 기회를, 북한은 경제발전의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개성~신의주 철도 사업이나 개성~평양 고속도로 사업 같은 경우 남북 공동 이용이란 걸 전제로 하고 있다. 남북이 공동 이용하고 물동량과 부가가치가 발생하면 북한한테서 반대급부를 받겠다는 것이다. 상호 호혜적으로 간다는 의지가 담긴 가시적인 성과다.” 10·4 선언 경협 분야에 큰 원칙으로 제시된 ‘공리공영’과 ‘유무상통’(有無相通·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함)의 원칙이 구체적인 내용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뜻이다.

안 박사는 “남북경협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온 물류 분야에서 기대 이상의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며 “11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군사 보장’ 합의(철도·도로 등의 경제적 이용에 대한 군부의 동의)가 이뤄지면 한층 가시적 성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항만 개발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한국항만기술단의 심형보 기획조정실장은 “대규모 투자에서 ‘옆집’(중국, 러시아)을 거치지 않고 ‘앞집’(북한)과 곧바로 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장기적인 계획 아래 추진해야 하는 기반시설 확충 분야에서 지금까지는 북쪽의 대화 창구가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인지, 육해운성(남한의 건설교통부·해양수산부에 해당)인지 확실치 않았는데, 부총리급의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설치로 이같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설명이다. “대규모 투자 업무에서 북한 쪽과 직접 만날 창구가 분명하지 않아 중국, 러시아를 거치는 우회적인 방법을 썼는데, 직접 북쪽과 접촉하는 창구가 생긴다. 공동위에 우리의 (투자) 의제를 줘 직접 협의하게 한다는 것이다.”

“금방 달리질 것이란 기대는 금물”

올해로 15년째 대북 사업에 몸담고 있는 유완영 유니코텍코리아 회장은 “북쪽 실무그룹의 준비 상태를 감안할 때 두 정상 간의 만남으로 (남북경협의) 분위기가 금방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란 기대는 금물”이라면서도 “남북경협이 좀더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 진행된 상황을 보면, 남쪽이 도와야 북한의 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을 (북한 쪽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경협이) 김대중 정부 때보다 싸늘해졌는데, 이번 정상회담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것으로 본다.” 유 회장은 “북한의 자원을 단순히 값싸게 들여오는 게 아니라 남한의 기술과 자본을 들여 북한 쪽과 공동으로 개발해 서로 이익을 얻는 길고 안정적인 ‘상생’의 자세로 가다 보면, 경제적 이익을 얻고 결과적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에도 각자 조금씩 기여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재정 부담 설왕설래

한나라당 ‘퍼주기’ 비판 소리 높여…얼마나 되고 어떻게 조달할까

남북 경제협력 확대·발전에 따른 추가적인 재정 부담은 얼마나 될까? 남북 화해 분위기에 대한 속마음의 찬반을 떠나 모두에게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숙제는 합의에 따른 재정적인 부담일 것 같다. ‘2007 남북 정상선언’에서 경협 분야가 핵심을 이룸에 따라 재정 문제는 자연스레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예의 그 ‘퍼주기 시비’가 다시 불거졌다. 정상회담에 대해 ‘환영’과 ‘비판’이 뒤섞인 전날의 논평 분위기가 비판 쪽으로 옮아가는 기색이었다. 강재섭 당 대표는 “이름만 경협이지 일방적으로 북쪽에 지원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엄청난 돈의 국민 부담도 만만치 않다”며 “대선에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당장 거두라”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대한민국이 얻은 것은 추상적 선언 몇 개에 불과하고 북한에는 경협을 위장해 엄청나게 많은 퍼주기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반면, 같은 날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정부 쪽의 합동 브리핑에서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강 하구 공동 이용은 골재 채취를 이용하고, 경제특구 확대와 백두산 관광, 조선산업단지 조성은 민간이 상업적 베이스(기준)에서 추진하면 된다”며 “정부는 민간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인프라(기반 시설) 차원에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추가적인 재정 부담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권 부총리는 “일부 재정자금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국가 전체의 이익이 되는 선에서, 또 우리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7 남북 정상선언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서 이번에 합의된 경협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할 경우 자금 소요는 최대 112억달러(10월4일 환율 기준 10조2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5년 분할 투자할 경우 연간 투자액은 북한 국내총소득(지난해 256억달러)의 8.75%, 남한 국내총생산(GDP)의 0.25% 수준이다. 연구원은 경협 사업의 추진을 위한 재원 소요 규모는 크지만 국내외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나 ‘개발펀드’ 조성, 국제 지원자금 유치를 통해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재정 부담이 많다, 적다 얘기할 계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체적인 사업 규모가 곧바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사업별·투자 시기별·사업 주체별로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동 팀장은 “재정 부담이 얼마나 될 것이냐 하는 차원으로 보지 말고, 현재 진행되는 사업을 어떻게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시키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 시기와 주체별로 다를 수밖에 없는 미래의 재정 부담을 둘러싼 왈가왈부는 무익하고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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