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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가치? 어디에 그런 게 있나

등록 2007-09-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은이 바르지니 데팡트 인터뷰…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나는 여자로서 케이트 모스(영국의 슈퍼모델)보다는 킹콩 쪽에 가깝다. 언제나 너무 공격적이고 시끄럽고 뚱뚱하며 거칠고 무뚝뚝하고 씩씩하다.” 의 저자 비르지니 데팡트가 자기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그녀가 1993년에 쓴 성매매 여성과 성폭력 피해 여성이 내달리는 소설 는 프랑스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내놓은 은 ‘못난 여자들’을 위한 에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우아하고 고상한 ‘잘난 여자들’을 위한 책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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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만드는 현시대 최고의 책”이라는 호평과 “한마디로 쓰레기”라는 혹평을 동시에 듣고 있다. 이 책은 “여성성은 집단적으로 열등하게 처신하는 습관을 갖게 한다”며 “노예 근성의 기술”이라고 단언한다. “어느 곳이든 남자들이 있나 살피고 그들 마음에 들기를 원할 것,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말 것, 다리를 벌리고 앉지 말 것, 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 요직에 앉으려 하지 말 것,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을 것, 너무 익살맞게 굴지 않을 것….” 이렇게 기 쓰고 산들 절대 다수의 여자들은 ‘미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차라리 가슴팍 두드리고 본성대로 사는 킹콩이 되자고 선동한다. 과연 그럴까? 그녀의 생각을 서면 인터뷰로 들어봤다.

대결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당신은 “미니스커트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외출하면서 남성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성에서 프롤레타리아”라고 선언한다.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버림으로써 잃어버린 것은?

=수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잃어버렸다. 내가 ‘여성스러워 보이기’를 포기한 건 정치적 결정은 아니고 취향을 반영한 실용적인 결정이다. 나는 쇼핑을 싫어한다. 빨리,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방송 출연 때 말고는 화장도 안 한다. 주름을 없애려고 화학약품이 섞인데다 비싼 ‘링클케어 크림’을 바르지도 않는다. 나는 약간 뚱뚱하지만 먹는 걸 좋아하고, 다이어트는 별로 하지 않는다. 파리에서 여성은 ‘여성스러워 보이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난 그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그 결과 아웃사이더가 됐다.

여성성과 온순함의 증거로 자신을 치장하는 여성들은 인질범과 일체감을 느끼는 스톡홀름 신드롬에 사로잡힌 거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는데, 어깨가 파인 옷과 귀고리로 멋을 내는 여성들이 모두 신드롬에 사로잡힌 것인가?

=섹시해 보이도록 옷을 입는 건 돈 많아 보이게 입거나 펑크족처럼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문제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한국 방송은 본 적이 없지만 프랑스 방송에 나오는 여자들은 가슴만 보인다. 가수들은 비키니를 입고 노래를 부른다. 질문해보자. 매체에서 다른 종류의 여자를 쉽게 볼 수 있나? 굉장히 못생긴 여자가 노래 잘한다는 걸로 대접받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있다면 그 사회는 굉장히 ‘나이스’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가 주류 문화를 참을 수 없는 이유다.

여자가 편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으며, 권력과 요직을 탐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드러내다간, 금세 적들이 와글거린다. 굳이 킹콩임을 밝혀 피해를 자처할 필요가 있을까?

=뭘 선택하건 본성과 관련이 없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효율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의 문제다. 어떻게 돈을 벌까, 어떻게 집세와 병원비를 감당할까, 약자에게 더없이 혹독해지는 이 공격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을 돌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적을 무서워하고, 공격성, 권력에 대한 욕심을 숨기는 것도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제시하는 전략은 다르다. 나는 모든 여성이 갈등, 파워게임, 대결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실제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여성들

타고나길 ‘참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은 그냥 조용히 살면 안 될까?

=물론 괜찮다. 나는 모두가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쓰지는 않았다. 다만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봤지만 그들이 모두 참하고 부드럽지 않았으며 그게 ‘여성성’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정부 관료라면 더욱 그랬다. 그들은 새로운 여성성을 만들고 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관용, 평화, 연대, 돌봄 등의 가치는 일부 여성들이 ‘용감하게’ 여성성을 발휘해 가치가 드러난 덕목이다. “여성성이란 창녀되기이고 노예 근성의 기술”이라는 당신의 주장은 남녀관계에만 국한해서 여성성을 협소하게 본 거 아닌가.

=관용, 평화, 연대, 돌봄이 여성적 가치인가? 어디서 그런가? 신문, TV, 영화, 소설, 노래 가사 등을 아무리 열심히 봐도 그런 정신을 가진 여성이 그려진 걸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건 오직 젊고 섹시한 여성, 가슴 큰 여성뿐이었다. 우리가 보는 여성들은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한 여성이나, 아이들을 학대하는 여성, 혹은 적을 파멸시키는 여성이다. 군인이 됐거나 선거에 당선된 여성이 가끔 등장하기도 한다.

스스로 못생겼다는 것을 자주 강조한다. 당신은 정말 자신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나?

=만약 책에서 “나는 못생긴 편이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다면 나에 대한 비판은 모두 외모에 관한 것이었을 거다. “남자들이 못생긴 자기를 안 좋아해서 저런다” “뚱뚱해서, 나이가 많아서, 키가 커서 저런다” 등. 프랑스에서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쓰면 항상 같은 반응을 겪는다. 매력적이지 않은 부분을 강조하는 건 내 권리이자, 방어기제다. 사람들이 모욕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렇다고 인정해서,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비판을 약화하는 거다.

예쁜 여자는 킹콩걸이 될 수 없나?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굉장히 아름다운 동시에 보스 기질을 가지고 있다. 마돈나도 아름다운 외모에 강한 캐릭터다. 조디 포스터, 시거니 위버, 앤젤라 데이비스 등 강한 기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여성의 목록은 길다. ‘킹콩걸’과 외모는 아무 관련이 없다. 못생긴 여자들도 굉장히 귀엽고 ‘여성스러운’ 행동을 한다.

남성들의 놀라운 침묵

펑키들 말고 당신이 중요하게 꼽는 역할모델이 있나?

=나는 조세 다이안(프랑스의 영화감독, 로 데뷔)을 정말 좋아한다. 그녀를 TV에서 볼 때마다 낄낄댄다. 남들이 보기에 온순하지 않은, 전혀 ‘훌륭하지’않은 여성이다. 동시대를 살아서 부끄러운 사람은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뽑은 프랑스 사람들이나,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 사람들.

당신에게 남자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남자들이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 울면 어리석다고 여겨지고, 성기의 크기로 성적 능력을 평가받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으면 안 되고, 늘 투박한 신발만 신어야 한다는 등 그들에 대한 다양한 억압에 왜 그들은 관대한 걸까? 나는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을 때에만 온순해진다는 사실이 항상 놀랍다. 아울러 그들의 침묵이 놀랍다.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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