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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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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마음 풀어주는 기업들

등록 2007-06-15 00:00 수정 2020-05-03 04:25

사내에 심리상담실 차리거나 전문업체와 계약…스트레스 관리가 기업의 숙제로 떠올라

▣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해당 기업체들에도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직원들의 스트레스 탓에 기업의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경우 인력 손실에서 나아가 회사 이미지 실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어서다.

국내 업체들에서 심리상담실을 따로 두어 임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외환위기라는 유례없는 충격파를 겪은 뒤 직장 문화가 크게 바뀐 게 몇 년의 시차를 두고 개인들의 정신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쳤을 법하다.

“한 사람의 스트레스가 전체 분위기 저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직원 심리상담실을 차린 사례로는 삼성전자가 꼽힌다. 이 회사는 2001년 1월부터 서울, 수원 등의 사업장에 차례로 ‘열림상담센터’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구미, 기흥, 천안, 온양 등에도 잇따라 설치된 열린상담센터는 현재 9개(8개 사업장)에 이른다. 홍경선 삼성전자 과장은 “각 센터별로 10명 이상의 전문 상담원을 두고 있고 주로 대인·가족 관계 상담을 중심으로 임직원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열린상담센터 설립 이전엔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육아·모성 관련 상담을 위주로 해오다 남자 직원들까지 포괄하는 열린상담센터로 확대했다.

LG전자가 직원 심리상담실을 설치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그해 4월 서울 가산동 ‘MC연구소’에 ‘마음 나눔방’이라는 이름으로 심리상담실을 처음 열었으며, 연구원들의 높은 호응도를 반영해 2006년 2월에는 서울 우면동 ‘R&D(연구개발)캠퍼스’에 두 번째 상담실인 ‘맘풀이’를 열었다. R&D 부문 연구원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조직구성원 사이의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사 쪽은 밝힌다.

LG전자의 심리상담실에서는 연구원들이 전문 상담역의 도움을 받아 심리건강·성격검사 등 다양한 테스트를 비롯해 분노 조절, 스트레스 관리, 대인관계 향상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스트레스 완화와 재충전을 위한 아로마테라피(향기요법), 음악감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연구원들이 언제든 인터넷 예약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상담실이 없는 각 지역의 연구소에는 전문 상담역을 보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SK(주)는 2005년부터 ‘하모니아’라는 직원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동부화재는 지난해 10월 사내 직원상담소를 개설하는 등 직원들 스트레스 챙기기는 이미 꽤 많은 사업장들로 퍼져나간 상태다.

LG전자 가산동 MC연구소의 전재영 상담실장은 “직원 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직 전체의 분위기가 저하될 뿐 아니라 개인 스트레스가 재해로 연결되는 경우를 감안하면 손실은 상당히 크다”며 “금전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손실과 이미지 손상을 감안하면 심리상담의 필요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별도의 시장이 형성돼 전문업체가 생겨나는 움직임이 2~3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점도 눈길을 끈다. 국내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임직원들의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대표적인 업체로는 다인C&M과 외국계인 휴먼다이나믹이 꼽힌다.

사내 상담은 비밀 보장 쉽지 않아

홍콩계 휴먼다이나믹이 한국영업소를 두어 직원심리 상담을 중심으로 한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s·Employee Assistance Programs)을 선보인 것은 2004년 1월이었다. 조은혜 휴먼다이나믹 컨설턴트는 “일반 심리상담뿐 아니라 인사 관련 컨설팅, 인재관리에 관한 상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며 “파트타임을 포함해 8명의 전문 상담역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휴먼다이나믹과 상담 계약을 맺고 있는 업체는 현재 29개사에 이른다. 국내에 진출한 미국, 영국계 자회사들에서 시작해 GS칼텍스, 유한킴벌리, 하이마트, 한국전력기술 등이 휴먼다이나믹의 상담 서비스를 받고 있다. 조은혜 컨설턴트는 “(상담 서비스를 시작한) 2004년엔 고객사가 5개뿐이었는데, 그동안 크게 늘었다”며 “공기업 중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데가 많다”고 했다. 심리상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용률도 높아지고 있다. 휴먼다이나믹은 “2005년에는 고객사 직원들 가운데 평균 5.5~6% 정도만 상담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지난해엔 7%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다인C&M은 2005년 법인 형태를 갖춰 본격적인 근로자지원 프로그램을 내놓기 시작했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진 위주의 프로젝트 개념으로 시작한 2003년의 EAP코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은행,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한국수력원자력, 현대하이스코,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과학문화재단 등이 다인C&M의 고객사들이다. 강민재 다인C&M 컨설턴트는 “이메일이나 전화 또는 대면 상담을 통해 정신건강 교육뿐 아니라 재테크, 자녀 양육, 부부 교육 서비스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인C&M은 휴먼다이나믹에 견줘 한국적인 문화를 바탕에 둔 상담을 하며, 의사들로 이뤄진 자문위원단이 의학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휴먼다이나믹이나 다인C&M 같은 전문업체에 맡기는 ‘외부 상담’은 임직원들의 비밀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사내 상담에선 상담을 받은 사실이 비교적 쉽사리 노출돼 뜻하지 않은 사생활 침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은혜 컨설턴트는 “(‘내부 상담’ 체제에선) 회사 소속 상담자들에게 정신건강, 부부관계 같은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기가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부 상담’ 시스템에도 문제점은 있다. 상담을 받은 사실이 알려질 가능성은 적을지라도 일단 노출될 경우 사생활 침해의 위험성은 훨씬 더 심각하다. 예컨대 비교적 단순한 스트레스 증상으로 상담을 받은 사실이 치명적인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식으로 와전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재영 실장은 여기에 “기업 차원에서 임직원 개개인들의 위기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도 외부 상담의 단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임직원 정신건강 챙기기가 얼마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는 어렵다.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시작된 지 오래되지 않은데다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경쟁 격화로 치닫는 기업문화의 흐름으로 보아 필요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있을 뿐이다. 강민재 컨설턴트는 “고객 회사들에 보고할 데이터는 나름대로 확보하고 있지만, 공식화해 외부로 알릴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직과 개인을 잇는 제 3의 연결고리

전재영 실장은 “(LG전자는) 비밀 보장은 물론이고, 미혼 여성 연구원들을 위해 성격 궁합을 봐주는 식의 이벤트를 통해 유대감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대인관계 갈등, 대화법 등에 관한 개인별 상담의 호응이 높아 부서 차원의 교육으로 이어지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스트레스는 조직과 개인의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심리상담은 그 둘 사이를 잇는 제3의 연결고리다.” 전 실장은 “별도 부서를 두거나 외부 전문업체에 맡길 여력을 갖추지 못한 회사들도 사내 신문고 같은 고민 표출의 통로를 두거나 선후배 사이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식의 환경 조성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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