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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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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이여, 팬시상품 만드는가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미술품 경매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전시 기획자 의견에 휘둘리며 “눈에 튀고 보자”란 조급증까지

▣ 손성진 소마미술관 큐레이터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2007년 말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사를 최근 읽었다. 요즘 경기 불황이란 말을 매일 습관처럼 듣고 살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이 선진국 문턱을 넘고 있구나 하는 희망을 보기도 한다.

명분 없는 대형 이벤트를 자제하라

새내기 선진국의 기준이라는 ‘2만달러’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안정된 신용등급을 인정받는다면, 국민 개개인들에게는 먹고살고, 자식 교육하는 지출 외에 여가생활에 눈을 돌리게 되는 기점이 될 것이다. 여가생활의 여러 양상 중에서도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이들이 급속히 늘어난 것은 그런 조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최근 미술품 경매시장이 연일 최고 낙찰가 기록을 깨뜨리면서 미술품 구입은 여가 문화를 넘어 재테크 수단으로까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술동네에서 일하는 글쓴이는 이런 흐름이 반갑다. 하지만 정말 달갑지 않은 단면도 함께 감지하고 있다. 예술활동의 미래인 이 땅의 젊은 작가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낯선 변화가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두 가지 물음을 던지고 싶다. 지금 미술판의 전시 기획자와 화랑들은 이벤트 업체와 얼마나 다른가. 젊은 작가들은 팬시용품과 캐릭터 상품을 주문 제작하는 단순 기능공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두드러진 특징이 비슷하게 발견된다. 지독하게 많이 그리기, 엽기적인 표현, 도상의 변이, 해체, 재창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되려는 등등…. 면밀히 관찰해보면, 대개 시각적인 볼거리에만 집착하는 경향, 쉽게 말해 “눈에 튀고 보자” 란 조급증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에는 튀는 그림을 주문하는 상업 화랑들의 구실도 한몫하는 듯하다. 최근에 개최되는 국제 아트페어(미술품 판매 전람회)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화랑들이 주목해 지원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다. 현장에서 만난 젊은 작가들은 기획자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라다니는 듯한 느낌도 뚜렷했다.

물론 작품이 상품처럼 대중화하면 더욱 좋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품의 권위를 주장하거나, 상품의 경박스러움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상품은 대중적 디자인과 쓰임새로, 작품은 본연의 영역에서 그만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덴티티가 물신주의의 광풍에 뿌리째 흔들리는 형국이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전시 기획은 잘 짜인 설계도와 같아야 한다. 과거와 동시대를 아우르는 문제의식, 교육적 측면, 볼거리, 미래 비전 등…. 이런 계획과 역량 없이 예산이 많이 주어졌다고 전시를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 풍족하면, 더 좋은 기획이 되겠지만, 자본이 여러 숙제들을 다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젊은 작가들은 명분 없는 대형 이벤트를 구분할 안목이 필요하다. 지원비를 많이 준다는 이유에서거나 자신보다 유명한 작가들이 같이 초대되어 자기 위치가 업그레이드되는 줄 착각하고, 여기저기 단체전에 불려다니다 보면, 개념 없는 아트상품 제작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작가는 긍정적 의미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작업해야 한다. 지나친 아집도 문제지만, 논리적 주장과 최소한의 고집은 필수적이다. 좋은 작품에는 볼거리 외에도 고집스런 철학과 내용의 서사, 미술사적 의미 등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신주의 광풍에서 자생력 키우기

청년 작가들은 물신주의의 광풍 속에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생력은 작품과 생활을 지켜주는 방벽이자 돌파구다. 안타까운 것은 그 자생력이 대단히 추상적이어서 개인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생력이라는 안전벨트를 빨리 차는 것이야말로 오래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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