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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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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을 협상할 필요가 있었나

등록 2007-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북-미 관계 정상화되면 수출길 열려…그 ‘신기루’를 얻기 위해 무엇을 내줬을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4월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국 쪽 협상 대표단은 여러 차례 ‘이것’을 언급했다. 하지만 미국 쪽 대표단은 애써 ‘이것’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협상 타결 나흘이 지난 4월6일까지도 한-미 두 나라의 공식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이것’은 뭘까? 바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다.

대체 누구 얘기가 맞는 걸까

정부는 개성공단과 관련해 한-미 두 나라가 “역외가공 지역 지정을 통한 특혜관세 부여를 원칙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개성공단 생산품에 대한 특혜관세 부여를 협의할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설치하고, 1년 뒤부터 매년 일정한 기준이 되면 역외가공 지역을 지정할 수 있는 별도의 부속서를 채택하기로 했다는 게다. 또 “협정문에 ‘개성공단’이란 명시적 표현만 없을 뿐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받아냈으며, 역외가공 지역에는 개성을 포함한 다른 북한 지역도 포함될 수 있어 앞으로 활용도가 더 높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 쪽 협상 책임자인 캐런 바티아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협상 타결 이후 줄곧 “개성공단은 이번 협정에서 빠져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4월4일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현재의 느슨한 협정 규정에서 개성공단 제품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협정의 원산지 규정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에 들어올 때 이번 무역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도대체 어느 쪽 주장이 진실에 가까울까?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한-미 두 나라가 각각 모호성을 활용해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미국 쪽에선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에 대해 얘기한 바는 없고 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치만 합의했다고 하는 반면, 한국 쪽에선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개성공단이 포함됐다고 간주하고 있다는 게다.

미국 처지에선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아무것도 합의해준 게 없지만, 한국 입장에선 개성공단 제품의 대미 수출길을 열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할 최소한의 근거는 확보한 셈이다. 개성공단 문제를 두고 서울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혼란’의 원인은 결국 현재와 미래란 시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양쪽 주장 모두 ‘일면의 진실’은 담고 있다는 얘기다.

FTA 협상과 관련한 개성공단 논란의 본질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찾아진다. 개성공단 문제 자체가 한-미 FTA 협상 대상이 돼야 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개성공단은 애당초 FTA 협상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 북-미 관계 정상화 차원에서 고민할 문제였다”며 “FTA 협상단이 합의한 내용도 사실상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얘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의 ‘시험관 아기’로 불린다. 첨예한 군사적 긴장감이 넘쳐나던 개성에 공단을 조성해 남과 북이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는 이정표란 얘기다. 특히 늘어만 가는 부지·물류비와 인건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개성공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개성공단이 처한 가장 큰 어려움은 판로 확보다. 가장 큰 해외 시장인 미국 진출이 사실상 가로막힌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 가까운 장래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자칫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덧붙여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컴퓨터 등 각종 전략물자의 반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것도 개성공단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두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개성공단의 장밋빛 미래는 한갓 꿈에 불과하다.

‘노동환경 개선’이라는 추가 조건

FTA는 기본적으로 관세 철폐를 뜻한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국가와 정상교역 국가(최혜국) 대우를 하는 국가에는 ‘칼럼 1’(정상) 관세를 부과하고, 그 외의 국가에 대해선 ’칼럼 2’(보복) 관세를 부과한다. ‘칼럼 2’ 관세는 미국이 적성국이나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나라에 부과하는 초고율 관세로 북한과 쿠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13 베이징 합의에 따라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배제 조치가 이뤄진다면, 한-미 FTA가 없더라도 개성공단 제품의 대미 수출길은 자연스럽게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북-미 관계 정상화로 북한의 대미 무역 지위가 달라지면 초고율 보복관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럴 경우 설령 개성공단 제품이 북한산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미국 시장 진출에는 큰 어려움이 없게 된다.” 김연철 교수는 “결국 개성공단의 미래는 북-미 관계에 달린 셈”이라며 “이 문제는 한-미 FTA 협상에서 다룰 게 아니라, (2·13 합의에 따라 구성된) 북-미 관계 정상화 워킹그룹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정부가 밝힌 내용만 보더라도 ‘역외가공 지역’으로 지정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노동 환경 개선’이란 꼬리표가 달렸다. 미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미 지난 3월 말 노동권·환경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새 무역정책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개성공단 제품의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선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함께 넘어야 할 산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 문제는 어쩌면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우리 협상팀이 미국 쪽에 내준 건 대체 뭘까?



[인터뷰_개성공단가공기업협의회 김기문 회장]


“미국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고집”

역외가공 인정이 국제 관례, 유보적 단서 있지만 결국엔 실현될 것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빠르면 좋겠지만, 늦어도 2~3년 안에는 될 것으로 본다.”
한-미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미국 수출을 추진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개성공단 입주 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개성공단가공기업협의회의 김기문(52) 회장은 “100% 만족은 아니지만, 고무적인 상황을 끌어낸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아울러 맡고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하려는 기업들은 한-미 FTA 협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안 된다고 하면 개성공단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데가 많다. (이번 협상으로) 중·장기적으로 되겠다 싶을 테니 개성공단 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 회장은 국제적인 파급 영향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경제 패권을 갖고 있는 미국과 만들어놓은 모델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맺는 FTA에도 파급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도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는 미국의 ‘정치적인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국내 기업들이 60% 이상 투자해 단순 조립하는 개성공단 같은 경우 ‘역외가공’으로 인정받는 게 국제적인 관례임에도 미국은 막판까지 인정하지 않을 것처럼 고집했다는 것이다. 끝까지 버틴다는 건 국제 관례상 미국으로서 뒤통수가 가려웠을 것이라고 김 회장은 덧붙였다. 개성공단 관련 협상에는 북-미 관계에 따른 유동적인 단서들이 붙어 있어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실현될 것으로 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개성공단의 실상에 대해 김 회장은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때도 정상적으로 잘 운영돼왔다”고 호평했다. 김 회장이 대표로 있는 시계 업체 로만손의 경우 북한 노동자 수가 초기의 2배를 웃도는 950명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번 협상 타결에 입주 업체들이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고 전하며, 부지 추가 분양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시범단지에 입주한 공장 15곳을 비롯해 본단지 1단계 1차 입주기업 7곳 등 모두 22곳이 가동 중이다. 여기에 북쪽 근로자 1만28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미뤄뒀던 1단계 잔여 부지 53만 평을 이달 말께 분양하면, 개성공단 ‘1단계 프로젝트’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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