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결 직후부터 비판 퍼부으며 협정문 조정 시도…양국 정부 서명 뒤에도 ‘보완’ 가능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미 두 나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4월2일 끝이 났다. 하지만 협정문의 전체 내용은 5월에나 공개될 게다. 한 달 남짓한 그 사이에 워싱턴에서도, 서울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4월2일 한-미 FTA 타결을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타결된 협정문의 각 조문에 대한 세부 조정 및 법률 검토 작업을 거쳐 최종 협정문을 확정짓게 된다. 협정문 조문은 실질적인 내용 변경 없이 기술적인 조정만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협정 내용 변경을 촉구하는 미 의회의 거센 압력이 협상 타결 소식과 동시에 태평양 건너에서 불을 뿜고 있기 때문이다.
미시건주 출신 의원들 한목소리
협상이 타결된 4월2일 미 하원 세출위원회에 딸린 무역관계소위원회 위원장인 샌더 레빈 의원은 1쪽짜리 짤막한 성명을 내놨다. ‘한국의 꽉 막힌 자동차 시장 개방에 실패한 FTA는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이란 도발적인 제목이었다. 레빈 의원은 성명에서 “미 의회는 대외무역을 관장할 헌법적 권한이 있으며, 이를 행정부에 양허했다”며 “행정부는 그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의회 다수당의 새로운 무역 정책을 존중해야 한다”고 우선 지적했다.
미 헌법은 행정부가 아닌 의회에 대외무역 관할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양자 무역협정을 더 손쉽게 체결해나갈 수 있도록 미 의회는 지난 1960년대 이후 행정부에 ‘한시적 재량권’을 관례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 막바지에 협상 시한 연장 문제를 두고 관심의 초점이 된 ‘무역촉진권한’(TPA·또는 신속체결권)이 바로 그것이다. 레빈 의원의 지적대로 미 행정부는 이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의회와 긴밀한 협의·협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의회는 한국과의 FTA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 농산품과 공산품 수출을 겨냥해 쳐놓은 철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고 밝혀왔다. 특히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의 82%에 이르는 134억달러 상당의 자동차 시장 개방을 강조했다.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하지만 미국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 시장에서 아무런 장벽이 없이 판매될 수 있는 진정한 양방향 무역을 이뤄내지 못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미시건주 출신인 레빈 의원은 “의회가 협정문을 검토하는 기간 동안 미국 제품의 한국 시장 접근이 실질적으로 확보되는 쪽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단연코 협정안에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빈 의원을 시작으로 미 상하 양원의 미시건주 출신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협정안에 대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 데비 스테이브나우 상원의원은 미 의회 전문지 과의 인터뷰에서 “협정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 표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의회 통과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한-미 FTA의 의회 통과를 제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여기에 포드와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업계는 물론 미국 최대 노동단체인 미국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와 자동자노동자연합(UAW) 등 노동계까지 나서 한-미 FTA 비준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기술적인 조정 작업’ 어느 정도일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다.” 같은 날 상원 재정위원장인 맥스 보커스 의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커스 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지역구인 몬태나주에서 열린 한-미 FTA 5차 협상 당시 현지를 방문해, 한국 협상단에 몬태나산 쇠고기 스테이크 시식을 권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바 있다. 그는 성명을 내어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이 끝내 미국산 쇠고기 금수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한-미 FTA 협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아니 협정안이 상원에 계류되는 것 자체를 막겠다. 뼈가 있든 없든, 사육 연수와 관계없이 몬태나산 쇠고기가 한국 시장에서 완전한 접근권을 갖기 전에는 어떤 무역협정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미 협상 초기부터 부시 행정부와 한국 정부에 공히 지적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와 한국 정부 모두 한-미 FTA 협상안 통과에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곧 깨닫게 될 것이다.”
하원 세출위원회 무역소위원회와 상원 재정위원회는 미 상하 양원에서 대외무역 정책을 관장한다. 각각 자동차 산업과 목축 산업의 배후 지역 출신인 이 두 사람이 한-미 FTA에 반대한다면, 의회 비준 과정이 어려울 것임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미 의회가 한-미 FTA를 부결시킬 가능성이 높은 걸까? 동의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은 “일부 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선 다른 업계에서 압도적 찬성 여론이 나와줘야 한다”며 “백악관 쪽의 요청이 있을 경우, (한-미 FTA로 혜택을 보게 될) 다른 업계에서 찬성 여론이 끓어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난 2월2일 미 의회조사국(CRS)이 내놓은 ‘무역촉진권한: 이슈, 선택지 그리고 연장 전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무역촉진권한에 따라 FTA를 체결하기 위해선 협상을 종료한 뒤 협정에 서명할 의향을 90일 이전에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4월2일 협상 타결과 동시에 협정에 서명할 의향이 있음을 미 의회에 통보했다.
대통령의 의회 통보 뒤 30일 안에는 각 산업·부문별로 꾸려진 민간 자문위원단의 협정 분야별 검토보고서가 만들어진다. 검토보고서 제출 시한은 협정문의 전체 내용이 공개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이 기간에 진행될 협정문 조문에 대한 ‘기술적인 조정 작업’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뤄지는지를 확인하긴 쉽지 않다. 레빈 의원이 “협정 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반대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우려를 낳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뭘 할 수 있을까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협정문에 대한 공식 서명이 이뤄진다. 일러야 6월께나 가능할 것이란 게 현재로선 대체적인 전망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서명을 한 뒤에는 협정 내용의 변경 가능성이 극히 줄어든다.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도 미 의회의 ‘압력 행사’는 여전히 가능하다. 미 의회의 강력한 요구를 협정 상대국 정부가 받아들일 경우 ‘부속서한’ 형태로 협정문의 ‘보완’이 가능한 탓이다. 실제로 현재 미 의회에 계류 중인 콜롬비아·페루 등 남미 국가와의 FTA가 노동환경 기준이 미흡하다는 의회의 지적에 따라 보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최종 비준에 이르기까지 미 의회는 고비마다 ‘헌법이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려 들 것이다. 통상절차법조차 없이 지난 10개월여 정부의 일방통행을 두 눈 껌벅이며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 국회는 다가오는 비준 동의 과정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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