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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오스트레일리아여, 지친다 지쳐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기후변화를 둘러싼 국제정치학, 두 ‘온실가스 대국’과 인도·중국의 반응이 관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쟁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 역사의 고빗길마다 어김없이 ‘탐욕’이 부른 음모와 술수가 등장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논쟁은 그래서 정치적이고, 또한 경제적이다.

10년마다 지구촌 대기 온도는 0.13도씩 상승한다. 지난 20년 새 대기 중으로 유입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3배 증가했다. 또 10년마다 해수면의 높이는 3.1cm씩 상승한다. 지난 2월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IPCC·이하 정부간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이를 “명백한 인류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보고서 가운데 가장 ‘분명한’ 어조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각국 대표단의 정치적 개입으로 상당 부분 수위가 조절된 채 공개된 내용”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79년 제1차 세계기후회의부터 공식 대응

영국의 저명한 과학전문지 는 3월10일치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보고서가 정치·경제적 이권이 개입하면서, 최종 보고서 작성 단계에서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보고서 초안을 살펴본 과학자들은 “생태계 파괴로 인해 열대우림이나 토양, 바다의 온실가스 흡입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오는 2100년에 이르면 대기온도가 1.2도가량 상승할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최종 보고서에선 빠졌다”고 전했다.

지구촌 차원에서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에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9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차 세계기후회의(WCC)를 꼽을 수 있다. 오존층 파괴의 원인물질로 알려진 염화불화탄소(CFC)를 규제하기 위해 1987년 채택한 몬트리올의정서도 인류가 공동체로서 환경 문제에 대처한 선례를 남겼다.

이듬해인 1988년엔 유엔의 주도 아래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방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는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를 중심으로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에 끼친 영향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위한 별도 기구 설립으로 이어진다.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어 1990년 제2차 세계기후회의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적인 협약틀을 만들기로 하고,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서 마침내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기후변화협약)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해 지구 온난화를 예방하는 것을 뼈대로 한 기후변화협약은 192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1994년 3월21일 발효됐다.

1995년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1차 당사국 총회에선 협약의 구체적 이행방안 마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당시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200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를, 1997년 열리는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한다”는 내용의 ‘베를린 위임사항’을 채택했다. 이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교토의정서) 채택으로 현실이 됐다.

교토의정서가 공식 발효되면 온실가스 감축 의무 이행 대상국인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일본, 미국,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모두 38개국은 2012년까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을 기준으로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발등의 불로 닥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그에 따른 일정, 이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참여 문제와 ‘선진국’의 부담 정도를 둘러싼 의견 불일치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주정부 차원에서 배출량 규제 결정

가장 큰 골칫거리는 ‘경제대국’ 미국과 ‘석탄대국’ 오스트레일리아였다. 미국은 1850년부터 2000년까지 지구상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29%를 ‘생산’해냈다. 지금도 미국은 해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인구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지난 200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풍부한 석탄자원으로 전력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1인당 한 해 27.2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치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심지어 미국인 1인당 평균치보다 27%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상원은 이미 교토의정서 채택에 앞서 같은 해 6월 일찌감치 “개발도상국에 더 많은 배출량 규제 의무가 부과되기 전까지 교토의정서를 거부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버드-헤이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신념을 가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집권 초기인 지난 2001년 3월 일방적으로 교토의정서 협상을 중단했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으로 화석연료 관련 산업 업계의 입김이 강한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결국 교토의정서는 2005년 2월 기후변화협정 당사국인 이들 두 나라의 참여 없이 발효에 들어갔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이란 점이 명백해졌음에도,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자세는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새뮤얼 보드먼 미 에너지장관은 정부간 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온 직후 “만약 각국 정부가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강력한 제한을 둘 경우,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존 하워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하워드 총리는 보고서 발간 직후 등 현지 언론과 만나 태양력과 풍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을 강조했지만, 교토의정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여전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변화’는 당위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이란 점에 이의를 달기는 쉽지 않다. 연방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미국에선 이미 전국 195개 도시(총주민 약 5천만 명)에서 탄소 배출량을 1990년에 견줘 7% 감축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지난해 8월 말 ‘캘리포니아 지구 온난화법’을 통과시켜, 주내에서 2020년까지 1990년 규모로 탄소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의무화했다.

미 북동부 지역에선 주정부 차원에서 ‘지역 온실가스 구상’(RGGI)을 결성하고,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와 배출권 거래제 등을 도입하기도 했다. 온실가스 구상에는 메인·뉴햄프셔·버몬트·코네티컷·뉴욕·뉴저지·델라웨어·매사추세츠 등 8개 주정부가 참여하고 있으며, 펜실베이니아·메릴랜드 등 2개 주와 워싱턴DC 등도 옵서버로 가담하고 있다. 교토의정서를 전면 거부하고 있는 연방정부로선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새 의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낸시 펠로시 신임 하원의장은 지난 1월 초 개원과 함께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룰 소위원회를 하원에 따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 라이드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도 “온실가스 규제와 관련한 새로운 법안을 올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상원은 이와 관련한 청문회를 조만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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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교토’에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

교토의정서는 오는 2012년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지난 2005년 의정서가 발효된 직후부터 ‘포스트 교토’에 대한 논의가 일찌감치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유럽연합이다. 지난 3월9일 벨기에 브뤼셀에선 27개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오는 2020년까지 △회원국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20% 이상을 재생 가능 에너지로 교체 △교통수단에 사용하는 연료의 10% 이상을 바이오연료로 충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난 1990년 수준에서 20%까지 삭감하는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한 기후변화 대응 방안에 합의했다.

정상 간 합의사항은 일단 정책방향을 담은 ‘백서’ 수준이지만, 각 회원국 정부가 관련 입법을 해나가는 데 길라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협약 마련을 위한 협상장에서 유럽연합 쪽의 기본방침이 될 것임도 분명해 보인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인도와 중국,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도 이에 대한 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거기에 인류의 미래가 걸렸다.



[인터뷰/ 외교통상부 국제경제국 김찬우 환경과학협력관]


“선진국들이 리더십을 보여줘야”

온실가스 감축 협상으로 가는 환경외교, 한국도 ‘포스트 2012’에 대비해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21세기 외교전은 ‘환경’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관통하는 슬로건이 ‘지속 가능 발전’이라는 데 이의를 달기 어렵다. 외교통상부 김찬우 환경과학협력관은 지난 1998년부터 ‘환경외교’ 무대에 뛰어들어 각종 환경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환경외교 참가 보고서 격으로 (상상커뮤니케이션)를 펴내기도 했다. 김 환경과학협력관을 만나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환경외교와 국내의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환경외교는 무엇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 교토의정서의 제1차 공약 기간(2012년까지) 이후(포스트 2012)의 기후 변화 체제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협상은 선진국의 추가 의무 설정을 위한 특별작업반 회의, 장기적 대응방안 모색을 위한 대화, 교토의정서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검토 등 3개 프로세스가 서로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포스트 2012 체제는 의무부담국들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도 포스트 2012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 포스트 2012 체제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비용이 효과적으로 디자인돼야 한다. 교토의정서가 처음에 설계됐을 때 비용 측면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개별 국가의 처지에서 보면 기후 변화 방지라는 대의도 중요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드는 비용이 관건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이 불참하고, 중국·인도 등 거대 배출국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 부담에 부정적이다.
미국의 포스트 2012 참여에 대한 전망과 국내의 대응은 어떤가.
=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기후 변화 체제는 완성되지 않는다. 미국이 연방 차원에서 어느 정도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우리나라도 나름의 기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를 대상으로 제4차 기후변화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상당히 전향적인 내용을 포함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기 전에 의무감축 참여를 선언할 계획은 없나.
= 우리가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며 국제적인 협상 동향도 고려되어야 한다. 아직 이런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은 생각해볼 수 있다.
- 일부에서는 포스트 2012 참여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 장기적으로 저탄소 사회로 가야 한다면 이에 맞춰 대응을 해야 한다. 향후 사회는 기후친화적인 기업이 성장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일례로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9년까지는 현재 186g/km에서 140g/km로 감축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탄소 사회로 이행하려고 한다. 정부가 산업구조를 저탄소형으로 개편하고 기업들도 ‘녹색기업’으로 거듭나야만 미래를 보장받을 것이다.
저탄소 사회로 이행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개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패턴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부터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앞으로 농산물에 ‘GMO(유전자변형농산물) 프리’ 마크를 부착하는 것처럼 각종 공산품에 ‘기후친화 상품’ 마크도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화가 국제정치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상황에 대처하려면 우리의 환경외교도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 등 주요국들처럼 외교부에 기후 변화 협상을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두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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