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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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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강아지, 소송에 뛰어들다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알래스카에 사는 그린피스 활동가 멜라니 더친과 개 쿠퍼의 지구 온난화 소송

▣ 앵커리지(알래스카)·오클랜드(뉴질랜드)=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2월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IPCC)가 발표한 제4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보고서는 “인간의 활동으로 온난화가 나타났을 확률은 90%”라고 결론 내렸다. 그럼 IPCC가 결론 내린 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질문을 던져보자. 지구 온난화는 과연 누구의 책임이 큰가. 그동안 가장 큰 이득을 취한 세력은 누구인가.

“숲이 죽어가서 사적 이익 침해당했다”

지구 온난화를 둘러싼 세기의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의 그린피스 활동가 멜라니 더친과 그의 개 쿠퍼는 그 소송의 한가운데 서 있다. 멜라니는 2005년 2월11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원고 쪽 증인으로 나갔다.

“나는 앵커리지에 살아요. 그린피스 회원이기도 하지요. 나는 시내에 있는 집을 팔았고, 숲이 울창한 힐사이드로 이사를 가려던 참이었어요. 힐사이드는 조깅을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 주거지랍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알래스카 남부 전역에 가문비나무좀벌레가 창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푸른 숲이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지요. 온도가 상승하고 대기가 건조해져서 산불 발생 빈도도 높아졌어요. 2004년에는 기록적인 산불이 났고, 스모그는 앵커리지 근처까지 번졌죠. 결국 나는 힐사이드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어요. 산불 위험이 있고 가문비나무좀벌레가 있는 곳에서 뛸 수는 없잖아요?”

원고인단이 제출한 증거자료 6호에서 멜라니는 자신의 사적 이익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멜라니와 쿠퍼는 환경단체 그린피스, 지구의 벗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의 오클랜드·샌타모니카·아카타, 콜로라도주의 볼더 등의 소도시로 구성된 원고인단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2002년 제기된 이 소송의 피고는 미국 정부 유관기관인 수출입은행과 해외민간투자공사(OPIC)다. 이들이 320억달러 상당의 불법적인 ‘해외 화석 연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원고인단은 주장했다. 환경파괴 논란을 빚었던 아프리카의 차드-카메룬 송유관, 동유럽의 바쿠-제이한(BTC) 송유관 사업과 사할린 유전 사업 등 해외에 제공되는 개발기금 융자 보증을 해주는 두 기관이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공기관은 타국에서 이뤄지는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환경법에 따라 국가 친환경 정책 규정(NEPA)을 따라야 한다. 이 규정은 모든 정부 기관으로 하여금 환경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업을 벌일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하도록 돼 있다.

멜라니는 “두 기관은 이 사업이 미국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미국 영토인 북극권 알래스카에서는 화석연료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빙산이 녹는 등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원고인단은 차드-카메룬 송유관 사업에는 44억5900만t, 바쿠-제이한 송유관 사업에서는 5천만t, 사할린 유전사업에서는 1129만t의 이산화탄소가 운영 기간 동안 배출된다고 내다봤다. 수출입은행과 해외민간투자공사가 시행하는 사업의 상당수는 저개발국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발전소 건설 사업이다. 원고인단은 전세계 온실가스의 8%가 두 기관이 지원하는 화석연료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소송에는 멜라니의 래브라도종 명견 쿠퍼도 참가했다. 쿠퍼도 지구 온난화의 잠재적 희생자다. “쿠퍼는 1999년부터 북극의 얼음바다에서 과학자들의 연구를 돕고 있어요. 과학자들은 예전에 인식표를 붙여놨던 바다사자를 찾아야 하는데, 쿠퍼가 냄새를 맡아 기어코 찾아내거든요. 바다사자를 발견하면 ‘멍멍’ 하고 짖지요. 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얼음이 빨리 녹고 크레바스가 생기지요. 바다사자를 수색하는 쿠퍼에게 위험합니다.”

캘리포니아주, 자동차 회사 제소

지구 온난화 소송은 일단 멜라니의 편에서 순항 중이다. 2005년 9월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원고의 소송 자격이 인정된다”며 원고 적격성을 인정했다. 지구 온난화가 행정소송 대상이라는 뜻이다. 연방법원이 거시적인 온난화의 인과관계를 따져보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6년 하반기 원고 쪽 변론을 마친 재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 하나의 지구 온난화 소송은 ‘북극곰 재판’이다. 그린피스는 지구 온난화에 따라 북극곰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도, 미국 정부가 북극곰을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북극곰 재판은 성공을 거뒀다. 재판 도중인 지난해 12월 미국 내무부 소속인 수산물·야생보호국이 “북극곰을 멸종 위기종으로 등재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북극곰의 멸종 위기종 등재는 의미가 깊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동물의 멸종 위기를 미국 정부가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수산물·야생보호국은 “바다 얼음이 녹아 북극곰 서식 환경에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제너럴모터스, 도요타 등 주요 6개 자동차의 제작사를 제소했다. 주정부는 소장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안 침식과 오존층 오염, 동물 보호 등에 주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며 “자동차가 과거와 현재 지구 온난화에 끼친 손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온실가스 대량 방출 기업(정부)에 대한 소송은 확산될 전망이다. 2001년에 나온 IPCC 보고서만 해도 화석 연료에 의한 온난화 가능성이 66%로 추정됐지만, 이번에 나온 보고서는 90%로 높아졌다. 과학의 발전은 지구 온난화의 인간 책임론을 확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온실가스로 입은 피해 입증하기 힘들어

하지만 실제 소송은 간단치 않을 것 같다. 담배 소송의 경우에도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분명한 과학적 증거가 있는데도 그 피해가 법원에서 인정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도 전체 대기와 섞이기 때문에 피고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어느 정도 원고에 피해를 입혔는지 계량화하기 힘들다. 더욱이 싸움 상대는 권력과 금력을 가진 거대기업이다. 총체적 결론은 인정받더라도 미시적 과정을 증명하지 못해 원고의 승소는 쉽지 않을 것이다.

뉴질랜드 환경법센터의 클라우스 보셀만(55) 교수는 “지구 온난화가 일으킬 환경 변화에 조응하는 법률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법률 체계로는 경제·사회적 분쟁을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인간-선진국-거대기업으로 연결되는 ‘지구의 기득권층’이 약자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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